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북미 대화 가능성과 성공조건은?

2024-11-14 08:50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대표]
 

 
초접전을 예상했던 미 대선은 트럼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47대 미 대선 결과가 한국에도 초미(焦眉)의 관심이었던 것은 미국이 한국의 경제는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 2기의 북·미 관계가 어떻게 될지,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해진다.
 
북한은 트럼프의 재선에 아직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언급은 있다. 지난 7월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에서 어떤 행정부가 들어앉아도…우리는 그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친분을 자주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미 관계 전망에 대한 미련을 부풀리고 있다"면서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고 했다.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가 진정으로 북한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면 북한의 자세는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대결적 자세를 갖추면서 침묵 또는 비난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 북·미 사이에는 대화를 도출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에서 비롯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핵 문제를 풀고, 인민의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평양에서 하노이까지의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안겨준 것은 허탈감뿐이었다. 회담이 결코 결렬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북한은 말할 수 없는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당시 핵 문제 해결과 관련 북한이 미국에 요구했던 것은 단순했다. 영변의 원자력 시설을 전문가 입회하에 "영구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해체하는 대신, 유엔 대북 제재 11건 중, 2016년과 2017년에 부과된 민생과 관련된 5건의 제재를 미국이 해제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에 크게 유리한 조건의 협상이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미국의 의도적인 협상 불발로 북한은 인식한다. 엄청난 수모를 겪은 북한은 그 후 미국을 절대로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둘째, 과거 트럼프 1기와는 크게 높아진 북한의 위상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대화가 중단된 이래 북한은 줄곧 핵·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2023년 9월에는 핵 무력 정책을 헌법에 공식 명시하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북한 스스로 “새로운 초강력 공격수단, 최종 완결판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일컫는 「화성-19형」의 시험발사에도 성공했다. 북한이 그동안 발사해온 미사일 가운데 가장 높은 고도와 긴 비행시간을 기록했다. 2025년은 북한이 내건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다. 북한은 극초음속 무기,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 5000㎞ 사정권의 타격 명중률을 높이는 국방 핵심 과업을 완수할 계획이다. 북한 핵무기가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는 현실은 미국이 기존의 선택을 달리하는 바탕이 되기에 충분하다. 북한의 비핵화를 어차피 장기적인 목표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되, 핵 비확산에 더 큰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중국의 강력한 지원을 얻고 있는 점도 제고된 북한 위상의 한 면목이다. 훨씬 더 고도화한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북·러 군사협력과 함께 북·미 대화의 변수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북한이 미국과 새로운 대화에 응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북한으로서는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을 가장 선호할 것이다. 여기에다 북·미 수교를 비롯, 대북 경제제재 해제와 경제협력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특유의 저돌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고려한다면 이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핵보유국 인정'에 대한 직접적 수용을 떠나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핵무기 해체’ 요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트럼프에게는 북한과 실현 가능성이 없는 사안에 집중하기보다는 차라리 북한을 활용해 대중국 견제나 압박에 전념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도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대선 후보직 수락 연설에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바 있다.
 
한편, 북한 핵무기 보유의 ‘사실상 인정’을 바탕으로 북·미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한·미동맹 관계는 어떻게 될까? 그런 대화가 이루어지기 훨씬 전부터 강한 거래적 성격으로 달라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달리 말해 한국이 자국의 안보를 돈을 주고 사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주지하듯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지향점은 미국의 정치적 이익이다. 트럼프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더는 한국에 ‘호구’가 되지 않을 것임을 누차 언급해 왔다. 미국만 바라보는 외교 노선을 고수해 온 윤석열 정부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 정책의 가장 약한 고리로 작용하기 쉽다. 한·미 사이에 이미 합의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도 트럼프 2기에는 그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연합훈련에 대해서도 상당히 큰 비용을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트럼프의 생각을 벗어난다면 미국은 전례 없는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도 크다. 즉, 한·미 상호방위와 관련, 한국의 독자적 역할을 요구하거나 미군 감축이나 철수까지도 거론하며 압박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런 선례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으로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는 과거 자신의 임기 말에 독일 주둔 미군 철수를 시도한 적이 있다. 2023년 4월 '워싱턴 선언'에 따라 북한의 핵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는 물론,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대응과 한·미·일 군사협력도 기존에 유지해 온 기조에 상당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추구하는 트럼프와 이에 대한 푸틴의 긍정적 호응은 살상용 무기를 포함한 단계별 지원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무기력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상과 같은 상황에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대외 정책적 기조를 모두 혁신하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는 물론, 무비자 입국 카드를 내민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미군 감축과 철수 상황까지도 예비하면서 군사력 세계 5위의 한국 위상에 맞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 핵심적 방향은 한반도 평화 정착이다.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주변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우선한 평화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윤 정부의 발 등에 불은 이미 떨어졌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