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임병식 칼럼] 금기와 '침묵의 나선' 허무는 송영길 대표
2021-07-06 16:30
“더불어민주당에 아직 밥값 하는 정치인이 있다.” 소신 발언을 이어가는 송영길 대표에 대한 평가다. 송영길은 취임 이후 청와대와 당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당내 의원들과 강성 지지층을 향해서도 악역을 자처한다. 경직된 당 문화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당원들은 송영길이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송영길은 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에둘러 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극성 지지층을 일컫는 ‘대깨문’을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소위 ‘대깨문’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누구는 되고 안 된다. 누가 되면 차라리 야당이 되겠다’는 이런 안이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누가 되더라도 결과에 승복하고 원 팀을 만드는 게 당 대표 역할이다. 특정인을 배제하는 논리는 당 화합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친문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재명 비토 정서를 겨냥한 발언이다. 당대표로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다. 당 상황은 이전만 못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특정 후보를 배제하는 건 적전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강성 지지층은 송영길에게 사과와 당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발끈했다. 5일 만난 민주당 인사는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했다. 당대표가 이 정도 말도 못하는 정당이라면 정상적인 정당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년 동안 민주당은 건강한 비판과 의견을 허용하지 않은 채 진영논리를 강화해 왔다. 일사불란이 미덕이었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대통령은 문재인)’ 비판은 금기시됐다. 문재인 대통령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다. 화석화된 당 운영은 민심과 담을 쌓았다. 4·7 재·보궐 선거는 민주당에 실망한 분노 게이지가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그런데 아직도 좌표 찍기와 문자폭탄이 두려워 강성 지지층 눈치 보기로 일관하는 현실이다.
민주당은 4·7 재·보궐 선거 참패에 이어 이준석 바람으로 휘청대는 상황이다. 한데 아직도 ‘대깨문’을 외치고, ‘죽창가’를 부르며 철지난 이념논쟁에 불을 지폈던 조국 인식 수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나머지 변화에 둔감한 꼰대정당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괜한 말이 아니다. 강성 지지층과 여기에 기댄 의원들이 까먹는 지지율을 그나마 송영길이 받쳐주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도 송영길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인정했다. 그는 “세금을 징벌적 수단으로 쓰고 집 가진 것을 죄악시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고 했다. 또 사퇴한 김기표 전 반부패비서관과 관련, “인사·민정수석실을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너서클(내부 핵심)이니 그냥 봐주고 넘어가는 것이 되면 안 된다”며 직격했다. 쓰라리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핵심을 짚었다.
고립무원과 고군분투. 송영길이 처한 상황이다. 송영길은 어렵게 당대표에 올랐지만 자신과 성향이 다른 최고위원들에게 둘러싸인 형국이다. 서걱대는 최고위원회의 분위기는 이런 역학관계를 반영한다. 경선 일정을 원칙대로 결정하자 이재명을 도우려 했다는 견제가 집중됐다. 지난 4일 국민면접에서는 이낙연이 이재명을 제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낙연을 만들어 주려고 판을 짰다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나왔다.
송영길은 “대표 선거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다. 오직 대선 승리가 목표”라고 강조한다. 강단과 뚝심의 배경이다. 송영길을 오래 지켜봤다는 당직자는 그를 ‘진정성’으로 집약했다. ‘싸가지 없는 독불장군’ 인식도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송영길은 좋은 게 좋다며 기교부리지 않고 왕따를 자처했다. 모두가 입 닫고 있을 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탈원전 정책의 당위성을 인정하더라도 방법론에 대한 거친 비판도 그 연장선상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대통령 관심사라는 이유로 여론수렴을 소홀히 하고 경제성마저 왜곡했다. 이 결과 멀쩡한 원전은 중단됐고 원전 인프라가 붕괴됐으며, 전문가들은 ‘원전 마피아’로 매도됐다. 이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확대됐다. 관련 공무원은 구속 수감됐고,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도 불구속 기소됐다. 만일, 일부라도 송영길처럼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침묵의 나선은 결국 민주당을 망가뜨렸고, 나아가 소신 없는 공직자를 양산했다.
대선 정국에서 당대표가 집중 받는 건 아이러니다. 대선 주자들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이 자기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 채 친문 자장에 갇혀 있는 바람에 나타난 역설이다. 송영길은 당 체질을 바꿔야 재집권이 가능하다는 절박함을 인식하고 있다. 이해찬 시절에는 용납하지 않았던 퇴행적 행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의지다. 당 대표가 금기를 깨고 있으니 반길 일이지만, 최고위원들은 분란·불화를 운운하고 있다.
사실 최고위원들은 직무를 해태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 더불어민주당을 방치하면 종착지는 빤하다. 카스 R 선스타인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에서 “영향력 있는 행위자들이 일치된 목소리로 확신에 차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동조와 침묵, 지나친 확신이 아니다. 밥값 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