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구글벤처스' 만든다

2020-07-30 16:33
대기업 자금, 벤처투자처럼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인
총수 관련 회사엔 투자 안되고 펀드 외부자금은 40%까지만

철옹성 같던 금산분리(산업 자본의 금융 소유 금지) 원칙이 깨졌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기업의 주머니를 열어 생산적인 곳으로 자금을 유입하기 위한 묘책이다. 코로나19 시국에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의 절박한 심정이 담겼다.

정부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1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추진 방안’을 확정했다.

홍 부총리는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이 설립한 구글벤처스는 우버 등 투자 성공 사례를 창출했다"며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벤처투자 선순환 생태계 구축 등을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제한적 소유를 허용했다"고 밝혔다.

​◆대기업 CVC, 완전자회사로 허용…총수 관련 회사 투자 금지

현행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금융과 산업 간 위험이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주사 체제가 아닌 삼성·카카오 등 9개 집단은 11개 국내 CVC를 보유한 반면, 지주회사인 SK·LG는 해외법인 형태로 CVC를 보유 중이다. CVC가 금융회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CVC는 대기업이 소유한 벤처캐피털로, 투자할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외부 출자자를 모집해 펀드를 결성한다. 
 
정부는 기업집단이 보유한 유동 자금이 생산성 높은 투자처로 흘러갈 수 있게 공정거래법을 개정한다. 단 이를 악용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일반지주회사는 CVC를 보유하려면 지분을 100% 보유한 완전 자회사 형태로 설립해야 한다. CVC 차입 규모는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해 지주회사의 경제력 집중 우려를 해소했다.

업무 영역도 한정했다. 투자는 가능하지만 금융 업무는 불가능하다. 외부자금 출자는 펀드 조성액의 최대 40%까지만 가능하다.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를 방지하기 위해 소속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한 투자는 금지된다. 해외 투자는 CVC 총자산의 20%로 제한했다. 벤처투자가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재계 "숨통 트일 수 있는 단초 vs 반쪽짜리 규제 완화"

재계는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 지주체제 밖 계열사가 보유한 CVC는 재무적 투자에 치중하게 되는 반면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둔 CVC는 전략적 투자도 가능하다. 세제 혜택은 덤이다.

CVC의 제한적 허용이 각종 규제 속에서 그나마 진일보했다는 게 정보통신(ICT) 업계의 시각이다. 당장 투자를 받아야 할 ICT 업계에서는 자금 수혈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정부가 마련한 안전판이 기업이 전략적·재무적 투자를 고려할 수 있는 수준이라서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반쪽짜리 규제 완화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미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CVC를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은 별다른 규제 없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며 "각종 제약과 정부의 감시를 받으면서 지주회사 내로 CVC를 둘 유인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CVC 차입 한도를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한 점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중소기업 창업투자회사(1000%)나 신기술사업금융업자(900%)의 차입 비율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정부 정책의 변동성까지 염두에 둔다면 성급히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는 올해 내 입법을 목표로 두고 있다. 관건은 국회다. 현재 CVC 보유 허용을 담은 법안만 8건 발의됐다. 허용 수준과 범위 등이 제각각이라 의견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정진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해서 조율하겠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