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 말 안먹히는데"… '재정 준칙' 무용지물 우려

2020-09-13 14:32
긴급재난지원금부터 4차 추경까지 기재부 입장 관철 실패
"법적 강제 없는 재정 준칙은 선언적 의미에 그칠 것" 지적

네 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으로 올해 재정건전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9월 중 '재정준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에 대한 고려보다는 정치 논리가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재정 칙은 무용지물이라는 비관론이 제기된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재정준칙을 도입한 해외 사례를 검토 중이며 한국의 사정에 맞는 준칙을 마련해 9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재정준칙 도입 논의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하자 탄력을 받았다. 정부는 7조8000억원 규모의 4차 추경 중 7조5000억원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한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9%로, 국가 재정의 실질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6.1%로 치솟는다. 두 지표 모두 역대 최악이다.

그러나 재정준칙이 재정건전성 회복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경제부처 입장이 번번이 정치 논리에 밀리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 논의 때 기획재정부는 소득 하위 70% 지급안을 제시했으나 결국 100% 지급으로 결정됐다. 

4차 추경 때도 마찬가지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24일과 25일 연달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경우 더 이상 구조조정할 예산이 없어 국채 발행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난색을 보이며 "4차 추경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시급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기재부 내부에서는 정치권에서 논의가 나온 이상 결국 따르게 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기재부의 모 과장은 "부총리가 국회에 출석해 4차 추경 재원 마련 난색을 보이던 와중에도 예산실은 '결국 (추경을) 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었다"며 "4차 추경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2차 재난지원금만 할지, 추가 대책을 더할지가 관심사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일주일 만에 4차 추경 추진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기재부가 '선심성 정책'도 막지 못할 정도로 발언권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만 13세 이상 전국민 통신비 지원에 9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한다. 그러나 통신비 2만원 지원은 여당 내에서도 '차라리 백신이나 공공 와이파이에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졸속으로 마련됐다.

홍 부총리는 "정부는 재원의 어려움이 있어 일부 계층에 우선 지원하는 방안을 제기했으나 당 대표와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최종적으로 13세 이상 국민에 드리는 걸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기재부의 입장은 관철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 관료들의 발언권이 약해져 있고 경제 논리가 정치 논리에 밀리는 상황에서 재정준칙을 도입해봐야 무용지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 재정 준칙은 중기재정계획을 세우는 것과 차이가 없는 선언적인 의미만을 가질 것"이라며 "이미 중기재정계획에서 재정건전성 회복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2021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2020~2024 중기재정계획'도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계획에 따르면 2024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5.6%, 국가채무비율도 58.6%로 치솟는다.

박 교수는 "이미 재정건전성은 역대 최악으로 악화했는데 중기재정계획 기간인 2024년이 지나서부터 재정준칙을 도입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기획재정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