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대표작(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대표영화(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관객들도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필자는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녹여낸 '최씨네 리뷰(논평)'를 통해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세상엔 이상한 일이 많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은 그렇지 않은 일 같은 거다. 나의 경우는 며칠 내내 시달릴 걸 알면서도 공포 영화를 찾아보는 게 그런 일이다.

공포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공포 영화를 조금 덜 무섭게 보는 도움말(팁) 같은 걸 가지고 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거나 발을 따뜻하게 하는 것 같은 일이다. 나의 경우는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보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이왕이면 관객이 많을수록 좋다. 함께 상영 시간을 견뎠다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하고 왠지 모를 전우애 같은 것도 생긴달까. 공포 영화를 '극장'에 털어버리고 오는 것도 이유 모를 안정감이 있다.

코로나19 범유행 이후로는 극장에서 공포 영화 볼 일이 적었다.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공포 영화 명장 제임스 완 감독 사단의 '컨저링' 연속물은 극장에서 보기 좋은 공포 영화고 여름의 시작을 알리기 충분했다. '집 안'이 아닌 '집 밖'에서 펼쳐지는 공포를 그린 이번 연속물을 보며 '역시,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1981년 미국의 한 마을. 초자연 현장 연구가 워렌 부부는 악령에 쓰인 소년 데이비드(줄리안 힐리아드)의 구마 의식을 진행한다. 하지만 강한 악령은 데이비드를 더욱 심하게 괴롭히고 심지어 그의 곁을 지키던 데이비드 누나의 남자친구인 어니(로우리 오코너 분)에게 옮겨간다.

순박한 성격의 어니는 악령 때문에 조금씩 이상 행동을 보인다. 어느 날 어니는 악령과 마주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니가 공격한 건 이웃 남성. 모두 악령에 따른 환각이었다.

워렌 부부는 재판으로 넘겨진 어니를 위해 해당 사건이 악령에 의한 것임을 밝히려 한다. 이 가운데 데이비드 가족의 집에서 저주 의식을 펼친 흔적을 발견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를 찾아 나선다.

'컨저링' 연속물은 초자연 현상 연구가 에드 워렌, 로레인 워렌 부부가 겪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든 공포 영화다. 지난 2013년 '컨저링'을 시작으로 '애나벨' '컨저링2' '애나벨: 인형의 주인' '더 넌' 등 10여 년간 '컨저링' 세계관을 구축하며 공포 영화의 새 범주를 만들었다. 전 세계 20억 달러, 평균 제작비 대비 17배의 흥행 이익을 거두고 국내에서도 90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은 바 있다.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 또한 워렌 부부가 겪은 실제 사건을 동기(모티프)로 제작됐다. 1981년 벌어진 '아르네 존슨 살인사건'이 영화의 주요 소재다. 19살의 청년 아르네 존슨이 집주인을 살해하고 "여자친구의 동생에게 붙어있던 악마가 자신에게 옮겨와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라며 범행을 부인했고 미국 최초 빙의 재판이 치러졌다. 실제로 워렌 부부는 소년에게 세 번의 구마 의식을 치렀고 소년의 몸에 43명의 악마가 들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아르네 존슨의 변호인은 이에 이 모든 것이 악마의 짓이라며 무죄를 주장한 바 있다.

그간 제임스 완 감독이 '컨저링' 연속물의 감독을 맡았으나 이번에는 마이클차베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새로운 감독이 연출을 맡은 만큼 영화도 기존 방식과 조금씩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간 '악령'을 매개로 이야기를 진행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기록으로 남은 살인사건을 동기(모티프)로 법정극까지 이야기를 확장했다.

그간 '집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를 극대화했던 '컨저링'은 '집 밖'으로 공포를 끌어내며 더욱 역동적인 감각을 키웠다. 활동 반경이 넓어진 만큼 언제, 어디에서 만날지 모르는 악령들로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이야기적 구성이 탄탄한 이번 연속물은 고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 컬트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꾸민다. 기존 '컨저링' 연속물을 좋아하던 관객들에게는 '법정극' '탐정' 요소의 비율을 높인 이번 작품이 성에 차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상영 시간은 111분이고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다. 영화가 마친 뒤 제작진 소개 자막에서 실제 워렌 부부가 데이비드를 구마하던 당시의 음성과 재판 모습 등을 함께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