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코로나 시대, 위로와 공감 건넨 '나훈아'···"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2020-10-06 00:00

"코로나19, 이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것 때문에 '내가 절대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하는 사람이 기타 하나 있으면 어때? 피아노 하나 있으면 어떠냐고. 노래 해야지."

‘트롯의 황제’ 가수 나훈아가 추석 연휴 안방 시청자들을 흔들어놨다. 

대한민국에 나훈아 신드롬이 불었다. 힘든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에게 힘이 되기 위해 나훈아가 무보수 콘서트를 연 것이다.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가사와 쉬운 멜로디로 사랑받는 국민 가수 나훈아가 TV에서 신곡 '테스형!'을 목놓아 부르자 온국민이 반응했다.

1966년 데뷔해 54년의 세월. ‘가황’으로 불리는 가수 나훈아는 추석 연휴, 세상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흔셋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열정적인 자태, 지치거나 물러서지 않는 강건함으로 화려하고 강렬한 무대를 꾸며냈다.
 

30일 KBS2에서 방영한 '나훈아 대한민국 어게인' 공연의 한 장면.
 

◆ 젊은층에도 통했다 "테스형, 신세대를 사로잡다"

나훈아가 추석 연휴 기간인 9월 30일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을 통해 한 편의 잘 짜인 공연을 선보였다. 30일 공연 실황은 29%(이하 닐슨코리아)에 이어 관련 뒷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포함된 3일 ‘스페셜’ 편은 18.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률로 입증한 폭발적인 영향력은 TV를 넘어 곧장 온라인상으로까지 퍼져갔다. 중장년층뿐 아니라 1020세대 등 다양한 연령층이 나훈아의 노래를 찾아 들으며 열광하고 있다.
 
나훈아 음악 인생 최초로 현장 관객 없이 언택트 방식으로 진행한 이번 콘서트는 사전 신청자 중 1000명만 선정해 라이브로 관람하게 했고 재방송과 동영상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못박는 등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공연을 결심했다는 그는 출연료도 받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나훈아는 이번 공연에서 2시간 반 동안 ‘고향역’ ‘무시로’ ‘잡초’ ‘홍시’ ‘울긴 왜 울어’ 등 주요 히트곡과 ‘명자’ ‘테스형’ 등 30곡을 부르는 동안 트로트의 한계를 벗어나 국악, 사물놀이, 클래식, 포크, 헤비메탈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을 시도하며 종합예술가적 면모를 드러냈다.
 
나훈아는 ‘대한민국 어게인’을 통해 화려한 콘서트 현장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는 2시간 30분 동안 무대를 지키며 모두 28곡의 노래를 불렀다. 무대 위에서 의상을 빠르게 갈아입기까지 했다. 실제 크기의 모형 배와 기차를 무대에 동원하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화면을 이용해 바다에 뛰어들거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장면 등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를 실감나게 펼쳐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폭파하는 화면 연출은 그 중 압권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이 같은 스케일과 ‘가황’다운 절창의 목소리는 “이번 방송으로 나훈아 무대를 처음 접했다”는 10~30대 시선까지 다잡는 데 성공했다. 공연 실황이 방송되는 내내 각종 음원 사이트 검색 차트에는 나훈아와 그의 노래들이 톱5에 이름을 올렸다. SNS 플랫폼인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에도 ‘나훈아 콘서트’가 1위에 랭크됐다. 4일 현재까지 유튜브 인기 영상 차트에 나훈아의 과거 무대 모음 영상이 오를 만큼 열기는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사진= KBS 제공]

 

특히 이번 콘서트 방송에서 첫 선을 보인 신곡 ‘테스형’은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며 ‘나훈아 현상’을 이어가고 있다. ‘테스형’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고 부르며 ‘세상이 왜 이래’ ‘사랑은 또 왜 이래’라고 푸념하는 곡. 이날 방송 이후 ‘라톤(플라톤)형’ ‘맑스(마르스크)형’ 등의 패러디가 등장하는 등 밈(모방과 복제를 통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나훈아는 '테스형!' 무대 이후 "아까 부른 신곡 중에 테스형한테 내가 물어봤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테스형도 모른다고 한다. 테스형은 아무 말이 없다. 세월은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다. 세월은 그냥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가게 돼있으니까 이왕에 가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하느냐.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세월한테 끌려가는 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가본 데도 한 번 가보고 안 하던 일을 하셔야 세월이 늦게 간다.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거다"라고 장담했다.

◆ 나훈아, "코로나19 뚫고 찾아온 열정, "새로운 무대에 대한 도전은 계속된다"

1966년 데뷔해 올해로 가수생활 54년째인 나훈아는 지금까지 녹음해서 발표한 곡 수가 2600여 곡에 달한다. 이 가운데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만 800곡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이혼소송 당시 그가 벌어들이는 저작권료가 연간 4억~5억원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나훈아의 콘서트는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공연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사흘간 연 공연은 총 1만석이 넘는데도 8분 만에 티켓이 매진됐고 정가의 2~3배에 이르는 암표가 나돌 만큼 뜨거운 인기를 과시했다.

나훈아의 이번 공연이 세대를 초월한 호평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가수로서나 쇼맨으로서 수십년간 쌓아온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평이 나온다. 최근의 트로트 열풍을 넘어설 만한 재능이라는 것이다.
 

KBS2 '나훈아 대한민국 어게인' 공연의 한 장면.
 

한국의 대표적 대중음악 장르로 군림했던 트롯을 부른 수많은 가수들 중에서도 나훈아의 무대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이유는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 때문으로 평가된다. 나이를 잊게 하는 폭발적 무대매너와 끝없는 도전,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가창력이 50여년의 가수생활에도 바라지 않는 그의 압도적 위상을 설명한다. 노래방기기에 가장 많은 곡을 등록한 가수라는 대중성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업체별로 211~235곡이 등록돼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많다.
 
음악적으로는 수많은 자작곡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블루스, 민요와 트롯을 섞은 스타일로 분류되는 그의 곡들은 한국 가요계에 성인 음악의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는 점도 그의 ‘롱런’의 동력이다. 평소 공연을 통해 재즈, 스윙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 온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헤비메탈 밴드 ‘메서드’와 협연하고 어쿠스틱으로 팝송을 부르며 젊은 세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럼에도 ‘나훈아스러움’을 유지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코로나19라는 시대적인 어려움, 젊은 층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려는 열정,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나훈아 신드롬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에 나훈아가 던진 화두는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