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복마전 ①] 수입도 지출도 제각각…수천억이 조합 손에서 사라졌다

2021-04-26 06:00
주먹구구식 2조원대 사업…빚으로 이자 돌려막기까지
한 해에만 1600억원 임의 지출…준공 후 추가 계약도
근본 문제는 '비리 척결법' 만들고 잊어버린 서울시에

"어떻게든 장부상 숫자를 맞추는 거죠. 어쩔 수가 없어요. 어디서 들어온 돈이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니까요."

사업비만 2조원대에 달해 국내 최대 재건축사업으로 꼽히는 송파구 A조합 관계자는 이처럼 토로했다. 수십, 수백억원에 달하는 사업비가 법률에서 정한 절차 없이 집행됐고, 회계 양식은 제멋대로다. 청산을 앞둔 이 조합은 지금까지 얼마의 빚을 졌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성동구 B구역 조합 사정도 마찬가지다. 조합원과 구청에 공개하는 어떤 자료에도 현행법상 첨부해야 할 회계자료가 첨부돼 있지 않다. 어디서 들어온 돈이 어떻게 나가는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지난 14일 본지와 A조합 조합원이 회계장부를 검토하는 중이다.[사진 = 김재환 기자]

수입은 제각각 지출은 제멋대로

19일 본지가 각 조합 클린업시스템 내부 회계자료를 확보한 결과, 이와 같은 문제가 다수 확인됐다. 특히 A조합의 경우 조합원으로부터 받은 수입 규모가 감사 주체에 따라 적게는 700억원, 많게는 1400억원가량 차이난다.

조합이 제출한 관리처분계획에는 조합원 분양 수입금액이 1조75억원인데,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 결과로는 1조1432억원, 내부 회계법인은 1조790억원으로 집계했다.

관리처분계획에는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지어서 파는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이 끝난 후 얼마의 수입이 들어와서 어떤 지출을 했고, 기존 조합원의 부담금이 얼마인지 등이 담긴다.

즉, 사업 주체인 조합이 산출한 수입과 내부·외부 회계 전문가들이 계산한 수입이 모두 다르다는 얘기다. 이를 수상히 여긴 조합원이 각 회계법인과 조합에 질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하거나 자료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조합 관계자로부터 들은 내막은 더욱 심각했다. 어떤 보고서에 나온 회계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수입과 지출 명세서 다수 자료가 보존돼 있지 않았고, 중간에 조합장이 교체된 전·후로 회계장부가 인계되지도 않았다.

특히 어디로 새는지 모를 '예비비'는 관리처분계획에 50억원이었다가 수년 뒤 82억원으로, 현재 259억원으로 증액됐다. 현행법상 매년 편성한 예비비와 사용 명세서를 모두 공개해야 하지만, 몇 년도에 얼마의 예비비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근거는 정리돼 있지 않다.

언제 들어온 돈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에 사용했다는 명세서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 명세서 총액이 예비비 편성액과 일치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A 조합 관계자는 "전임 조합장이 해임된 2015년경 전임자들이 회계자료를 모두 지우거나 정상적으로 인계하질 않았다"며 "어떤 과정을 거쳐 얼마의 돈이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다"고 말했다.

주먹구구식 회계로 인해 불필요한 차입금(빚)까지 끌어온 상황이다. 조합원이 분양대금에 포함해서 낸 이자비 대출이자 총 970억원은 '사업비' 통장으로 들어갔고, 어디론가 집행돼 사라졌다.

은행에 갚아야 할 대출이자를 사업비로 써버린 셈이다. 이에 조합은 총회 없이 1000억원의 차입금을 끌어와 이자를 막았다.

조합원은 이자비를 모두 냈지만, 이자를 내기 위한 빚에 다시 이자를 물어야 한다. 조합은 이를 따져묻자 회계 실수라는 점을 인정했다.
 
한 해에만 1685억원 총회 없이 지출

지출도 조합 마음대로였다. 클린업시스템에서 지난 2019년 총회결과와 금전출납내역서를 확인한 결과 총 1685억원이 현행법상 정한 총회 의결 없이 지출됐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한 회계연도에 쓸 예산과 집행할 사업목록을 총회에서 사전 의결하고, 5000만원 이상의 계약은 경쟁입찰해야 한다.

하지만 완공도면까지 나온 상황에서 조합은 주차관제시스템과 커뮤니티시설 통신선, 심장충격기 구입, 조합장 해임 건에 대한 변호사 비용 등을 대의원회(각 동 조합원 대표) 승인만 받았다.

본래 공사비에 포함돼 있어야 할 조경비용은 완공 이후에 추가 계약이 체결됐고, 조기 완판돼 홍보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70억원이 '분양홍보비' 명목으로 썼다.

조합 관계자는 이에 "비용을 지출한 후 사후 총회에서 추인받았다. 언제 갑자기 어디에 돈을 써야 할지 모르는데 법대로 하면 사업을 못 한다"고 했다. 조합원 동의가 없으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없고, 이미 낸 돈을 취소할 수도 없지 않냐는 질문에는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조합원들 항의 끝에 지난해 사상 처음 공개된 '자금수지계산서'에는 지금까지의 차입금이 0원으로 표시돼 있다. 얼마의 빚을 졌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상 2조원이 넘는 사업비가 깜깜이로 운영되고 있었던 셈이다. A조합뿐 아니라 본지가 추가로 성동구 B조합원 도움을 받아 클린업시스템 자료를 확인해보니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B조합은 관리처분인가 이후에나 필요한 계약을 경쟁입찰 없이 38억원가량의 계약을 진행했고, 조합 내부에서는 이 적정성 여부를 두고 내분이 일어났다.

이런 돈 문제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시와 구청에서 조합에 제공한 예산회계 작성 방식 자체가 현행법과 달랐기 때문이다. 

정비사업 비리를 척결하겠다며 6년 전에 대대적으로 고친 법은 지금까지도 현장에 적용되지 않았고,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

현행법상 예산 사용내역은 △자금수지계산서 △재무상태표 △공사원가명세서 △사업비명세서 △예산결산대비표 △예비비명세서 등 10가지에 걸쳐 공개돼야 한다. 

공개항목은 한 해에 어떤 돈이 어디로 들어와서 어떻게 나갔는지 보기 쉽게 정리하도록 구성됐다. 깜깜이 예산 집행 탓에 발생하는 각종 비리를 막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서울시에 따르면 모든 조합은 이 중 5가지만 공개하고 있다. 서울시가 법을 바꾸고선 상세한 업무지침을 만들어서 공시하는 업무를 단순히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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