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임원 심층 분석]③현대차, 기업문화도 글로벌하게... 여성·외부 인재 '중용'

2021-06-30 06:40
정의성 회장 화끈한 인사 스타일 변화 주도
3년간 임원진 290명서 478명으로 대폭 확대
군대문화·순혈주의 타파 등 위로부터 혁신
UAM·로보틱스 등 미래사업 관련 인재도 끌어올려

2021년.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 산업계 기업들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과거와 사뭇 다른 경영환경 아래서 그 누구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경쟁이 시작된 탓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기업들이 가진 최고의 자산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이에 본지는 국내 유수의 산업계 기업 경영진을 분석해 해당 기업·그룹의 인적자원과 인사 트렌드, 핵심 키워드를 짚어봤다.<편집자 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추구하는 그룹의 혁신 방향이 회사의 중추인 임원진의 최근 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과거 군대 문화라 불렸던 조직에 유연성을 확보한 창의성 제고,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았던 순혈주의 타파,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로보틱스 등을 중심으로 한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정 회장이 본격적으로 그룹을 이끈 후 확 달라졌다는 평가다.
 

 

◆정의선 회장 수석부회장 올랐던 2018년 9월 전환점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의 임원진은 정 회장이 본격적인 수장 역할을 한 2018년 9월 이후 크게 변화했다. 

정 회장은 당시 수석부회장에 오르며 그룹의 혁신에 주력했다. 지난해 10월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공식적으로 회장 자리를 넘긴 것도 정 회장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 현대차의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사업이 확장되면서 임원진의 외연이 확 늘어나고, 조직의 변화를 이끌 여성과 외국 인재의 등용이 대거 이뤄졌다. 더불어 UAM과 로보틱스 등 신사업 관련 인재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확연히 달라진 숫자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전동화와 UAM, 로보틱스 등 정 회장이 꼽는 현대차그룹의 새 먹거리 확보를 위한 인재들의 영입에 속도를 내면서 규모 자체가 달라졌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 임원 2018년 6월 290명에서 2020년 12월 478명으로 64.8% 증가
현대차의 임원(등기임원, 미등기임원, 사외이사)은 2018년 6월 290명에서 2020년 12월 478명으로 64.8%나 증가했다. ‘별 중의 별’이라는 등기임원도 9명에서 10명으로 확대됐다.

회사의 규모도 그에 걸맞게 성장했다. 현대차는 2019년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 100조원(106조원)을 돌파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정체 속에서도 전년 대비 9.3%의 성장하며 이뤄낸 성과다. 지난해 역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100조원대 매출액(104조원)을 지켜냈다.

올해는 그 이상도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는 지난 1분기 27조원의 매출액을 올렸는데 같은 분기 기준 최대 수치다. 2분기의 경우에는 29조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 지연 등의 문제가 서서히 해소되면서 현대차의 실적 향상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측된다.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와 고부가차량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을 중심으로 한 정 회장의 수익성 확대 전략이 통한 것이다. 더불어 현대차의 미래차 핵심인 친환경차의 판매도 힘을 보탰다. 현대차는 지난해 국내에서만 9만대가 넘는 친환경차를 팔았다. 2025년까지 총 12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연간 56만대를 팔아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비중을 10%까지 늘릴 방침이다.
 

현대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밀어줄 때 확실히··· 미래 사업 인재 약진 두드러져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정 회장의 화끈한 인사 스타일이 있다. 밀어줄 때는 확실하게 밀어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말 단행했던 미래사업 부문 2021년 인사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현대차는 신재원 UAM 사업부장(부사장)을 사장으로, 김세훈 연료전지사업부장(전무)을 부사장으로, 현동진 로보틱스랩장을 상무로 각각 승진 인사했다.

정 회장은 2019년 10월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의 50%는 친환경차를 포함한 자동차, 30%는 UAM,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2021년 인사에서 그 방향성을 다시금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 사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항공연구총괄본부장 출신으로 현대차의 UAM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연료전지분야 전문가로 알려졌다. 현 상무는 현대차융합기술개발팀장과 현대차로봇플랫폼팀장 등 현대차그룹 혁신의 중심에서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현대차는 2026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화물용 무인 항공 시스템(UAS)을 시장에 최초로 선보이고, 2028년 도심 운영에 최적화된 완전 전동화 UAM 모델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친환경차 사업과 시너지를 위해 지난해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브랜드 '에이치투(HTWO)'를 론칭하고 생태계 확장에 힘쓰고 있다. 2023년 70만기의 수소연료전지를 시장에 판매하는 게 목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업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수도 완료했다. 이를 통해 단숨에 로봇 부문의 선도그룹으로 도약하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차, UAM, 스마트 팩토리 기술과의 시너지를 도모하면서 로봇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입할 예정이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차별 없는 인재 등용··· 추격자 아닌 선도자 밑거름으로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로서 글로벌 시장을 이끌기 위한 준비도 차별 없는 인재 등용으로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순혈주의 타파와 여성 리더 중용을 통해서다. 정 회장은 이들이 조직의 유연성과 외부소통을 강화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의 외국인 임원도 2018년 6월 7명에서 2020년 12월 16명으로 배 넘게 확대됐다. 같은 기간 완성차업계 특성상 찾아보기 어려웠던 여성 임원도 2명에서 14명으로 6배 더 늘었다.

SK와 KT 등 국내 주요 기업뿐만 아니라 닛산과 아우디 등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의 인재 영입도 크게 확대됐다. 이 기간 주요 임원 자리를 차지한 42명(2020년 12월 기준 재직기간 2년 4개월 내) 중 무려 24명이 외부 출신이었다.

이 가운데 외국인은 11명이었다.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경영담당 사장, 호세 무뇨스 미주권역담당 사장, 마틴 자일링어 상용개발담당 부사장, 루크 동커볼케 디자인담당 부사장, 앨런 라포소 파워트레인담당 부사장 등으로, 대다수가 현대차의 핵심 자리를 꿰차고 있다.

2014년 알베르트 비어만 BMW M 연구소장(현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의 현대차 합류 소식에 순혈주의를 깼다며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폐쇄적인 현대차는 더 이상 없게 됐다.

견제를 하지 못한다던 사외이사도 달라지고 있다. 정 회장이 그룹을 이끈 후 사외이사진은 5명에서 6명으로 확대됐으며, 최초의 여성 사외이사도 나왔다. 지난 3월 열린 정기주총에서 이지윤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부교수는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임명됐다.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내년 8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특정 성으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 이에 앞서 유능한 여성 이사를 확보하고 이사회의 다양성을 높이려는 조치다.

또한 현대차는 이 교수가 UAM 사업 방향성과 기술 동향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조언과 의견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교수는 2019년 미국 항법학회 이사로 선출된, 국내에서 손꼽히는 항공우주공학 분야 전문가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해서 현대차는 위로부터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며 “외국인과 여성·외부인재 중용은 단순한 바람이 아닌, 현대차의 특성을 보여주는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자동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