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갈림길에 선 한국의 기본소득
2020-10-07 15:15
‘한국형’이 유행하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이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면서 ‘K-방역’이 국내에서는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는 사이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방탄소년단의 ‘다이나마이트’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랐다. 명절마저 온라인으로 맞이해야 하는 국민들에게는 손흥민의 골잔치도 짜릿한 기쁨이 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K-방역’, ‘K-안전’에 이어 ‘한국판 뉴딜’, ‘한국형 기본소득’, ‘한국형 재정준칙’ 등이 난무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이 장기화하면서 기본소득이 예상보다 빠르게 한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원래 한국 사회는 복지에 적대적이었다. 경제성장에 매몰되었던 당시에 복지는 곧 ‘복지병’이었다. 협력보다 경쟁을 우선하는 능력주의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 당연히 복지로서의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분위기가 우세했다. 게다가 핀란드의 실험이 실패했다는 과장된 보도와 함께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로 부결되었다는 소식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마저 봉쇄하는 분위기였다. 추가적인 복지 수요가 거의 없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에서 구해진 실험결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복지국가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병이 장기화하자 선별적이나마 행동에 가장 앞장선 것은 전주시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국제학술대회 개최 등으로 여론몰이를 하다가 코로나19 국면에 ‘재난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할 것을 제안하면서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명칭은 통일되지 않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지급으로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방역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야당 비대위원장의 행보이다. 그가 당 정강·정책에 가장 먼저 강조한 기본소득을 개념에 근접하게 지급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소요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투입이 확산될수록 이 재원을 마련하는 생산에서 인간의 노동이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크게 본다면 선택지는 노동시장의 외부유연성과 내부유연성 둘뿐이다. 경제 전체의 노동량(총노동시간)이 줄어드는데 개인별 노동시간을 유지하면 실업자는 양산되고(외부유연화) 생산물의 공정한 재분배가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반면에 총노동시간이 줄어들 때 내부유연화로 개인의 노동시간도 줄어들면 고용량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핵심과제는 개인 노동시간의 공정한 분배가 될 것이다. 외부유연성이 선택되면 진보적 어젠다인 기본소득은 대량실업으로 극우의 어젠다로 변질될 것이다. 여당이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진흙탕에 빠져 있는 사이에 노동시장 유연화 문제를 야당 비대위원장이 정면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이 극우 버전을 향한 사전작업이라면 한국 사회에는 좋지 않은 시나리오이다. 이 시나리오가 우려되는 것은 그가 ‘5·18정신’과 ‘태극기 부대’에 양다리 걸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