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른들은 몰라요' 이유미 "나만의 흐름? 아직 찾아가는 중"
2021-04-16 00:00
"우리도 살아야 하잖아요."
18살 여고생 세진의 삶은 고단하다. 주변 사람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웃기만 하는 세진을 무시하고 괴롭히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세진은 임신하게 되고 아이를 지우기 위해 길거리를 헤맨다. 우연히 즉석음식점(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가출 4년 차 동갑내기 주영은 순식간에 그와 가까워지며 그의 여정을 함께한다. 생계와 낙태를 제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세진과 주영은 점점 더 위험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주인공 세진은 이환 감독의 전작 '박화영'에서 파생된 인물이다. '박화영'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화영의 심기를 건드리던 세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끌어간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이유미의 일문일답
영화 '박화영'이 워낙 강렬한 문제작이지 않았나. 배우로서 힘들었을 텐데 '어른들은 몰라요'까지 함께하게 됐다
- 아직 세진 같은 인물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박화영' 대본을 읽었을 때 '세다' '강렬하다'라는 느낌보다는 '이런 아이들이 있을 것만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더라. 감히 이 작품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감독님께서는 '박화영' 세진의 성격만 가지고 나왔다고 하셨다. '박화영' 속 세진을 토대로 깊이 있게 이야기를 풀어냈고 '어른들은 몰라요' 속 세진이 완성되었다고 했다.
'박화영' 속 세진의 핵심들은 그대로 가져온 것 같더라
- '박화영' 속 세진의 말투나 웃는 얼굴, 특이한 느낌은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사이사이 빈 곳을 메꿀 수 있도록 깊이를 심어두고 인물을 입체화했다.
극 중 인물들의 전사가 짧게 드러나곤 한다. 배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역사를 만든 건가?
- 감독님과 배우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영을 연기한 희연(하니) 언니, 이환 감독님과 세진의 인생을 생각했다. 그 결과 그의 전사를 알 수 있는 실마리들이 곳곳에 담겨있다. '아, 이런 거구나' 싶더라. 전사를 탄탄히 만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세진은 늘 웃는 얼굴이다
- 세진이 재밌어서 웃는 건지, 화가 나서 웃는 건지, 웃을 수밖에 없어서 웃는 건지…무척 고민이 많았다. 그 애매한 지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웃음 안에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세진의 웃는 얼굴이 '어쩔 줄 모른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 세진의 표현 방식이다. '어쩔 줄 몰라 한 것' 조차도 그의 표현이다. 그게 세진이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때그때 마음이 바뀌기도 하고 어쩔 줄 모르는 무방비한 상태다.
세진은 쉬이 이해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
- 저도 대본을 읽고 놀랐다. 새로운 세계더라. '정말 가출 청소년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역할을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극소수가 아니더라. '아, 나는 10대의 문제에 관해 생각해보지 않았구나'하고 충격을 받았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무엇이었나?
- 세진이 금방 주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은 주영에게 모든 걸 허용하고 가깝게 지내지 않나.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무모하게 느껴져서다. 이환 감독님께 물어보니 이들은 동질감을 느꼈고 서로를 알아본 것이라고 하더라. 운명적 만남일 수도 있겠다. 서로서로 도와주고 싶고, 받아들일 만한 사정이 있었던 거다.
앞서 말한 대로 '어른들은 몰라요' 속 10대의 문제들은 아프고 잔혹하다. 어려운 작품에 임한 만큼, 이번 영화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주제가 명확히 있을 것 같다
-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주제와 철학이 무엇일까 수도 없이 생각했다. 작품이 완성되고 두 번째 관람을 마치니 의미가 와닿더라.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는 어떤 어른인가?' 생각하게 됐다. 만약 내가 세진 주변의 어른이었다면…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더라. 불편한 영화가 저를 성장시킨 느낌이다. 불편하기 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마음. 관객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길 바란다.
늘 웃는 얼굴인 세진이 몇 차례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연기할 때도 많은 고민이 따랐을 텐데
- 감정을 표출할 땐 한계치까지 해봤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고?' 싶을 정도로 아주 미친 듯이. 그런 과정을 겪고 무방비한 상태로 해당 장면을 찍다 보니 풀어진 느낌이 나오더라.
세진이를 둘러싼 인간관계들이 눈에 띄었다. 친구들 앞에서는 폭력을 일삼고 뒤에서는 사랑을 고백하는 은정부터 잠시간 깊은 관계를 맺었던 남자친구, 여동생 세정 등등
- 세진이는 인간관계를 '흡수'하는 아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어갔다고 할까? 세진은 가만히 있고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아이를 만들어냈다. 은정과 선생님도 세진에게 먼저 다가왔을 거고 그에게 영향력을 끼쳤을 거다. 재필, 신지와 만난 뒤에는 '폭력'을 흡수했고, 중년 부부와 만났을 땐 그들의 '안정감'을 흡수했다. 그러니 얌전히 잘 지낼 수 있었던 거다. 계속계속 흡수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 중 세정과의 관계로 인해 세진이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떤 일을 벌여도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동생이기 때문이다.
재필 역할은 이환 감독이 직접 연기했다. 배우에게도 재밌는 경험이었을 거 같다
- 처음에는 웃기고 이상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혼자 '액션!' 외치고, 혼자 '컷!' 하고…. 하하하.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 않아지면서 편안해졌다. 감독님이 우릴 받쳐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니와의 호흡은 어땠나?
-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응원했다. 함께 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박화영'도 그렇지만 '어른들은 몰라요'도 관람 내내 너무 힘들었다.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어땠나?
- 재밌게 찍었다. 제작진분들이 워낙 재밌으시다. 현장 분위기가 항상 좋아서 힘든 느낌은 없었다. 게다가 모든 배우, 제작진들이 서로를 믿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안정감이 느껴졌다.
고통스러운 역할을 맡더라도 담아두는 편은 아닌가 보다
- 그렇다. 분리하려고 애쓰는 편은 아니다. '빨리 나가라' 하고 애쓰기보다는 '남아 있으려면 그래도 된다'라는 식이다.
아직 이유미에게 남아있는 세진의 모습이 있다면
- 아픔으로 남은 게 아니라 그의 솔직한 생각들이 남아있는 것 같다. 팔 부분에 조금…. 생각하는 것에 자유로움을 느낀다. 강렬한 역할을 맡더라도 심적으로 힘들지 않은 건, 세상에 완전히 나쁜 역할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 중 세진은 스케이트보드를 통해 자유를 느끼는데. 아직 실력을 유지 중인가?
- 실력은 점점 퇴화 중이다. 하하하. 춤에 리듬이 있듯 보드 타는 사람은 자기만의 리듬이 있다고 하더라. 그게 '잘 탄다'와 '못 타다'를 가르는 거라고. 아직 나는 나의 리듬을 못 찾았다.
연기와 비슷한 것 같다. '연기'에 관해서는 어떤가? 이유미만의 리듬을 찾았나?
- 아직이다. 다양한 리듬을 찾으려고 한다. 다만 열심히 찾으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이 좋다. '리듬' 찾기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