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재건축에 안전진단 미루는 단지 속출…"집을 콘크리트 닭장으로 보는 규제"

2021-06-10 06:00
십시일반 모은 수억원 공중분해 우려에 "지금은 아냐"
"무너지기 전엔 어림없다는 식 규제, 삶의 질 떨어트려"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게 된 안전진단 제도 탓에 재건축 대상 아파트들이 사업 첫발도 떼지 못하는 분위기다. 자칫하면 주민들이 십시일반 수억원을 모아 추진한 안전진단비용이 증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후 이어질 입주민 간 책임소재 공방과 갈등으로 인해 당분간 재건축사업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한 목동 11단지 아파트에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사진 = 연합뉴스]

9일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A재건축아파트 단지는 정밀안전진단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후 이어질 적정성 검토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계산에서다.

한강 이북 B재건축아파트 단지는 정밀안전진단을 요청하기 위한 모금을 완료했지만, 아직 신청서는 내지 않았다. 제도 또는 정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모은 돈을 낭비할 가능성이 커서다.

B단지 재건축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정밀안전진단에 들어가는 비용만 3억원에 달한다. 이 돈을 날리면 다음에 이어질 비난과 좌절, 입주민 갈등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대폭 강화된 지난해 6·17 부동산시장 안정화대책 이후로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적정성 검토를 통과한 단지가 1곳(삼환도봉)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A단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면 그냥 살라는 말인데,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탁상행정인지 분통이 터진다"며 "돈 없는 사람들만 고통받는 정책"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돈 많은 사람들이야 좋은 집에서 여유롭게 전세로 살면 된다. 녹물 마시고 2중, 3중 주차에 툭하면 멈추는 엘리베이터, 중앙난방 등으로 불편을 겪는 건 결국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일부 시설물을 고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A단지 관계자는 "하나 고치면 5~10년은 또 재건축하기가 어려워진다"며 "요즘 식으로 한 번 짓고 난 뒤에는 고쳐 써도 괜찮겠지만, 30~40년 전 지은 아파트는 주차장과 입주민편의시설 등을 아예 갈아엎어야 한다"고 해명했다.

재건축 관련 전문가들도 현행 규제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 목적에서 주택문제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에서 안전진단위원으로 활동 중인 C업체 건축구조기술사는 "지금 안전진단 기준은 집을 삶의 질 측면이 아니라 닭장으로 보는 정도"라며 "무너질 정도까지 살다가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 대부분은 30~40년 전 주거난이 심할 때 입주민 편의보다는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사람을 살게 하려고 지은 곳들"이라며 "당연히 철근콘트리트니까 100년은 거뜬하겠지만, 만족스럽게 살 만한 곳은 못 된다"고 했다.

또 안전진단전문기관 D업체 관계자도 "예전(2018년 3월 전)에는 주차장이 너무 좁다는 등 아파트 단지 주거환경이 좋지 않으면 재건축을 허가하는 등 본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과 거주에 불편함이 없는 건 다른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