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 매각, 금융논리만 앞세우면 실패
2020-12-20 19:00
투자금 회수 못할땐 조선업 구조조정 도화선…리스크 우려論
시민단체 "조선소 운영에는 의사없다"…한진해운 전철 밟을라
시민단체 "조선소 운영에는 의사없다"…한진해운 전철 밟을라
한진중공업 매각을 놓고 채권단 내부에서 갈등이 거세지고 있다.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컨소시엄이 본입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지만 자금 대부분이 정치권과 노동조합이 반대하는 사모펀드에서 조달됐기 때문이다. 해운조선업과 연고가 없는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재무적투자자(FI)와 손잡고 무리한 베팅을 한 만큼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의 도화선이 될 수 있고, 이는 해운조선산업의 메카인 부산‧경남지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20일 IB업계에 따르면 한진중공업 본입찰을 두고 일부 채권은행이 반대의사를 던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중공업 채권단 지분은 산업은행 16.1%, 우리은행 10.84%, 농협 10.14%, 하나은행 8.90%, 국민은행 7.09%, 수출입은행 6.86% 등으로 이뤄져 있다. 반대 이유는 입찰 금액의 절반 수준을 FI에서 받는다는 점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본입찰에서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FI인 NH PE와 오퍼스 PE와 손잡으면서 5000억원에 달하는 높은 금액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건설을 앞세운 한국토지신탁이 NH PE·오퍼스PE와 새로운 컨소시엄을 구성해 막판 승부수를 던지면서 가능했다.
문제는 조선업과 연고가 없는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베팅 금액의 절반 수준을 FI에서 받았다는 점이다. 올 3분기 기준 동부건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040억원으로 최근 5년 동안 가장 적은 규모다. 한토신의 현금 및 예치금 2443억원을 합쳐도 3500억원 수준이다. 부족한 자금은 NH PE·오퍼스 PE가 운용 중인 펀드를 통해 충당 받겠다는 것이다. 1500억원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모펀드에서 절반 이상의 자금을 공급받으면서 부산 지역 여론은 물론 채권단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채권 회수가 우선인 채권단은 당장 금액을 높게 써낸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매각 후 '기업 회생'과 관련해서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각 후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조선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FI의 투자금 회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진중공업은 100여개의 협력업체를 포함해 2000여명의 근로자를 두고 있다.
특히 FI들이 원활한 투자금 회수를 위해 조선업 개발 대신 영도조선소 부지 개발이라는 부가가치를 노리게 된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해운조선산업의 메카인 부산‧경남지역의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PEF 원매자들은 한진중공업이 보유한 알짜 자산인 영도조선소 이전과 해당 부지 개발 방안을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의 핵심가치로 꼽고 있다. 영도조선소 소재의 토지가 상업용도로 변경되면 토지가격이 약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경영참여형 PEF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무리한 용도변경을 요구할 경우 한진중공업의 재무구조는 물론 부산을 중심으로 한 조선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진중공업이 부산에 수리조선과 전투함 건조를 통해 부산 경제에 끼치는 경제적 가치는 상당하다는 평가다.
이에 채권단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선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산지역 시민단체와 한진중공업 노조가 주축이 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살리기 시민대책 위원회’는 “산업은행은 영도조선소를 지속 운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어 “주요쟁점은 예비입찰자가 투기자본인 사모펀드라는 점과 조선소 계속 운영, 고용 보장 여부”라며 “산업은행은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기술 인력을 감축하는 등 조선소 운영에는 의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IB업계 관계자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기업회생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고 채권 회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며 “향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지역경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채권단은 선정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모럴 해저드’라는 비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