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흔들리는 남북미] ② 北 ‘전염병 사전차단’ 의지에 남북 악화일로

2020-10-03 18:00
남북 관계 '南 공무원' 피격 사건 계기로 다시 벼랑 끝
남북 정상 친서 교환·김정은 공개사과에도 교착 여전
당 창건 75주년 앞둔 北, 체재안정·美대선에 집중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한반도 정세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다. 북한은 바이러스 유입을 막고자 국경을 차단함과 동시에 대화의 문을 닫았다. 또 외부인 입국, 외부물자 반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남측 공무원을 사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미 비핵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인물 중 한 명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년 만에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을 미국과 함께 만들어가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이 코로나19에 다시 제동이 걸린 셈이다. 전대미문의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속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전망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국면에 빠졌던 남북 관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벼랑 끝에 몰렸다. 북한이 지난달 22일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를 북측 해상에서 사살하면서다.
 
지난달 24일 우리 정부가 북한에 정식으로 해명을 요청했다. 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루 만에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여전히 악화 일로를 겪고 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앞서 김 위원장의 통지문 발송 소식과 함께 남북 정상이 지난달 초 친서 교환 사실을 공개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 정부의 ‘공동조사’ 요구에 함구하며 남북 대화 재개에 대한 희망은 다시 사라졌다.
 
특히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에 위로전문을 보낸 사실을 선제 공개하는 등 여전히 미국과 관계를 남측과 관계보다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남북 관계 개선 기대를 낮추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화군 수해 복구 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2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北 ‘공무원 사살’ 언급 없이 해안지역 방역 강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대중의 자각적 열의를 적극 발동하여’라는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방역사업을 소개했다.
 
특히 강원도 안변군과 함경남도 정평균, 함경북도 어랑군 사례를 언급하며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적 특성에 맞게 해안가와 그 주변에 대한 엄격한 방역학적 감시를 항시적으로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해안연선이 긴 지리적 특성에 맞게 감시초소들을 합리적으로 정하고 군 일꾼(간부)들이 정상적으로 순회하면서 이 사업에 동원된 성원들이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책임성을 다해 나가도록 적극 떠밀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다로 밀려들어 오는 오물 처리를 비상방역 규정의 요구대로 엄격히 할 수 있게 조건 보장 사업을 실속 있게 앞세워 사소한 편향도 나타나지 않게 하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의 해안지역 방역 규정은 지난 1월부터 이어진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북한이 남측 공무원을 ‘해상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사격했다고 밝힘에 따라 북측의 해안지역 방역 규정 언급은 주목받을 만하다.

또 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장관 회의 후 공동조사를 위한 협의를 위해 군 통신선을 재가동하자고 북한에 요청한 것에 대한 북한의 응답이 없는 상황인 것도 신문의 보도가 주목받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8차 정치국 회의에서 코로나19 비상방역사업과 태풍 피해 복구 사업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공개 사과한 남측 공무원 피격사망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북한이 지난 2일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조선혁명박물관에서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 개관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공동조사 외면한 北 당 창건 75주년 준비 집중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남측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남북 대화 재개의 실마리는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시선은 남북 관계 개선보다 당 창건 75주년인 오는 10일 국정운영 성과 발표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은 오는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의미 있게 기념한 후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 등을 보면서 예정된 내년 1월의 제8차 당 대회를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당 창건일의 열병식 개최 여부, 김 위원장의 연설 여부 등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전날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대동한 채 강원도 수해 복구 현장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현지지도에서 “이곳에 오니 지난 8월 중순 900㎜ 이상의 재해성 폭우에 의해 도로까지 다 끊어져 직승기(헬기)를 동원하여 피해 상황을 요해(파악)하고 1000여 세대에 달하는 살림집 피해라는 처참한 참상을 보고받으며 가슴이 떨리던 때가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민들이 무너진 주택 신축 공사에 기뻐했다는 보고를 받고는 “정말 기쁘다”며 “설계와 시공에 이르는 건설 전 공정이 인민대중제일주의, 인민존중의 관점과 원칙에 의해 전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016년에 천명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성과를 이번 당 창건 기념일에 발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와 이례적으로 길었던 폭우와 태풍 피해에 코로나19 방역화 수해 피해 복구를 당 창건 기념 국가사업 성과로 재조정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추석에도 일하는 지도자상을 보여주면서 당 창건 75주년을 성대히 맞기 위한 독려 차원의 현지지도”라고 분석했다.

다만 양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국 회의 주재와 현지지도, 김여정의 등장으로 문 대통령의 공동조사 제안에 화답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라면서 “단지 북한 내부적으로 김 위원장의 사과표명과 군사적인 방역 수칙 준수 사이에서 문제 해결방안을 내놓는 데 많이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북한이 지난 2일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조선혁명박물관에서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 개관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