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디즈니·픽사의 새로운 동화, '루카'
2021-06-18 00:00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대표작(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대표영화(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디즈니·픽사 만화 영화는 21세기 동화다. '토이스토리'를 지나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월-E' '인사이드 아웃'과 '코코' 등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가슴에 디즈니·픽사의 동화 한 편쯤은 품고 살지 않나.
디즈니·픽사의 환상 동화는 진정한 우정을, 가족의 사랑을, 꿈을, 일상의 소중함을 말해왔고 이를 희망과 긍정의 언어로써 전달해왔다. 아이들에게 꿈과 방향성을, 어른들에게 맑은 마음을 일깨우는 것. 디즈니·픽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여름의 기운이 짙어지는 때, 디즈니·픽사에서 새 영화 '루카'를 내놓았다. 올해 초 영화 '소울'이 코로나19 범유행 속 일상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한 작품이라면, '루카'는 편견과 혐오를 깨는 우정과 도전할 수 있는 용기에 관해 말하는 작품이었다. 망설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응원. 거기에 여름의 청량함을 곁들인.
어느 날 루카는 자유롭게 물 안팎을 오가는 알베르토와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을 '인간 전문가'라고 소개하며, 물 밖 세상을 훤히 꿰고 있다고 자랑한다. 루카는 용기 내 알베르토와 인간 마을을 탐험하고 순식간에 물 밖 세상에 매료된다. 부서지는 파도, 쏟아지는 햇살, 흐드러진 풀잎, 달콤한 젤라토 등. 물 밖은 루카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건 '베스파'였다. 루카와 알베르토는 스쿠터를 타고 물 밖 세상을 여행하려 하고 베스파를 구하기 위해 포르토로소 마을의 전통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한다.
철인 3종 경기는 바다를 건너고, 파스타를 빨리 해치우며, 자전거를 타고 가장 빨리 결승전에 도착해야 하는 포르토로소 마을의 전통이다. 그간 구성원 없이 홀로 대회에 참가했던 인간 소녀 줄리아는 루카, 알베르토와 만나 함께 대회에 참가하고자 한다. 물이 닿으면 바다 괴물로 변하는 루카와 알베르토는 계속해서 위기를 맞고 이들은 비밀과 우정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영화는 아름다운 영화적 언어로 인물들의 성장을 보여준다. 루카와 알베르토, 줄리아가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편견과 혐오를 넘는 모습, 서로의 꿈을 진정으로 응원하는 마음 등이 마음을 울린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포르토로소 마을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리비에라 지역의 친퀘 테레(Cinque Terre)는 '다섯 개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해안 절벽으로 연결된 다섯 개의 해변 마을.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루카의 시선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풀어낸다. 포르토로소 마을이 이토록 낭만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이유다. 제작자 안드레아 워런이 "이 영화의 궁극적 목표는 이탈리아 한가운데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정도. 이국적 정취와 낭만에 흠뻑 취할 수 있다.
더불어 "소설이 아닌 시를 쓰고 싶었다"라는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2D 요소를 컴퓨터로 렌더링해 3D 세계로 가져와 색감과 질감을 풍부하게 살려내 수채화 색감의 동화 같은 느낌을 강조했다. 주인공의 기억 속 시공간을 관객들이 함께 경험하도록 하는 효과를 낸 것. 공간과 인물을 사실적으로만 표현하지 않고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회화적 세상을 그려냈다는 점도 인상 깊다. 17일 개봉이고 상영 시간은 95분, 등급은 전체 관람가다. 영화가 마친 뒤, '쿠키 영상'도 빼놓지 않고 보고 가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