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시계 보는 순간 '찰칵'…당신 주변 물건으로 위장한 몰카
2021-06-29 08:06
탁상용 시계부터 보조 배터리까지… 일상 생활용품으로 둔갑한 변형 카메라
변형 카메라 유통방지법안 국회 제출돼 있지만 여전히 위원회 심사 단계
불법 촬영 장비 탐지 전문가 "여름철엔 콜라병, 선글라스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 주의"
변형 카메라 유통방지법안 국회 제출돼 있지만 여전히 위원회 심사 단계
불법 촬영 장비 탐지 전문가 "여름철엔 콜라병, 선글라스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 주의"
A씨에게 시계는 두려운 물건이 됐다. 직장 상사에게 선물 받은 탁상형 시계가 알고 보니 불법 촬영 장비였기 때문이다. 상사는 한 달 반 동안 A씨 침실에 놓인 시계를 통해 A씨 방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지켜봤다. 상사는 이 일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 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A씨에게 휴식 장소였던 집은 불안한 공간이 됐고, 그는 여전히 약을 먹으며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최근 발간한 '한국 성범죄 보고서'에서 A씨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 사회에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 촬영물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HRW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에 사용되는 초소형 카메라는 시계나 계산기, 옷걸이, 머그잔 등 일상 생활용품으로 위장해 피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이 전 세계 불법 촬영의 중심지가 됐다(Global Epicentre of Spycam)"며 초소형 카메라로 피해자의 알몸과 소변 보는 모습, 성관계 장면 등을 촬영한다고 보도했다.
HRW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에 사용되는 초소형 카메라는 시계나 계산기, 옷걸이, 머그잔 등 일상 생활용품으로 위장해 피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이 전 세계 불법 촬영의 중심지가 됐다(Global Epicentre of Spycam)"며 초소형 카메라로 피해자의 알몸과 소변 보는 모습, 성관계 장면 등을 촬영한다고 보도했다.
일상 생활용품에 초소형 카메라를 부착한 제품을 '변형 카메라'라고 부른다. 변형 카메라는 편의점에서 물건 사듯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범죄의 악용 우려가 크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변형 카메라와 관련해 몇 가지 키워드를 조합해 검색하면 곧바로 구매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다. 이 중 한 사이트는 탁상형 시계, 자동차 키, 보조 배터리, 생수병 등으로 둔갑한 변형 카메라를 가격대별로 나열했다.
판매자는 탁상형 시계 모양의 변형 카메라를 소개하는 글에 "현재 과학으로는 (제품 속) 아주 미세한 주파수를 잡아낼 수 있는 탐지기가 없다. 따라서 (해당 제품은) 몰카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다. 전문가도 쉽게 찾을 수 없다"고 자부했다. 이어 "이 제품은 불법이 아니다. 합법적으로 인증받아 판매하는 제품이다. 부엌칼은 불법이 아니지만, 칼을 들고 남의 집에 넘어가는 순간 범죄 도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옷을 거는 옷걸이와 주머니 속 자동차 키도 불법 촬영에 쓰이는 도구로 둔갑한다. 약 30만원에 판매 중인 옷걸이형 변형 카메라 소개 글에는 "적외선 촬영기능이 탑재돼 어두운 곳에서도 촬영할 수 있다. 누구도 눈치 못 채는 완벽한 옷걸이 형태"라고 홍보했다. 한 구매자는 후기에 "적외선 촬영이 탁월하다. 불빛도 보이지 않아 노출 위험도 없다. 옷 하나 걸어두니 완벽 위장이다"라고 평가했다.
이곳에는 옷을 거는 옷걸이와 주머니 속 자동차 키도 불법 촬영에 쓰이는 도구로 둔갑한다. 약 30만원에 판매 중인 옷걸이형 변형 카메라 소개 글에는 "적외선 촬영기능이 탑재돼 어두운 곳에서도 촬영할 수 있다. 누구도 눈치 못 채는 완벽한 옷걸이 형태"라고 홍보했다. 한 구매자는 후기에 "적외선 촬영이 탁월하다. 불빛도 보이지 않아 노출 위험도 없다. 옷 하나 걸어두니 완벽 위장이다"라고 평가했다.
변형 카메라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성능도 좋아지면서 불법 촬영 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다. HRW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국내 성폭력 사건 중 불법 촬영 관련은 585건(4%)이었지만, 2017년에는 6615건으로 약 11배 증가했다. 또 2013~2018년 경찰에 신고된 불법 촬영 범죄는 약 3만여건이며, 2012~2016년까지 경찰이 확인한 불법 촬영 피해자는 2만6000명에 달한다.
변형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 촬영 행위를 막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장병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9~20대 국회에서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변형 카메라 취급에 허가제를 도입하고, 취급 단계별로 이력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불법 촬영 문제 발생 시 역추적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변형 카메라가 모두 범죄에 쓰인다고 보기 어렵고 신기술 개발을 저해할 수 있다는 논리에 가로막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도 지난 3월 변형 카메라 제조·판매 등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의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계류 상태다.
불법 촬영 장비 탐지 전문가 정상헌 서연시큐리티 부장은 "최근에도 탁상형 시계를 비롯해 볼펜과 라이터 등 일상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가 많다. 특히 표면에 필름까지 덧씌워 바깥에서 봐도 렌즈가 보이지 않아 일반인이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부장은 "렌즈와 배터리, 메인보드로 구성된 불법 촬영 장비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배터리도 작아져 작동시간이 짧다. 하지만 환풍기의 전기선이나 대용량 배터리를 활용할 경우 평생 작동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날씨가 더운 여름철에는 생수병이나 콜라병, 선글라스로 위장한 변형 카메라를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