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공시가격 인상, 전세난 더 악화시킬 것"

2020-11-04 14:35
공인중개사들 "임대차3법 겹쳐 전·월세 폭등 불가피"
공시가격 인상 법률적 당위 이해…시기 선택 잘못돼

정부가 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기로 하면서 과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세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돌고 있는 상황인 만큼 시장 주도권을 쥔 임대인이 원하는 대로 가격을 높일 가능성이 커서다.

4일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따르면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오는 2030년까지 90%로 상향된다.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인 공시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유주택자의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건강보험료 등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 급격히 증가하게 됐다. 

 

아파트 단지별 보유세 증가 추이.[자료 =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팀장]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9억원대 아파트인 서울시 서대문구 ‘DMC래미안클라시스‘ 전용면적 84㎡로 예를 들어 보유세는 올해 82만원에서 공시가격 90% 기준 339만원까지 오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공시가격을 높이는 법률적 당위성에 공감하면서도 임대인의 세부담이 임차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전세난이 극심해 매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191.1로 집계돼 전월 대비 4.1포인트 올랐다. 이는 지난 2001년 8월(193.7) 이후 19년 만에 경신한 최고치다.

같은 기간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도 189.3에서 191.8로 2.4포인트 높아졌다. 역시 2015년 10월(193.8)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지수는 최소 0에서 최대 200까지 산출한다. 100을 초과할수록 수요가 공급량에 비해 많다는 의미인데, 현재 시황은 극단적인 공급 부족 상태인 셈이다.

 

[자료 = KB국민은행]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자산에 과세하는 공시가격은 시세와 근접하게 책정되는 게 맞다“면서도 ”임대차3법에 3기 신도시 대규모 공급이 예정된 상태에서 시기가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내년까지 전세난이 계속된다면 보유세 부담이 임차인에 돌아가고 보증부 월세 고통도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더했다. 공시가격은 매년 점진적으로 올라가지만, 임대차3법으로 인해 임대료 인상률이 제한된 만큼 최대한 시세를 높여두려는 분위기여서다.

서초구 A공인 대표는 “임대료 인상률이 직전 계약액 대비 5%로 제한되니까 집주인들은 당연히 전세가 귀한 지금 최대치로 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이 5억300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셋값 인상률이 5%만 돼도 서울 직장인 평균 연봉(2600만원)과 유사하다.

이어 그는 “월세를 받는 수익형 부동산(다세대 주택 등) 소유주들은 보유세가 늘면서 수익률이 하락했기에 마찬가지로 (값을) 올려 부른다”고 부연했다.

공시가격이 시세와 유사해야 하는 이유는 근거 법인 ’부동산공시법’ 때문이다. 이 법에는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질 경우 성립 가능한 수준에서 공시가격을 책정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법이 제정된 후 올해까지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가격대별로 최소 68%에서 최대 80%에 그쳤다. 공시가격 인상은 곧 증세와 연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