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굴' 이제훈의 새 얼굴
2020-11-09 14:25
영화 '도굴'(감독 박정배)도 그렇다. 타고난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 분)가 전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땅속에 숨어있는 유물을 파헤치며 짜릿한 판을 벌이는 영화에서 이제훈은 지금과는 다른 면면들을 꺼내고 또 습득한다.
"저는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 같아요. '박열'이 있었기에 '아이 캔 스피크'를 선택할 수 있었고 지금의 역사관과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됐죠. '사냥의 시간'은 나를 얼마나 바닥으로 내칠 수 있는지 한계를 시험할 수 있었고, '도굴'은 반대로 밝고 유쾌해지고 싶었죠. 모든 작품에 영향을 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도굴' 강동구는 이제훈에게 새로운 면면을 선물했다. 반듯한 배우 이제훈에게 전에 없던 능청과 천연덕스러움을 안겨준 캐릭터였던 것이다.
"제게는 없는 면이에요.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럽고, 얄미운 면면들. 그래서 더 즐기면서 찍을 수 있었어요. 워낙 제가 작품과 캐릭터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요. 이전에는 프레임 안에서 주어진 대사를 하는 걸 선호하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안에서 놀아도 돼', '편안하게 해도 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많은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학창 시절 차분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다는 이제훈은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나면 최근 그의 '변화'를 이해해줄 것이라며 웃었다.
"캐릭터에 푹 빠져 지내니까 실제로도 더 장난기도 많아지고 능청스러워지더라고요. 친구들이 당황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친구들이) '도굴'을 보고 나면 이해해줄 거 같아요."
"생각의 전환을 맞게 된 건 '의문'이 들어서였어요. 저도 극장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킬링 무비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거든요. 저도 재밌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나는 왜 지금까지 이런 장르에 도전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최근 장르에 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멜로, 사랑 이야기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조금 있으면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데 그 전에 할 수 있는 걸 많이 해보고 싶어요."
그의 생각의 전환은 카메라 '안'에서도 그를 성장하게 했지만, '밖'의 모습도 자라게 했다.
"예전에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내 연기에 대한 고민만 해왔어요. 현장을 대하는 시각이 좁았던 것 같은데 여러 해 작품을 해오면서 연기 잘하는 건 물론이고 현장을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우들과의 호흡, 스태프들을 대하는 태도도 더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촬영하다 보면 분위기가 처질 때도 있는데 지금은 제가 독려하고 에너지를 끌어올리려고 해요. 강동구 캐릭터가 활발하고 능청스러우니까 더욱더 그랬던 거 같아요. 타이틀롤로 현장, 홍보 활동도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고요."
그가 생각의 전환, 변화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올해 코로나19 시국을 겪으며 영화에 대한 소중함을 실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사냥의 시간'으로 베를린도 다녀오고 그 주에 개봉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개봉을 못 하게 되었잖아요. 그런 경험을 통해 영화의 소중함이 더욱 커진 거 같아요. 영화가 사람들에게 보이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구나. 그런 부분에서 한 분이라도 더 봐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에 더욱 적극적이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한 소중함, 사랑이 더 커진 거죠."
강동구 캐릭터는 이제훈에게 '내면'의 변화와 동시에 '외면'에도 많은 변화를 안겼다. 헝클어진 머리에 수염까지 자란 모습은 기존 이제훈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
"도굴꾼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의 강동구 같은 비주얼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시대극을 연기하며 수염을 부틴 적은 있지만 실제로 수염을 기른 적은 없거든요. 피부도 하얀 편이고, 수염도 멋있게 나질 않아서 고민이 있었는데 분장 실장님께서 여러 아이디어도 주시고 자신감도 심어주셨어요. 피부도 까무잡잡하게 태닝하고, 수염도 길러봤죠. 고민도 있었지만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보여 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도굴'이 아니었다면 다음 작품도 선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제훈의 차기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다. 불법 스포츠 도박에서 뛰는 이종격투기 선수 역을 연기한다) 계속해서 자극받고 변할 수 있는 거죠."
영화 팬들과 관계자들이 영화 '도굴'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는 건 2편에 대한 암시 때문이었다. 강동구가 일본이 가진 우리나라 문화재를 언급, 일행들과 함께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말을 맺기 때문. 이제훈은 "충분히 가능하다"라며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도굴이라는 소재로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져요. 보물섬에 대한 상상도 할 수 있고, 해외 미술관·박물관이 돌려주지 않는 우리 문화재를 가져온다는 상상도 할 수 있잖아요. 도굴이라는 소재로 계속 이야기를 진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죠. 물론 2편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 거니까요."
이미 배우들과 제작진들 간에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상태라고. 영화 말미 함께 일본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모두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많은 분이 힘들어하고 계세요. 문화적으로 에너지를 드리고 싶어요. '도굴'은 스트레스도, 고민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에요. 물론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영화도 좋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요즘 관객들에게) 필요한 거 같아요. 많은 분이 힐링 받고, 위로받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