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과학의 시선] 동성애 유전자는 없다는데...

2021-06-23 06:00

최준석 과학작가, 언론인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라고 있다. 이상한 사람이 하도 많은 세상이어서, 드라마 제목을 접하고 무릎을 쳤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형사(정우)와 분노를 유발하는 여자(오연서)가 나온다. 작가(아경)가 대본을 잘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눈을 끄는 캐릭터가 또 있다. 이들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성소수자다. 이 남자는 밤에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고 외출한다. 이때는 ‘사만다’라는 여자 이름을 쓴다. 한국 드라마 속에 성소수자가 등장하다니, 놀라웠다.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그러고 보니 ‘무브 투 헤븐’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도 성소수자 이야기가 나왔다. 이 드라마는 사망자 집안을 정리하고 유품을 챙겨주는 유품정리사를 통해 죽은 사람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스토리 중 하나에 동성애가 소재로 등장했다. 응급실 의사로 일하던 젊은 남자가 응급실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으로 희생된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드라마 주인공이 그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사망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숨진 사람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했고, 연인에게 주려고 준비한 선물이 있었다. 그걸 전달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자, ‘무브 투 헤븐’ 주인공은 그걸 전달하기 위해 그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뜻밖에 그 연인이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는 걸 보여준다. 스토리라인을 쫒아가던 나는 연인이 외국인이었나, 젊은 한국인 여자였나, 하다가 젊은 남자로 귀결되는 걸 보고 놀랐다. 한국 드라마가 ‘동성애’ 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구나 해서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또 이 글을 쓰느라 자료를 찾아보니 드라마 ‘마인’에도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듯하다(다 아는 얘기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하느냐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용서하길 바란다. TV가 집에 없다보니, 드라마 트렌드에 약하다).

드라마 작가는 시대 변화에 누구보다 예민하다. 예민한 후각과 촉수를 갖고 있다. 한국 드라마에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건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불거졌던 이슈가 한국 사회 깊숙이, 안방 극장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 문제는 가야할 길이 머나,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보인다.

동성애는 과학자의 오랜 관심사였다. 동성애가 어떻게 진화의 담금질을 살아남았을까가 궁금했다. 진화생물학자가 보기에 동성애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동성애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지 못한다. 자식을 일부러 낳지 않는다는 건 진화의 맥락에서는 자살행위인 것이다. 그 사람이 갖고 있던 동성애자 유전자는 시간이 지나면 인간 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 알다시피 동성애자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인이 남긴 기록에 동성애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로부터 수천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돈다. 서구의 경우 남성 동성애자는 남자의 2~8%라는 자료가 있다.

생물학자는 동성애 유전자가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라는 과학적인 질문을 파고 들었으나, 진화적인 맥락에서 얻어낸 답이 별로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 Riverside) 생물학자인 네이선 베일리 교수는 2009년 논문 ‘동성 간 성적 행동과 진화’에서 “동성애 문제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과학자를 오랫동안 매료시켰다. 그러나 왜 그런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생물학자는 인간 말고 다른 동물에서의 동성애는 어떤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동물의 세계에서 동성간 성행동이 만연했다. 베일리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 속한 포유류는 물론이고, 조류, 파충류, 양서류, 곤충에서 동성간 성행동이 관찰됐다. 심지어는 이들보다 진화의 역사에서 훨씬 일찍 나타났던 연체동물(달팽이 등)과 선충류(예, 예쁜꼬마선충)에서도 보았다.

미국 예일대학 줄리아 멍크 교수 등은 2019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보고하면서. 이런 동성간 성적 행동을 동물 1500개 종에서 지금까지 과학자가 관찰했다면서, 동성애의 기원을 설명하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동성간 성적 행동을 성(性)의 기원과 관련시키는 설명이다. 암컷만이 있던 세상이 먼저 있었고, 이후 수컷이라는 제2의 성이 등장한 바 있다. 수컷이라는 성이 출현한 초기에는 개체들이 짝 짓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동성애 행동이 동물의 원시 조건으로 존재했다는 게 줄리아 멍크 등의 2019년 네이처 논문이다.(‘동물의 동성간 성적 행동 진화에 대한 대안 가설’ An alternative hypothesis for the evolution of same-sex sexual behaviour in animals).

생물학자들이 동성애 관련해 가장 많이 연구한 생물은 초파리다. 초파리는 20세기 벽두부터 유전학자들이 연구한 게 120년이 넘었다. 초파리의 동성간 성적 행동 연구도 50년이 지났다. 초파리 생물학자는 초파리의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수컷이 다른 수컷을 상대로 성적 행동을 한다는 걸 이미 50년 전에 발견했다. 그 돌연변이 유전자에는 ‘fruitless’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fruitless’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다. 열매, 즉 후손을 낳지 못하게 하는 유전자라고 해서 작명한 게 아닌가 싶다. 초파리 생물학자는 ‘fruitless’유전자 말고도 이후 약간씩 미묘하게 다른 동성간 성적 행동과 관련된 유전자를 많이 찾아냈다. 그 이름을 보면 영어로 dissatisfaction, prospero, quick-to-court, transformer, raised, genderblind and white라고 되어 있다. 예컨대 OR67d라는 유전자와 GR32a라는 유전자도 있는데, 이 두 유전자는 수컷과 수컷이 구애하는 행동을 억제했다. 다시 말하면 두 유전자 중 하나에 돌연변이를 가진 수컷은 다른 초파리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그 결과, 암컷은 물론 수컷에게도 구애 행동을 했다. 초파리 생물학자는 이런 저런 유전자를 찾았으나, 인간의 동성애를 이해할 수 있는 묵직한 정보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펭귄 동성애 부부가 알을 품은 일은 널리 화제가 된 바 있다. 호주 시드니의 ‘시 라이프 시드니 수족관‘(Sea Life Sydney Aquarium)에 있는 수컷 동성애 쌍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젠투(Gentoo) 펭귄. 젠투 수컷 두 마리가 수족관에서 2018년 자식을 부화시켰다. 수족관 측이 알을 줬더니 알을 수컷 커플이 돌아가며 품었고, 35일이 지나자 아기 펭귄이 태어났다. 이 알은 다른 펭귄이 낳았으나, 돌보지 않고 방치한 것이었다. 이 남자 동성애 펭귄은 2년 후 두 번째 입양에 성공했다. 2020년 11월에도 알을 건네받아, 품어서 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호주는 물론이고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인간 동성애자가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성정체성이라는 게 있다. 남자는 자신을 남자로 느끼고, 여자는 자신을 여자로 느끼는 게 성정체성이다. 또 몸은 남자인데,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지난해 한국에도 자서전이 소개된 미국 스탠퍼드대학 신경과학자 벤 배러스 교수(2017년 사망)가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배러스 교수 얘기는 얼마전 취재했던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정원석 교수로부터 들었다. 정 교수가 박사후연구원 때 배러스는 지도교수였다.

배러스 교수는 여자로 태어났고, 이름이 바버라였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이란성 쌍둥이인 남동생 도널드의 장난감과 옷을 갖고 놀기를 좋아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나, 어려서 먹었던 남성호르몬제가 원인이 아닐까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여성으로 계속 살았으나 40대 중반 유방암에 걸리면서 성정체성을 바꾸게 된다. 그의 유방암은 BRCA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것이고, 그는 절제 수술 뒤에 회복했다. 그런데 유방을 도려낸 걸 계기로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배러스 교수는 BRCA유전자 돌연변이가 췌장을 몇 년 뒤 공격했을 때 숨졌다. 췌장 세포는 BRCA유전자 돌연변이에 취약한 몇 개 중 하나였다.

‘성정체성’ 관련 유명한 건 미국 유대인 케이스다. 유대인 부부는 작은 아들이 생후 7개월 되었을 때 할례를 했다. 할례는 유대인 의식으로, 남자 성기의 포피를 일부 제거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 할례를 하는 사람의 잘못으로 성기가 심하게 탔다. 부모는 고민 끝에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 병원을 찾았다. 병원측은 남자 성기를 제거하고 여자로 키우라고 한목소리로 권고했다. 부모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 성전환 수술에 동의했다.

아이 이름은 여자 이름으로 바꿨다. 남자이름 존(John)을 여자이름 조앤(Joan)으로 달리 불렀다. 남자 옷 대신 여자 옷을 입혔고, 남자 장난감 대신 여자 장난감을 사줬다. 조앤은 여자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정기적으로 존스 홉킨스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담당 의사는 “이 소녀는 여성이 아직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건대 성정체성이란 문은 태어났을 때 일반적으로 어린이에게 열려 있는 것 같다”라고 보고서를 썼다.

성전환한 아이가 인위적으로 바꾼 성에 잘 적응중이라는 건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973년 1월 8일자에서 "이 케이스는 주요 성 차이, 즉 해부학적 차이뿐 아니라 심리적인 차이도 태아 수정 당시 유전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에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게 1997년 한 논문(하와이 마노아 대학 해부학자 밀턴 다이아몬드 외)에서 밝혀졌다. 그 여자 아이는 자신을 남자 아이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남자인데, 여자의 몸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된 열네 살 때 ‘존’은 앞으로 남자로 살든지, 아니면 죽겠다고 부모에게 얘기했다. 그제서야 부모는 아이에게 이실직고했다. 그는 수술을 통해 다시 남성이 되었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내가 새로 알게 된 단어가 있다. LGBT다. 알고 계신지? L(레즈비언) G(게이) B(양성애) T(성전환)를 망라하는 단어다. 세상은 변한다. 그에 발맞춰 살아야 한다.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최준석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뉴델리 특파원 ▷카이로특파원 ▷주간조선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