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통일'하지 말자고요?

2024-10-11 08:34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대표]
 


 
지난 9·19 평양 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난데없이 “통일하지 말자”고 했다. 남북 관계에서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차원의 이야기였다지만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고 30년 후에나 잘 있는지 열어 보자”고 말한 것을 보면 통일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더구나 “헌법 3조 영토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까지 했으니 이는 한반도가 통일이 아닌 분단 상태의 영구화로 가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임 전 실장의 이번 발언은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제의가 우리의 인식에서 크게 유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분단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언젠가는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함께 하고 있다. 남북 관계는 싫든 좋든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이념적 이슈이며 통일은 이루어내야 할 사명이자 비전이기도 하다. 그런 우리에게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삶의 방향타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헌법 제4조)을 포기하고 영구 분단 상태로 흔쾌히 있으려고 할까?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하는 헌법 제3조를 개정하는 것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할 것으로 보는가? 평화통일이 만들어 갈 새롭고 무한한 가능성의 한반도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통일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쉽게 머리에도 가슴에도 와닿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현실과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제의라는 것이다. 임 전 실장은 “통일하지 말고 그냥 따로 살면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돕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단단히 평화를 구축하고 이후의 한반도 미래는 후대 세대에게 맡기자”고도 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과연 지금의 남북 관계에 부합하는 것일까? 통일을 포기하면 남북한이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돕고 같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보장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래서 지금의 남북한 적대적 관계가 라오스나 캄보디아와 같은 관계의 나라가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현재의 남북 관계가 ‘상호 존중과 행복’을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에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임 전 실장의 발언이 뜬금없다는 것은 바로 이래서다. 북한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설정하고 통일은 물론 대한민국에도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일전(日前)에도 대한민국을 의식하는 것조차도 ‘소름 끼칠 정도’라고 했다.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이 나면 한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북한에 편입하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맞서 남한도 ‘대한민국이 현재 누리는 자유를 북녘땅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정권 종말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상호 무력 충돌의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태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두 국가가 고도의 적대적 관계로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이런 적대관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다. 이는 통일 포기나 두 국가론과는 별개의 문제다. 남북이 현재와 같은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이유부터 찾는 것이 시급하고 절박하다. 작년 12월 이후 북한이 왜 토라진 듯 적대적 두 국가로 남북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그 답을 찾아내야 한다. 북한이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차단·봉쇄하려는 기본적인 이유를 알아내 먼저 해결하는 것이 임 전 실장이 말한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
 
한반도 통일을 포기하고 남북한을 두 국가로 존재하게 하려는 것이 한 나라의 정책이라면 이는 어느 정도 중요한 정책일까? 정책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어제오늘 갑자기 만들어 제시할 정책이 아닌, 오랫동안 가다듬고 오랜 시간 동안 충분한 여론 조성을 거친 후 추진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현상을 타파하는 대안적 성격의 정책은 더더구나 안 된다. 남북이 오랫동안 바람직한 관계를 지속해 오다가 서로를 위한 가장 최선의 방책이라는 확신이 들 때 최종적으로 선택해야 할 정책이다. 임 전 실장이 그런 정책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지난 정부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그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 얼마나 힘썼는지 알고 싶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지 않았는가. 일명 ‘서울의 봄’으로 불렸던 2018년 판문점 정상회담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9월 19일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 모인 15만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외침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는가? 두 정상이 비핵화와 평화를 약속했으면서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하나 다시 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사 온 나라가 한국이었으며 문재인 정부 때였다. 겉으론 ‘서울의 봄’을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제5위가 될 만큼 국방력을 갖추는 데 치중했다. 이것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과 맞물리면서 남북 관계는 파탄이 나고 말았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남북 관계 또한 작동할 수 없다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동조했다. 북한의 두 적대적 국가론은 이미 그때 잉태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슨 뜬금없는 두 국가론인가 말이다.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통일을 위해 먼저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데에도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그러나 남북한 간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두 국가론보다는 적대적 관계부터 먼저 바꾸는 것이 옳다. 지금처럼 두 국가로 존재하면서도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먼저 남북한을 통일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북한을 다른 외국처럼 얼마든지 방문할 수 있고 북녘땅을 거쳐 유라시아를 오갈 수 있는 상태가 더 바람직하다. 북한 학생들이 남한에 수학여행을 오고, 남한 대학생이 북한에 자원봉사를 갈 수 있는 상태가 먼저 되어야 한다. 이같이 남북한이 연결된 상태가 통일과 같은 상태다. 이것이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이다. 남북을 연결하자. 연결이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다. 하나가 될 수 있는 바탕이 연결이다. 동서독 통일이 그런 연결로 이루어졌다. 그들이 내세웠던 ‘접근을 통한 변화’는 연결이 그 핵심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목표도 연결이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긴 세월을 적대적 관계로 살았는가? 우리 후손에게 이대로 물려줄 것인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지금부터라도 적대적 대결의 자세를 연결로 바꾸는 것이다. 연결을 위해 전단지 살포나 오물 풍선을 당장 거두어라. 쌍방 간 확성기 방송도 곧바로 중단하라. 한반도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