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탁원표 '대차거래계약 확정시스템' 先공개...핀테크 기업들 "선 넘네"

2021-02-15 15:20
업계 "무차입 공매도 근절돼야...공공이 나서면 밥그릇 뺏기"
"예탁원 서비스 실효성 떨어진다...근본 문제는 자본시장법"

한국예탁결제원이 무차입 공매도를 막겠다며 '대차거래계약 확정시스템'을 들고 나왔지만, 관련 업계 시선은 곱지 않다.

민간 중소업체들은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근절해야 한다는 방향성엔 이견이 없다면서도, 해당 서비스를 공공이 제공하는 게 적합한지에 대해선 의문이란 반응이다. 민간 주도의 시장에 공공이 끼어 사실상 '밥그릇 싸움'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트루테크놀로지스 등 민간업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증권대차계약 체결시스템을 제공해오고 있다. 재작년 말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사업자로 선정됐고, 이달 기준으로 국내외 6개 금융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예탁원이 제공하는 서비스 자체가 무차입 공매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도 있다. 무차입 공매도는 대차거래정보를 수기로 입력하는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예탁원은 수기 정보든 전산화된 정보든 시스템에 보관만 하면 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사진 = 한국예탁결제원]

15일 한국예탁결제원은 대차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공매도 제도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대차거래계약 확정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오는 3월 8일부터 내국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올해 안에 외국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기관 등 대차거래 참가자는 해당 시스템을 통해 대차거래계약을 확정하고 대차거래계약 원본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대차거래 현황을 통합 조회할 수도 있다.

예탁원이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공매도 거래 참가자들은 보다 손쉽게 대차거래계약 원본을 보관할 수 있게 됐다. 대차거래정보 보관·보고는 자본시장법 개정(오는 4월 6일 시행)으로 의무화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예탁원의 시스템이 무차입 공매도의 근원을 제거하기엔 미진하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명백한 업역 침해 아니냐는 반응도 흘러나온다. 대차거래계약 확정시스템은 앞서 트루테크놀로지스 등 민간 중소기업이 주도적으로 개발·운영하던 영역이다. 

하재우 트루테크놀로지스 대표는 "예탁원의 시스템은 계약 원본을 보관할 수 있는 보관함에 지나지 않는다"며 "계약내용을 손으로 시스템에 입력하는 관행은 묵인하고 있는데, 어떻게 무차입 공매도를 예방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무차입 공매도를 막기 위해선 대차거래정보를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당 정보를 기계가 입력하도록(전산화) 하는 게 더욱 핵심적이라는 설명이다. 사람이 직접 입력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예탁원 시스템의 근간인 자본시장법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정을 앞둔 자본시장법은 대차거래정보 보관·보고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해당 정보를 전산화할지 수기로 입력할지는 선택의 영역에 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법이 개정됐음에도 증권사 입장에서는 행동양식을 크게 바꿀 필요가 없다. 이미 변조되지 않는 방식으로 보관을 해오고 있어 바뀌는 법에 저촉될 일이 없다"며 "데이터 입력 방식을 수기에서 전산화로 바꾸지 않는 한 법 개정의 의미는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법상 보관방식을 택일하도록 돼 있지만, 전산화 방식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데는 예탁원 측도 이견이 없다. 예탁원 관계자는 "본원은 현행법이 허용하는 모든 방식이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마련한 것"이라면서도 "전산화 방식이 보다 활성화되도록 홍보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민간 업체들은 예탁원의 시스템이 기존 수기방식을 고착화할 뿐 아니라, 민간 고유 영역을 침범해 발전 동력을 사라지게 한다고도 본다. 

하재우 트루테크놀로지스 대표는 "공공기관은 이미 공공기관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공신력 등 상당한 메리트를 가진다"며 "민간업체와 동일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예탁원 관계자는 "이미 일부 거래에 있어선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번 결정은 기존 시스템을 확대한다는 데 의의가 있을 뿐, 민간 영역 침해라는 지적은 온당치 않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