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파업의 역사] 의약분업부터 시작된 '정부 불신'

2020-09-10 08:00
1999-2000년 의약분업 반발로 첫 파업
2014년 원격의료 도입 반대로 파업

의약분업은 2000년 김대중 정부가 시행하면서 시작했다. 의약분업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로 요약된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외래환자도 진료 직후 병원에서 처방약을 받을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의약품 오남용, 그중에서도 항생제 처방률을 낮춘다는 이유로 의약분업 정책을 밀어붙였다.

의사들 입장에서 의약분업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뺏기는 것으로 이해됐다. 자신이 처방한 의약품을 의료기관에서 바로 외래환자에게 줄 수 있는데도, 이 기능을 약국으로 옮기는 것은 의사가 가진 핵심 권한을 뺏기는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1999년 11월 이전에는 의료기관이 의약품 거래를 통해 마진을 남길 수 있었지만, 이때 실거래가 상환제가 도입되고 약 가격이 평균 30% 인하되면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의약분업까지 시행하자, 의사들은 자신들의 팔과 다리를 잘리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반발이 극심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가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도로에서 '의대정원 증원 반대' 등을 외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99년 11월 30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집회에 2만명, 2000년 2월에는 4만명이 서울 여의도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의사들이 이 같은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같은 해 4월 4~6일에는 사상 첫 휴진을 강행했다. 이후 7월에는 전공의들이 집단휴진에 들어갔고 뒤이어 9월에는 의과대학 교수들도 단체행동에 동참했다. 의대생들 또한 투쟁에 함께했다. 당시 전국 36개 의대 본과 4학년 학생 3081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투표에서 2186명의 의사국가고시를 응시하지 않는 데 찬성했다.

이에 맞서 정부도 강하게 밀어붙였다. 김재정 당시 대한의사협회장은 집단 휴업 지시를 내리고 전공의들의 폐업을 지시해 170개 병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김 전 회장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외에도 전국 3000여명의 의사가 경찰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의약분업이 2000년 8월 전면 시행됐다. 하지만 의사들은 정부가 당시 약속했던 '선시행 후보완'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금까지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서 교수 200여명이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사단체가 두 번째로 집단휴진을 강행한 것은 2014년 원격의료 파동이다. 원격의료는 의사와 의사,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지는 의료행위를 의미한다. 의사가 없거나 부족한 도서벽지 등에서 ICT 기술을 이용해 환자가 의사로부터 화상으로 진료를 받게끔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였다.

그러나 의사들의 반발이 컸다. 의료산업화를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표면적 이유도 있었지만, 이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대규모 자본을 통한 의료 자원을 확보한 대형병원이 장기적으로 동네 의원보다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주요했다. 의사사회에서 원격의료는 동네 의원을 죽이는 정책으로 인식된 것이다.

2014년 3월 10일 당시 노환규 의협 회장은 원격의료 등에 반대하며 전국의사 총파업을 시행했다. 전국 전공의 1만7000명 중 필수 의료인력을 제외한 7200명이 파업에 참여했고, 개원가들도 힘을 보탰다. 그러나 당시에는 2000년 의약분업을 위한 파업처럼 명백한 투쟁 요인이 없었던 만큼 파업 동력이 크지 않았다.

이번 집단휴진 사태에선 의사단체가 줄곧 문제로 제기해온 수가 문제가 다양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수가는 환자에게 검사와 처치 등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의사의 진료 행위에 값으로 매기는 기준이다.

수가가 높을수록 의사들 수입은 많아진다. 현재 수가는 진료원가의 70%대 수준에 불과하다고 의료계가 주장한다. 예컨대, 의사가 환자 1명을 치료하면서 100원이 더 들었는데 건강보험으로 보상받는 것은 70원에 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 검사나 진료를 통해 부족한 수익을 메우고 있다고 의사단체가 주장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회현동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열린 최대집 의사협회장과의 합의 서명식을 위해 식장으로 향하자 전공의들이 저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갈수록 동네 의원의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의사사회에선 큰 위기다. 의사들은 주요 수입을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얻는 구조다. 그런데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동네 의원 점유율은 감소 추세 또는 제자리걸음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5월 발간한 2019년 '건강보험 주요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총진료비는 85조4775억원으로 전년 대비 11.4% 증가했다. 요양기관별 진료비 점유율은 상급종합병원이 전체 17.5%를 차지했다. 이어 종합병원 17.2%, 병원급 16.7%, 의원급 28%, 약국 20.5% 보건기관 0.2% 등이었다. 상급종합병원(대형병원)은 전국에 42곳뿐이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은 3만 곳이 넘는다.

올해 정부·여당이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등의 의료 정책도 의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이다. 1년간 배출되는 공공의사 4000명이 의무복무에 따라 한동안 공공의료 분야에 종사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상당수가 동네 의원 시장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이 의료계 내에서 지배적이다.

의사단체는 한마디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는 예민한 사안을 자신들과 처음부터 협의하지 않고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인 것에 대해 불쾌하다는 것이다. 의료 전문가들을 배제한 채 정부·여당이 논의해 내놓은 정책인 만큼 정부가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의사단체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있다. 지난 20년간 누적돼온 불만이 이번 의대 정책 반대를 위한 집단행동을 통해 표출됐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