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부가 '다 하는' 서민금융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

2024-10-10 18:00

 
"서민 경제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의 기본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고물가·고금리 부담이 서민과 취약계층에 전가되지 않도록 관계 기관은 각별히 신경 써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여름 두 번째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강조한 말이다. 윤 대통령 말처럼 '서민금융'은 현 정부가 강조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정부가 내년 금융위원회에 편성한 예산은 4조2000억원인데 지난해(3조7000억원)와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증가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세출 계획이 바로 서민금융이다. 정부는 서민·취약계층 지원 예산에 가장 큰 비중(37.2%, 공적자금상환기금 전출 제외)을 할애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매크로 서민금융'이 아닌 '마이크로 서민금융'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국정과제 중 하나인 '불법사금융 피해 근절'이 대표적인 예다. 아울러 서민금융 자금을 공급하는 것 외에도 취업연계·채무지원·복지 등 비(非)금융까지 연계해 취약계층이 재차 원활한 경제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게 돕는 정책들은 괄목할 만한 성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 일선에서 서민금융을 지휘하면 할수록 시장 왜곡 커지고, 금융 생태계를 저해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이미 서민금융기관 역할을 맡는 상호저축은행·상호금융 업계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매몰된 채 고금리를 이유로 '서민금융 개점휴업'에 들어갔으며, 반대로 정부 역할은 계속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서민금융을 주도하는 금융위 산하 서민금융진흥원은 지난해 10조6000억원을 공급해 전년(9조8000억원)보다 규모가 더욱 커졌다.

이렇듯 정부의 시장 관여가 커질수록 민간 서민금융 공급을 맡고 있는 저축은행·상호금융 등은 더욱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이런 행태는 궁극적으로 서민금융 공급을 정부에 미루는 대신 고수익을 볼 수 있는 시장으로 매몰되게 된다. 이는 금융시장에서 서민금융을 이원화하고, 서민금융 시장 내 경쟁과 혁신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서민금융 시장에 대한 정책 의존성은 더욱 강해지고, 정부가 역할을 줄이기 어려워지면서 향후 정책 실패에 따른 피해를 서민들이 직접 입게 된다.

결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서민금융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시장 인프라를 형성하고, 모든 금융회사가 적극 서민금융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서민금융 공급 주체를 자처할수록 시장경제를 깨트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