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무역관련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 면제가 지금 꼭 필요한 이유

2021-01-11 17:41
브라젠드라 나브빗(Brajendra Navnit) WTO 인도 대사 기고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8개 국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부 특허권과 WTO의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의 일부 지적재산권 규정 적용을 회원국에 한시적으로 면제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지적재산권이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의 빠른 생산 확대를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안의 핵심 내용입니다. 일부 회원국에서 이 제안에 대한 우려를 표했으나, WTO 회원국 중 많은 국가가 이 제안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국제기구 및 기관, 전 세계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전례 없던 상황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해결 방법을 필요로 합니다. 팬데믹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한시적 봉쇄령의 효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예상보다 더 좋지 못한 성장 결과의 리스크는 여전히 상당하다.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되거나, 치료제 및 백신 관련 진행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거나 또는 국가의 치료제 및 백신 접근에 있어 불평등이 발생하는 경우, 재개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강화된 봉쇄령으로 경제활동은 예상보다 더 둔화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암울합니다. 경제 총생산은 이미 2019년에 예상했던 기본시나리오보다 7%나 감소했으며, 이는 전 세계 GDP가 6조 달러 이상 감소했음을 의미합니다. 기본시나리오에서 전 세계 GDP의 1% 향상은 8000억 달러 규모의 전 세계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며,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 면제는 경제 분야에서 하위의 손실을 상쇄할 것입니다.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합리적 가격 및 적시 접근을 보장한다면, 우리 경제의 수요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높일 것입니다. 성공적인 백신의 출현으로 희망이 다가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전 세계인이 접근하고 구매하는 것을 가능케 할 수 있을까요? 근본적 문제는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코로나19 백신이 충분한지 여부입니다. 현 상태로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2021년 말까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대다수 국민에게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지급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WTO 모든 회원국은 전 세계 엄청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백신 및 치료제 생산량 긴급 확대의 필요성에 동의하였습니다.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 면제 제안(TRIPs Waiver Proposal)은 지적재산권 장벽이 백신의 생산 확대를 막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발의되었습니다.

기존의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은 팬데믹 시대를 염두에 두고 고안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강제적 라이선스는 국가별·사례별·제품별로 부여되어 각각의 관할권에서는 지적재산권 제도에 별도의 강제적 라이선스를 부여해야 합니다. 결국 실질적으로 국가 간 협업에 있어 부담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의 유연한 사용을 권장하지만, 이행 과정은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복잡합니다. 때문에 유연성에만 기대다가는 많은 이들이 적시에 적정 가격의 백신 및 치료에 충분히 접근하도록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앞서 전 세계가 코로나19 의료 제품의 생산을 확장하고 공유하기 위한 지적재산권, 기술, 자료의 자발적인 기여를 장려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기술 접근 풀(또는 C-TAP 이니셔티브)’에서도 우리는 고무적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자발적인 라이선스가 있다 해도 비밀리에 감춰져 있으며, 거래 약관이 투명하지 않습니다. 특정 용량에 그 범위가 제한되어 있거나 일부 국가로 국한되어 있어 진정한 국제 협업이 아닌, 오히려 국가주의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코백스(COVAX Mechanism)와 ACT-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와 같은 전 세계 협력 이니셔티브로는 78억명 규모의 거대한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ACT-A 이니셔티브는 내년 연말까지 20억회 분의 백신을 조달하고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회 분량 접종 기준으로 10억명만 접종이 가능합니다. 이는 ACT-A가 완벽하게 지원되고 성공한다 해도, 이 역시 현재로서는 장담이 어렵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전 세계인에게 백신이 제공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번 팬데믹 초기 몇 달간 일부 국가가 긴급한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충분한 수량 확보를 위해 마스크, 개인보호장구, 소독제, 장갑을 비롯한 코로나19 필수 용품을 모두 다 쓸어가 버린 경우가 있었습니다. 같은 상황이 백신에 있어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필수품의 생산 확대를 방해하는 지적재산권 장벽이 없다면, 결과적으로 전 세계는 이들의 생산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동일하게 지적재산권 풀링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나, 안타깝게도 이는 아직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면제(waiver)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초유의 사건인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관련된 많은 이해당사자가 협업하고 있습니다. 과학자와 연구원·공공의료전문가·대학의 지식과 기술로 전 세계적 협력이 이루어졌으며,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이 있어 기록적인 시간에 백신 개발이 가능했습니다. 이는 지적재산권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 면제 제안’은 오늘날 전 세계가 처한 이례적인 공공보건 긴급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대응입니다. 이러한 면제는 WTO의 마라케시 협약 제9조 조항과도 부합합니다. 이는 제때 적절한 가격의 백신에 접근하지 못해 생명을 잃는 이가 없도록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 면제의 채택은 WTO의 신뢰를 다시 세우고 다자통상체계가 위기 속에서도 유의미하게 지켜지고 지속됨을 입증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 WTO 회원국은 행동에 나서 면제를 채택함으로써 생명을 구하고 경제를 빠르게 회복세로 돌릴 수 있습니다.

백신을 제조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인 실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백신에 접근하고 구매가 가능할 수 있게 하는지는 우리 인류의 또 다른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를 백신과 치료제가 존재(Available)만 했던 ‘A’등급의 역사가 아닌, ‘존재(Availabilty), 접근(Accesibility), 구매(Affordabilty)’가 가능했던 ‘AAA’등급의 역사로 우리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는 그런 역사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브라젠드라 나브닛(Brajendra Navnit) WTO 인도 대사 [사진=주한인도대사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