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으로 해달라, 전입신고말라"...황당한 요구에 괴로운 세입자

2021-06-13 08:22
전세가격 고공행진, 매물 품귀에 세입자 '을'
집주인 절세 목적 위장전입에 불편한 동거

[아주경제 DB]


#결혼을 약 한 달 앞둔 예비신랑 A씨(39)는 아직 신혼집을 구하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때마다 집주인들이 '전입신고 거부', '동거인' 등의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최근 전세 매물부족과 가격급등이 심화되면서 집주인들의 이 같은 요구는 더 노골화되고 있다. A씨는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던 전셋집 다섯군데 가운데 네곳에서 이런 조건을 제안했다"면서 "보증금을 10~20% 깎아주겠다고 회유하더니 이제는 '그런 마인드면 원하는 집을 못 찾을 것'이라는 겁박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집주인들이 요구하는 '서류상 동거'를 거부하면 결혼 전까지 집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품귀 현상이 지속되면서 세입자를 향한 집주인들의 갑질 사례가 늘고 있다. 이달부터 전·월세신고제가 의무화됐지만 '꼼수전입', '전입신고 거절' 등 각종 편법은 현장조사 외에 적발할 방법이 없어서 정부 감시가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자신의 위장전입에 협조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세입자를 곤란하게 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보증금을 시세보다 낮춰주는 대신 집주인이 세입자 동거인으로 신고를 하거나, 세입자의 전입신고를 아예 못하게 하는 식이다. 모두 양도세 절세를 위한 편법이다.

실제로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A씨 사례와 같은 고민이 늘어나고 있다. 강남에서 신혼집을 구하고 있는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중개업소까지 나서서 위장전입 조건이 달린 매물을 소개하고 있다"면서 "매물이 워낙 귀하기도 하고, 보증금도 시세의 40%를 빼주겠다는 말에 흔들렸다"고 말했다. 강남구 청담자이 인근 한 공인중개업자는 "(집주인을)동거인으로 해주지 않으면 계약갱신 때 불리하다는데 어느 세입자가 요구를 거절하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2017년부터 각종 부동산 대책을 통해 양도세 비과세 요건에 실거주 의무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특히 지난해 6·17 대책에선 재건축 조합원 분양 시 2년 이상 실거주 의무도 부과했다. 최근에는 양도세 비과세 기준이 되는 주택 실거래가 상한선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하는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실거주 여부에 따라 양도세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차이가 나다 보니 집주인 입장에서 실거주 관련 절세를 위한 각종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꼼수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상당히 높다.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향후 집주인에게 사정이 생겨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대항권이 없어 전세보증금을 보호받지 못할 우려가 높다. 지난 1일부터 전·월세신고제 의무시행으로 위장전입이 원천불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주택이 아닌 아파텔, 오피스텔 등에서는 효력이 없다.

세입자들은 꼼수인 걸 알면서도 각종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집주인 요구를 따르는 분위기다. 한국부동산원 6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08.5로, 전주(107.0) 대비 1.5포인트 상승했다. 전세 시장 수급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노원구의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처럼 전세 매물이 귀한 상황에서는 세입자들이 집주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