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통신·팹리스 행보 본격화하는 SKT... 독자 AI 반도체로 엔비디아·구글과 경쟁 나서

2020-11-25 15:30
3년의 연구·개발 끝에 독자 기술 AI 가속기 '사피온' 공개... 내년 SKT AI 서비스에 적용 후 사업화
GPU 기반 AI 가속기 대비 연산능력 1.5배, 가격은 절반 수준

AI 반도체 '사피온 X220'의 모습[사진=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이 3년 동안 독자 개발한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공개하고 AI 선도기업으로서 행보를 본격화한다. 통신 기업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종합 IT 기업으로 체질 전환을 꾀하는 '박정호 호(號)'의 첫 번째 성과다.

SK텔레콤은 2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 행사에서 AI 모델 실행을 위한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SAPEON(사피온) X220'을 공개하고 CPU, 메모리, GPU의 뒤를 잇는 새 반도체로 여겨지는 AI 가속기 시장에 출사표를 냈다.

행사에서 김윤 SK텔레콤 CTO는 "국내 최초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출시는 SK텔레콤의 기술과 서비스 역량,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이뤄낸 성과다. 향후 AI 반도체와 SK텔레콤이 보유한 AI, 5G, 클라우드 기술을 접목해 세계적인 수준의 AI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사피온을 앞세워 전 세계 AI 가속기시장에서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 선도 기업과 당당히 경쟁할 계획이다.

2024년 약 5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AI 가속기 시장은 현재 미국 반도체(GPU) 기업 엔비디아의 독무대나 다름 없다. 이는 AI 가속기의 구조와 GPU의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GPU 기반 AI 가속기는 비싼 가격과 큰 전력 사용량으로 인해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와 운영 비용을 늘리는 단점이 있다. 이에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은 각각 독자 AI 가속기 TPU, 인퍼런시아 등을 개발하며 탈 엔비디아를 꾀하고 있다.

SK텔레콤도 지난 2017년부터 독자적인 연구 조직을 꾸리고 사피온 개발에 착수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사피온 X220은 GPU 대비 딥러닝 추론 속도가 1.5배 빠르면서 가격은 GPU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전력 사용량도 GPU의 80%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사피온 X220은 대당 100테라플롭스(TFLOPS, 초당 1조번 연산)의 연산 능력을 갖췄고, 전력 사용량은 60W(와트)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기업과 긴밀한 협력으로 사피온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로부터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공급하는 메모리 반도체(D램) 관련 기술을 제공받은 것을 시작으로 반도체 디자인, 서버시스템 제작,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에이직랜드, KTNF, 두다지 등 국내 중견 반도체 기업과 협력했다.

실제로 사피온의 구조는 시중의 그래픽카드처럼 SK텔레콤이 설계한 AI칩과 SK하이닉스의 초고속 메모리를 보드 위에 얹는 형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피온을 서버의 PCI익스프레스 슬롯을 통해 CPU와 연결, 1개의 CPU가 여러 개의 사피온을 관리하는 AI 추론 머신이 완성된다.
 

[사진=SK텔레콤 제공]

사피온 X220은 1세대 TPU처럼 AI 모델 추론(실행)만 가능하고, AI 모델 학습은 아직 어렵다. 엔비디아 GPU에서 학습을 진행하고 완성된 모델을 사피온에서 실행하는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 SK텔레콤은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사피온도 3세대 TPU처럼 추론과 학습을 모두 처리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사피온을 공개함으로써 SK텔레콤은 통신 기업이란 인식을 벗고 팹리스로서 첫발을 내딛게 됐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사피온은 대만 TSMC의 10나노급 공정에서 양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먼저 자사 AI 서비스에 사피온을 적용한 후 대외 고객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SK텔레콤은 미국 반도체 기업에서 공급받은 FPGA(용도 변경 가능한 반도체)로 '누구', '티뷰' 등 AI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내년 초부터 사피온으로 AI 서비스 운영을 시작한다. 사피온이 적용되면 누구의 음성인식, 티뷰의 AI 기반 영상 관제, 슈퍼노바의 미디어 화질개선 관련 성능이 크게 향상되어 이용자 편의성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외 사업의 경우 올해 말 정부의 AI 데이터 가공 바우처 사업과 MEC 기반 5G 공공부문 선도적용 사업에 사피온을 적용해 정부의 AI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5G MEC 기술 전반을 업그레이드한다. 또한 SK텔레콤이 미국 싱클레어 그룹과 함께 설립한 'Cast.era'의 미디어 플랫폼 서버에도 사피온을 적용, 방송 서비스 품질을 향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