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니 "'어른들은 몰라요', 용감해서 고마웠다"
2021-04-12 00:05
열여덟 살 주영은 4년째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닮은 동갑내기 친구 세진(이유미 분)과 만나게 된 그는 아이를 지우기 위해 돈을 모으는 그를 흔쾌히 돕기로 한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는 10대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임신, 낙태 등 사회적 문제들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실망하면서도 한편으로 작은 희망을 걸어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괴로울 정도로 사무친다. 영화 '박화영'으로 강렬하게 등장, 영화 애호가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이환 감독은 사각지대에 놓은 청소년을 조명, 어김없이 관객들의 아픈 구석을 찌른다.
날것 그대로를 담아낸 '어른들은 몰라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영화 애호가들에게 호평을 얻어왔음에도 '문제작'이라는 수식어를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인기 그룹 EXID로 데뷔, 배우로 첫걸음을 내디딘 하니(28)는 문제작이라 불리는 '어른들은 몰라요'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무대 위 화려한 모습을 지우고 길거리를 떠도는 10대 청소년이 된 그의 모습은 첫 작품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몰입도와 깊은 여운을 남겼다.
"큰 화면 속 제 모습이 아직 어색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보았는데, 제 모습만 보이다가 나중에는 이야기가 보이더라고요. 끝자막(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마음이 먹먹했어요. 영화를 보는 관객분들도 마지막곡을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대본을 처음 보고 "용감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본을 읽고 곧바로 이환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감한 작품이고 그래서 고맙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영화가 문제작이라고 불리는데 그럼에도 꼭 필요한 이야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미치자 감독님께 그냥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화면 속 자신의 모습에 관해서는 냉정한 편이었다. "대본 속 '사포'같은 주영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았다"라며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고 털어놓았다. 본인 연기에 대해 아쉬운 점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모습에서 성장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라는 인간이 가지는 한계성이 극중 인물에 반영된 것 같아요. 대본에 그려진 주영의 모습과 거친 질감 같은 게 조금 무디게 느껴지더라고요. 속상한 마음이 들었는데 감독님과 (이)유미가 '절대 그렇지 않다'라며 위로해줬어요."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누구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살피려는 건 '어른들은 몰라요'가 그의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연기를 접했고 '주영'이 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솔직히 연기에서 주안점을 두거나 초점을 맞춘 부분은 없어요. 그럴 만한 겨를이 없었어요.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는 처지라서 전문적으로 예리하게 접근하지 못했어요. 부족했던 거 같아요. 현장도 처음이고 연기도 처음이라서 깨질 걸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부딪쳤죠."
'어른들은 몰라요' 팀은 두 달간 공동 연수(워크숍)를 진행하며 작품과 극 중 인물을 구체화해나갔다. 연기를 처음 시작한 하니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었고 많은 것을 알고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연극영화학과에 가면 배운다는 기초적인 연기나 발성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감독님과 유미가 큰 도움을 줬죠. 어떤 장면을 연습하기에 앞서 '감정이 올라오면 하자'라고 하시곤 했는데 솔직히 '그게 뭐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잘 모르겠지만 서러운 감정이 막 들더라고요. 눈물이 왈칵 나오기도 하고요. 잘 모르는 분야고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덤볐고 조금씩 알 수 있었어요. '어른들은 몰라요'는 행운 같은 작품이에요. 이렇게 연기를 시작하고 경험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요."
하니는 '어른들은 몰라요'를 시작으로 한국판 오리지널 SF 앤솔러지 시리즈 'SF8'의 '하얀 까마귀',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아직 낫서른' 등의 작품을 거쳤다. 영화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이제는 연기가 어떤 건지 알겠느냐"라고 묻자 "아직 배워야 한다"라며 씩 웃어보였다.
"제게 연기는 어떤 배움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뭔가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배역을 통해 좀 더 넓은 시선을 바라보게 됐죠. 확장된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많은 걸 받아들이는 게 좋더라고요."
연예계 '엄친딸(엄마 친구 딸의 줄임말로 집안, 성격, 머리, 외모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하다는 의미의 유행어)'의 대표로 불렸던 하니에게 주영은 너무나 멀고 낯선 인물일지도 몰랐다.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내가 어른이라서 그런가?' 싶을 때가 많았죠. 주영이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세진을 위해 오토바이에 뛰어들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그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내가 안희연이라서 이해가 안 가는 건가?' '내가 어른이라서 이상한 건가?' 그런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감독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전사를 만들며 조금씩 주영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하니는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주영이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고 주변의 오해를 받으며 어른들에 믿음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내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이 죽으며 주영은 오해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 속 가정, 학교 등 어떤 어른에게도 보호받지 못해 떠돌게 되었다는 것. 이환 감독과 이유미는 공동 연수에서 하니를 위해 인물의 전사를 짧게나마 상황극으로 소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감독님과 유미가 엄마, 아빠, 친구를 오가면서 연기해 주셨어요. 몇 시간 동안 주영의 상황을 겪고 나니 그의 행동에 당위가 생기더라고요. 연기할 때 훨씬 편해졌죠. 주영이는 세진을 볼 때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해요. 죽은 친구와 도망친 자신에 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데 세진에게 그 모습을 투영한 것 같아요.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주영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요."
주영을 연기하며 곤혹스러웠던 일도 털어놓았다. 욕설 연기가 너무나 어색해 자신감이 떨어졌던 것.
"'큰일 났다'라고 생각했어요. 욕하는 게 너무 어색하니까 점점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감정을 터트리면서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어요. 모니터를 보니 자신감이 없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은정역을 맡은 방은정이라는 친구가 많이 도와줬어요. 리듬을 알려주고 억양도 가르쳐주면서 교정해줬죠."
욕설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니 문득 주영과 신지가 악을 지르며 싸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세진의 일로 갈등을 겪게 된 신지와 주영이 서로를 탓하며 욕설을 쏟아내는 장면이었다. 서로 이기기 위해 기 싸움을 벌이면서도 두서없이 말을 쏟아내는 모습이 영락없는 그 또래 아이들 같았다. 그런 모습들에서 새삼 아이들이 10대라는 게 느껴졌다. 서툴고 어린아이들인 것이다.
"그렇게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 장면 같은 경우 상황만 주어지고 자유롭게 대사를 쏟아내야 했어요. 말문이 턱턱 막히는데 지고 싶지 않으니까 '뭐 뭐' 같은 말만 하면서 욕하게 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감독님께서 우리가 주고받은 말을 대사로 만드셨어요. 정말 싸우느라 두서없이 말해놓은 걸 연기하려니 또 어렵더라고요."
주영이 되어가며 외적인 모습도 그에 가까워졌다. 처음 주영의 의상을 입고 어색한 느낌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공동 연수를 통해 주영에 가까워지자 정돈된 모습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처음 주영의 의상을 입고 '큰일났다'고 생각했어요. '미스 캐스팅이라고 하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막상 의상을 입으니 건강하고 정돈된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정돈된 느낌을 무너트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주영의 상황으로 머리나 손톱도 잘 관리가 되어있지 않을 거로 생각했고 촬영하는 동안 그냥 놔뒀어요. 손톱도 마구 물어뜯고 머릿결 영앙제(트리트먼트)같은 것도 하지 않고. 하하하."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가 얼마나 '어른들은 몰라요'와 주영에게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를 관람한 입장으로도 세진과 주영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득해지곤 했는데 그를 연기한 배우의 마음은 어떨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니에게 "주영이 눈앞에 있다면 가장 먼저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라고 묻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삐죽 눈물을 보였다.
"생각만 했는데 너무 슬퍼요. 일단…안아주고 싶어요. 고생했다고 잘 버텼다고 말하고 싶어요."
2012년 그룹 EXID로 데뷔, 어느덧 연예계 10년 차가 됐다. 그는 "조금 짜증 나지만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제가 제일 중요했어요. 그런데도 제가 제일 좋아하고 집중하고 있는 게 뭔지도 모르더라고요. 요즘은 나보다 나의 세상 바깥이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 변화가 기분 좋기도 하면서 덜컥 겁이 나기도 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어른들은 모르는' 하니의 면면들을 물었다. 그의 감춰진 면면 혹은 오해하고 있는 점들을 누군가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느냐고 말이다.
"글쎄요. 이제는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해요. 너무 오랜 시간 거기에 집중하고 살아온 거 같아요. 알아주면 고맙겠지만 그렇게 매달리고 싶지는 않아요. 돌이켜보면 결국 사람들은 '진심'을 알아주는 거 같아요. 제가 진심으로 대하면 언젠가는 알아주시겠죠. 그런 믿음을 가지려고 해요."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는 10대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임신, 낙태 등 사회적 문제들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실망하면서도 한편으로 작은 희망을 걸어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괴로울 정도로 사무친다. 영화 '박화영'으로 강렬하게 등장, 영화 애호가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이환 감독은 사각지대에 놓은 청소년을 조명, 어김없이 관객들의 아픈 구석을 찌른다.
날것 그대로를 담아낸 '어른들은 몰라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영화 애호가들에게 호평을 얻어왔음에도 '문제작'이라는 수식어를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인기 그룹 EXID로 데뷔, 배우로 첫걸음을 내디딘 하니(28)는 문제작이라 불리는 '어른들은 몰라요'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무대 위 화려한 모습을 지우고 길거리를 떠도는 10대 청소년이 된 그의 모습은 첫 작품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몰입도와 깊은 여운을 남겼다.
"큰 화면 속 제 모습이 아직 어색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보았는데, 제 모습만 보이다가 나중에는 이야기가 보이더라고요. 끝자막(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마음이 먹먹했어요. 영화를 보는 관객분들도 마지막곡을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대본을 처음 보고 "용감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본을 읽고 곧바로 이환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감한 작품이고 그래서 고맙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영화가 문제작이라고 불리는데 그럼에도 꼭 필요한 이야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미치자 감독님께 그냥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화면 속 자신의 모습에 관해서는 냉정한 편이었다. "대본 속 '사포'같은 주영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았다"라며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고 털어놓았다. 본인 연기에 대해 아쉬운 점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모습에서 성장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라는 인간이 가지는 한계성이 극중 인물에 반영된 것 같아요. 대본에 그려진 주영의 모습과 거친 질감 같은 게 조금 무디게 느껴지더라고요. 속상한 마음이 들었는데 감독님과 (이)유미가 '절대 그렇지 않다'라며 위로해줬어요."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누구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살피려는 건 '어른들은 몰라요'가 그의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연기를 접했고 '주영'이 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솔직히 연기에서 주안점을 두거나 초점을 맞춘 부분은 없어요. 그럴 만한 겨를이 없었어요.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는 처지라서 전문적으로 예리하게 접근하지 못했어요. 부족했던 거 같아요. 현장도 처음이고 연기도 처음이라서 깨질 걸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부딪쳤죠."
'어른들은 몰라요' 팀은 두 달간 공동 연수(워크숍)를 진행하며 작품과 극 중 인물을 구체화해나갔다. 연기를 처음 시작한 하니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었고 많은 것을 알고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연극영화학과에 가면 배운다는 기초적인 연기나 발성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감독님과 유미가 큰 도움을 줬죠. 어떤 장면을 연습하기에 앞서 '감정이 올라오면 하자'라고 하시곤 했는데 솔직히 '그게 뭐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잘 모르겠지만 서러운 감정이 막 들더라고요. 눈물이 왈칵 나오기도 하고요. 잘 모르는 분야고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덤볐고 조금씩 알 수 있었어요. '어른들은 몰라요'는 행운 같은 작품이에요. 이렇게 연기를 시작하고 경험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요."
"제게 연기는 어떤 배움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뭔가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배역을 통해 좀 더 넓은 시선을 바라보게 됐죠. 확장된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많은 걸 받아들이는 게 좋더라고요."
연예계 '엄친딸(엄마 친구 딸의 줄임말로 집안, 성격, 머리, 외모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하다는 의미의 유행어)'의 대표로 불렸던 하니에게 주영은 너무나 멀고 낯선 인물일지도 몰랐다.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내가 어른이라서 그런가?' 싶을 때가 많았죠. 주영이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세진을 위해 오토바이에 뛰어들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그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내가 안희연이라서 이해가 안 가는 건가?' '내가 어른이라서 이상한 건가?' 그런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감독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전사를 만들며 조금씩 주영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하니는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주영이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고 주변의 오해를 받으며 어른들에 믿음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내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이 죽으며 주영은 오해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 속 가정, 학교 등 어떤 어른에게도 보호받지 못해 떠돌게 되었다는 것. 이환 감독과 이유미는 공동 연수에서 하니를 위해 인물의 전사를 짧게나마 상황극으로 소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감독님과 유미가 엄마, 아빠, 친구를 오가면서 연기해 주셨어요. 몇 시간 동안 주영의 상황을 겪고 나니 그의 행동에 당위가 생기더라고요. 연기할 때 훨씬 편해졌죠. 주영이는 세진을 볼 때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해요. 죽은 친구와 도망친 자신에 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데 세진에게 그 모습을 투영한 것 같아요.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주영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요."
주영을 연기하며 곤혹스러웠던 일도 털어놓았다. 욕설 연기가 너무나 어색해 자신감이 떨어졌던 것.
"'큰일 났다'라고 생각했어요. 욕하는 게 너무 어색하니까 점점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감정을 터트리면서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어요. 모니터를 보니 자신감이 없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은정역을 맡은 방은정이라는 친구가 많이 도와줬어요. 리듬을 알려주고 억양도 가르쳐주면서 교정해줬죠."
"그렇게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 장면 같은 경우 상황만 주어지고 자유롭게 대사를 쏟아내야 했어요. 말문이 턱턱 막히는데 지고 싶지 않으니까 '뭐 뭐' 같은 말만 하면서 욕하게 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감독님께서 우리가 주고받은 말을 대사로 만드셨어요. 정말 싸우느라 두서없이 말해놓은 걸 연기하려니 또 어렵더라고요."
주영이 되어가며 외적인 모습도 그에 가까워졌다. 처음 주영의 의상을 입고 어색한 느낌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공동 연수를 통해 주영에 가까워지자 정돈된 모습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처음 주영의 의상을 입고 '큰일났다'고 생각했어요. '미스 캐스팅이라고 하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막상 의상을 입으니 건강하고 정돈된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정돈된 느낌을 무너트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주영의 상황으로 머리나 손톱도 잘 관리가 되어있지 않을 거로 생각했고 촬영하는 동안 그냥 놔뒀어요. 손톱도 마구 물어뜯고 머릿결 영앙제(트리트먼트)같은 것도 하지 않고. 하하하."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가 얼마나 '어른들은 몰라요'와 주영에게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를 관람한 입장으로도 세진과 주영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득해지곤 했는데 그를 연기한 배우의 마음은 어떨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니에게 "주영이 눈앞에 있다면 가장 먼저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라고 묻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삐죽 눈물을 보였다.
"생각만 했는데 너무 슬퍼요. 일단…안아주고 싶어요. 고생했다고 잘 버텼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제가 제일 중요했어요. 그런데도 제가 제일 좋아하고 집중하고 있는 게 뭔지도 모르더라고요. 요즘은 나보다 나의 세상 바깥이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 변화가 기분 좋기도 하면서 덜컥 겁이 나기도 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어른들은 모르는' 하니의 면면들을 물었다. 그의 감춰진 면면 혹은 오해하고 있는 점들을 누군가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느냐고 말이다.
"글쎄요. 이제는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해요. 너무 오랜 시간 거기에 집중하고 살아온 거 같아요. 알아주면 고맙겠지만 그렇게 매달리고 싶지는 않아요. 돌이켜보면 결국 사람들은 '진심'을 알아주는 거 같아요. 제가 진심으로 대하면 언젠가는 알아주시겠죠. 그런 믿음을 가지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