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수험표=백신 티켓?’ 허수 신청에 수험생은 웁니다

2021-06-30 16:02
교육부, 9월 모의평가 응시자에게 '화이자' 백신 제공 발표
백신 접종 기회 부여 소식에 허수 신청자 몰려… 연령대↑
시험 기회 잃은 수험생은 낙담... 교육부 "취소 신청 가능"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최하는 9월 모의평가에 수험생 대신 ‘허수’ 지원자가 몰렸다. 이들은 응시자에게 부여되는 백신 접종 기회를 노리고 9월 모의평가 응시를 신청했다. 일부 수험생은 허수 지원자 때문에 시험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다른 수험생들은 허수로 인해 성적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을까봐 불안감을 표했다.
 
백신 내걸자 전년보다 신청자 연령대↑
30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28일부터 9월 모의평가 시험 접수를 받은 입시 학원 대부분이 하루 만에 모의평가 신청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수생, n수생 등 고등학교 재학생이 아닌 졸업자는 모의평가를 응시하기 위해 출신 고등학교나 사설 학원을 이용해야 한다. 평가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 가능한 사설 학원 명단을 공개한다. 이번 9월 모의평가 허수 지원자는 이 리스트를 보고 신청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시험 접수 시작일인 지난 28일 학원가에는 9월 모의평가 수험표를 백신 티켓으로 삼은 허수 신청자가 몰렸다.

서울 송파 소재 A학원은 “22학년도 9월 모의고사 외부생 접수가 마감됐다. 학원 문을 여는 새벽 6시 30분부터 접수하러 오셔서 오전 7시 30분쯤 접수가 모두 마감됐다”고 전했다. 강남 소재 B학원 역시 9월 모의평가 응시를 희망하는 외부생 50명을 선착순 형식으로 받아 하루 만에 마감 소식을 공지했다. 이날 포털 사이트에는 “40대인데 화이자 백신을 맞고 싶어서 9월 모의고사를 신청했다. 응시비는 냈는데 당일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거냐”는 질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종로학원은 온라인을 통해 9월 모의평가 접수를 받아 1분 만에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응시생은 2년 전 53명에서 올해 312명으로 6배 가까이 늘었다. 종로학원이 공개한 올해 접수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재수생과 n수생이 많은 연령대인 20~22세 비율은 35.3%로 2019년 60.3%보다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반면 23~29세 비율은 2019년 30.2%에서 41.3%로 늘었다. 2019년 5.7%에 그친 30대 이상 비율은 올해 19.2%로 올랐다. 특히 올해는 50세 신청자도 있었다. 종로학원 측은 “응시자 연령대가 높아진 건 의‧약학 계열 모집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백신 접종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교육부는 9월 모의평가 실시 계획을 통해 재학생을 제외한 응시 신청자에게 코로나 백신 신청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3조의 4, 같은 법 시행령 제33조의 3 등에 따라 질병관리청과 협업해 응시생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신청할 수 있다. 접종 가능 연령 기준은 식약처 허가한 20005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은 7월 19일부터 접종을 받는다.
 
허수에 밀린 '진짜' 수험생들..."정부가 백신 로드맵 제시해야"

부산 지역 모든 고교생이 전면 등교가 시행된 28일 오후 부산 동래구 용인고 3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월 모의평가는 평가원이 수능 전 출제하는 마지막 모의고사다. 평가원은 일 년에 두 번, 6월과 9월에 모의평가를 통해 수험생 수준을 확인하고 시험 난이도를 결정한다.

수험생에게 9월 모의평가는 본인 수준을 가늠할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잃은 수험생들은 불안과 걱정을 호소했다. 수능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9월 평가원 신청 자리가 없는 이유를 보니 어이가 없다”, “이례적으로 40대 이상 중년층분들이 10분 넘게 대기해서 응시 신청을 했다는 말을 들으니 기가 찼다”, “등급컷이 제대로 안 나올 것 같다” 등 다양한 걱정을 쏟아냈다.

관련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본인을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소개한 글쓴이는 “9월 모의평가는 수능 전 두 번밖에 보지 않는 수능 모의평가 중 하나다. 실질적으로 본인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글쓴이는 “백신을 맞기 위해 시험을 응시하는 ‘백신 수험생’이 난립하는 경우 등급컷 정확도가 떨어져서 수험생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 본인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을 앞둔 수험생들의 기회를 망치는 것은 참으로 몰지각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이번 사태 원인으로 9월 모의평가 신청자가 맞는 백신이 ‘화이자’가 만든 제품인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갤럽이 지난 3월 전국 18세 이상 1000명에게 백신 신뢰도를 물은 결과 화이자 백신이 68%로 가장 높았다. 이어 모더나가 49%였고 올해 상반기 국내 코로나 백신 접종자 절반 이상이 맞은 아스트라제네카 신뢰도는 42%를 기록했다.

또한 잔여 백신 선착순 접수, 필수인력 선제 접종 정책 등으로 백신 접종 기회를 얻기 어려운 국민들이 9월 모의평가 접수를 통해 백신을 접종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교육부는 “질병관리청 계획에 따르면 40대 이하 국민도 8월부터 사전예약을 통해 접종할 수 있다. 9월 모의평가에 응시하지 않는 수능 응시 예정자도 8월부터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교육부는 결국 9월 모의평가 허수 지원자가 전 국민 백신접종시기인 8월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입 수험생 자격으로 신청하는 경우 일반인 연령대별 접종 순서에는 접종 기회가 다시 부여되지 않아 대입 수험생이 아닌 분들은 9월 모의평가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인센티브가 있고 가족 감염도 막을 수 있지만, AZ 등 관련 부작용을 보니 화이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 와중에 (이번 사태는) 언제 맞을 수 있는지에 대한 로드맵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긍정적인 면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라도 이렇게 백신을 빨리 맞아야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시험 응시 혜택을 노리는 사람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있었다. 수능이 치러지고 나서 각 유통업계가 수험표를 일종의 할인권처럼 제시하면 할인이나 사은품 등 혜택을 주면서 ‘수능 특수’를 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처럼 허수 지원자가 먼저 시험 자리를 꿰차는 경우는 없었다.

교육부는 “백신 우선 접종은 교육부와 방역 당국이 코로나 사태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의 안전한 시험 응시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당부한다”고 전했다. 또한 “9월 모의평가를 잘못 신청한 경우 취소가 가능하다. 현재 백신도 계획대로 차질 없이 수급되고 있는 만큼 질병관리청 접종 계획에 따라 안심하고 차례에 맞춰 백신 접종을 신청해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