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근시안적인 공정위 과징금 조치····해운산업 기틀 흔든다

2021-06-11 09:00

[사진=아주경제DB]

"너무나 근시안적이라서 장기적인 정책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이달 초 본지는 '대형 해운사 편중 지원'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최근 선복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수출기업을 위해 중소형 국적선사도 지원에 매진하고 있지만 평균적으로 대형 해운사인 HMM에 비해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취재·보도했다.

이후 해운업계의 여러 관계자들이 다양한 의견과 반응을 전달해줬다. 그 가운데 정부의 정책이 너무나도 근시안적이라는 여러 해운업계 관계자의 의견에 상당히 공감이 갔다.

이 같은 의견을 다수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최근 해운사가 정부의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달 국적선사 12개사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동남아시아 항로 운임 담합 문제로 최대 500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 부과를 예고했다.

최근 십몇 년 동안 간신히 생존에 성공하다 겨우 코로나19로 인한 운임 급등으로 실적이 개선된 해운사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더 큰 문제는 공정위가 과징금의 근거로 지목한 해운사의 적정 운임 논의(공동행위)가 지금도 유지되고 잇는 정부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흔히 담합으로 불리는 공동행위는 통상 부정적인 행위로 인식되나 해운업에서만큼은 필요 불가결한 조정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이는 공동행위 없이 무제한 경쟁을 허용해 글로벌에서 몇몇 해운사만 생존하게 된다면 매우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식량이나 광물 등 국가에 필수적인 자원을 포함해 국제무역의 99%가 해운을 통해서 이뤄지는 환경 속에서 소수 기업이 해운을 독점해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면 너무나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1870년대부터 시행된 해운기업의 공동행위는 세계 각국의 독과점 금지법이 신설되는 상황에서도 예외로 취급돼 왔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렇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정부가 국내 해운사의 파산을 막기 위해 공동행위를 적극 장려했음을 감안하면 더욱 공정위의 과징금 조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 정부는 2017년 당시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파산한 시점에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도입하면서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행위를 장려했다.

이에 해운사들은 얼마 전까지 공동행위를 장려하던 정부가 수익성이 다소 개선되자마자 공동행위를 본격적으로 제한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공정위의 대규모 과징금이 현실화될 경우 대부분 국적선사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 공동행위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호황을 감안하면 당장은 해운사가 공동행위를 해야 할 필요가 없지만 언젠가 불황이 닥치게 되면 국내 해운산업이 송두리째 과당경쟁에 흔들릴 수 있다. 사실상 육지의 섬과 같은 우리나라에 해운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조치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정책도 사람이 결정한 일인 만큼 완벽할 수는 없다. 정부가 항상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계속해서 정책의 방향을 수정해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최근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본지의 '대형 해운사 편중 지원' 보도 이후 앞으로 중견·중소선사에 대해서도 지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결정했다.

공정위는 조만간 전체 회의를 열고 과징금 등 해운사에 대한 조치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국가 경제에 반드시 필요한 해운산업의 장기적 육성을 위해 공정위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정을 수정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