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환 한번 안하고 파산신청…서민금융 이대로 괜찮나

2021-01-20 19:00
다중채무자 도덕적 해이 심각…중장기적 채무관리 방안 마련 시급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포용금융정책에 따라 서민 대상 정책금융상품을 확대하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지원 확대가 오히려 부실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추가로 정책금융상품을 이용한 뒤 원리금을 한 차례도 상환하지 않고 채무조정, 파산을 신청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일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민금융상품인 미소금융, 근로자햇살론, 햇살론17, 햇살론유스(Youth)의 신규 공급 규모는 총 4조9294억원이다. 이는 전년보다 31%나 급증한 수치다.

미소금융의 경우 2019년 3564억원이었던 공급액이 지난해 3899억원으로 뛰었으며, 근로자햇살론은 3조272억원에서 3조3170억원으로 늘었다. 2019년 9월 출시한 햇살론17은 9990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공급액이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지난해 첫 공급에 나선 햇살론 유스도 2234억원이나 취급됐다. 정책금융상품을 연결해주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통한 대출 상담 건수도 지난해 52만2657건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경기침체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생활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빌리려는 서민들이 햇살론, 미소금융과 같은 정책대출상품으로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고강도 대출규제와 올 하반기 예정된 법정 최고금리 인하(연 24%→20%)에 따라 2금융권이 저신용자 취급을 축소하면서, 상대적으로 대출 문턱이 낮은 정책상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정책금융상품을 찾는 사람들은 이미 다른 금융회사에 대출이 있는 저신용·저소득 다중채무자로,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파산 또는 면책을 신청해야 할 차주들이 정책금융상품을 이용해 빚이 더 불어나 한계 차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초저신용자들의 이용이 많은 일부 정책금융상품에서는 이미 부실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저신용자들에게 15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근로자햇살론의 대위변제율은 지난해 말 기준 10.5%로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역시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햇살론17도 대위변제율이 지난해 상반기 0.2%에서 지난해 말 5%까지 올랐다. 대위변제율은 채무자가 원리금을 연체해 보증을 선 정부가 은행에 대신 갚아줘야 할 돈의 비율을 말한다. 대위변제율이 상승했다는 건 대출을 연체하거나 대출상환을 포기해 개인회생, 신용회복 절차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정부가 정책금융상품을 이용한 서민에게도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를 적용해 줬는데도 불구하고 대위변제율이 상승하고 있어, 향후 유예 조치가 끝나면 정책금융상품의 부실률은 더 커질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서민들의 자금 상황이 악화되면서 정책금융상품을 이용한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속출하고 있다.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정책금융상품을 마지막 자금 마련 창구로 이용한 뒤 원리금을 한 차례도 상환하지 않고 법원에 개인회생, 파산을 신청하거나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신용·취약차주에 조건 없이 정책자금을 집행하기보다는 사전심사를 강화하거나 채무관리 교육을 상시화하는 등 장기적인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금융상품마저도 제때 갚지 못하는 차주들은 빚 부담이 그만큼 커져 생활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며 “이러한 한계차주에게 무조건적인 대출을 내주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채무관리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