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주식 올인 '빚투' 청춘…한탕 노리다 한방에 훅간다
2020-07-22 19:00
30대 72.6% 로또 구입 경험…24.4% "매주 산다"
신용 융자 잔액 13조4162억으로 IMF이래 최고
역대급 저금리 기조에 대출·연체는 점점 늘어나
신용 융자 잔액 13조4162억으로 IMF이래 최고
역대급 저금리 기조에 대출·연체는 점점 늘어나
A씨는 "(A제약사의) 안정적 성장 흐름을 확신해 대출까지 받아 주식을 사들였는데, 전혀 예상도 못했던 소송전에 휩싸여 주가가 폭락했다“며 “증권가에서 내놓는 향후 전망도 암울해 최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빚을 내 투기성 투자에 나서며 ‘인생 역전’을 노리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에 ‘집 장만’ 꿈이 사실상 멀어지자, 대신 로또·주식 등을 사들여 벼락부자를 꿈꾸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열린 초저금리 시대는 대출 금리를 낮추며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문제는 이에 따른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20~30대의 대출 연체율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물론, 재테크 접근 방식도 ‘고위험 상품’ 중심으로 단순화돼 가고 있다. 이 같은 시도가 상대적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높다. 위 사례처럼 주식 투자 등을 통해 원금을 모두 날렸을 경우, 심하면 젊은 나이에 ‘재기 불능’의 상태에 놓이는 경우도 다반사다.
전문가들은 “(최근 2030세대의 재테크는) 과거 월급을 모아 집을 장만했던 5060세대의 재테크 방식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행보”라며 “이는 다양한 사회 부정적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치솟는 부동산가격··· 2030세대는 ‘왕따’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20~30대가 접근할 수 있는 ‘고수익 재테크’ 방식은 한정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부자가 되는 지름길’로 불렸던 '부동산‘을 통한 부의 증식은 이미 ’남의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다만, 아직까지 부동산을 통한 재테크는 가장 유용한 방식 중 하나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토지자산(8767조원) 규모는 전년 대비 541조4000억원(6.6%) 늘었다. 직전년도의 7.7%에 이어 2년 연속 높은 성장세를 이어간 셈이다.
한은 관계자는 “토지자산의 증가세가 전체 국민순자산(1경6621조5000억원) 규모를 끌어올렸다”며 “땅값과 건물값 등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지속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가가 철저히 40대 이상의 중년층에 집중된 점이 문제다. 한국감정원 집계 기준으로 지난해 전국 아파트 매입 비중은 40대가 28.7%로 가장 높았다. 특히 고가주택이 밀집한 강남 3구에서 압도적인 면모를 보였다. 강남구는 전체 매입자의 38.9%가 40대였고, 서초구와 송파구도 각각 36.0%, 31.3%에 이르렀다. 이외에 광진구(35.0%), 서대문구(33.3%), 노원구(31.9%), 강북구(31.0%), 용산구(27.3%) 등도 40대가 가장 많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결국 증여를 받지 못한 흙수저들은 사실상 월급과 대출로는 집 한 채 구매하기도 힘든 상황에 놓인 셈”이라며 “최근에는 규제 강화를 우려한 30대의 ‘내 집 마련’ 움직임도 있지만, ‘빚투(빚내서 투자)'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결코 긍정적인 현상은 아니다”고 우려했다.
◆로또로 인생역전, 주식으로 인생대박
불안한 미래를 마주한 2030세대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차선책은 ‘로또와 주식’이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0대의 로또 구입 경험은 72.6%로 40대(74.0%)에 이어 둘째로 높았다. 앞서 1위를 차지했던 2018년에 이어 2년 연속 최상위권을 유지한 셈이다. 2018년 기준으로 30대 남자의 복권 구입경험률은 77.2%, 여자는 57.0%에 달했다. 막연한 현실에 대한 '기피성 투자 성향‘이 강했다.
30대 직장인 B씨는 "직장 생활을 하면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평생 월급을 하나도 안 쓰고 모아도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며 "로또처럼 갑자기 어디에선가 큰 목돈이 떨어지는 것 말고는 현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복권 당첨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복권을 구입한 후 당첨되지 않아도 좋은 일을 한다'는 인식은 2018년 76.4%에서 지난해 70.5%로 5.9% 포인트 감소했다. 로또 구입 빈도는 '매주 구입'이 24.4%로 가장 많았다. 로또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한 주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동학개미(소액투자) 운동에 편승해 주식 투자에 나서는 2030 투자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올 상반기 KB증권에 새로 개설된 계좌는 지난해 동기 대비 67% 늘었다. 이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는 걸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2017~2018년 당시 유행했던 가상통화를 활용한 ‘한방 투자’와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 경우, 자칫 개인 파산 등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흐름이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본질적인 지적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취업과 직장생활에 집중해야 할 청년들이 투자에 빠지면 그만큼 국가 산업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청년들이 고정수입 없이 투기성 투자에 몰두하는 것도 전체 경제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부정적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쌓여가는 빚··· ‘빚투’에 더 암울해지는 2030
인생 역전을 노리는 2030세대의 투자가 대부분 ‘빚투’ 성향이 강하다는 점도 문제다. 유례없는 ‘기준금리 0.5%’ 시대를 맞아, 저금리 대출을 이용해 투자에 나서는 20~30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6월 대출 및 연체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0대의 1인당 대출액은 671만원으로 전월 대비 2.7%, 1인당 신용대출액은 126만원으로 전월 대비 3.4% 각각 증가했다. 이는 전체 대출액의 평균 증가율(0.5%)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30대 역시 1인당 대출액과 신용대출액이 각각 전월 대비 1.33%, 2.31% 늘었다.
대출연체액도 20대에서 크게 증가했다. 지난달 20대의 1인당 연체액은 10만4000원으로 전달보다 3.3% 뛰었다. 다만 30대의 경우 지난 1~5월 지속적으로 연체율이 증가하는 흐름을 이어가다, 지난달에는 소폭 감소했다.
증권사 신용융자 잔액도 큰 폭으로 불어나는 추세다. 지난 15일 기준으로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전거래일보다 1166억원 증가한 13조416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 25일 3년여 만의 최저치(6조4075억원)를 찍고, 석 달 보름 만에 두 배 넘게 증가한 셈이다. 신용융자 잔액이 13조원을 넘어선 건 1998년 집계 이래 최초다.
시장별로는 유가증권 신용거래융자가 전거래일보다 251억원 증가한 6조4006억원을 기록했다. 코스닥 신용거래융자는 915억원 증가한 7조156억원을 기록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개인이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증권사로부터 빌린 금액을 뜻한다. 시장에서는 개인들이 ‘주식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것’에 베팅해 빚을 내서 투자에 나서는 신호로 파악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은행권 신용대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인한 풍선효과와 생계형 대출 외에도 주식 시장에 뛰어든 20~30대가 크게 늘어난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현상은) 향후 은행, 증권사 등 금융업체들이 여신 건전성을 관리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한국ICT(정보통신기술)금융융합학회장은 “불안한 미래에 인생역전을 노리는 2030세대가 충분한 관련 지식 없이 무리한 투자를 강행하다간 자칫 개인 파산 등에 빠질 우려가 높다”며 “투자자 개개인별 상황을 고려해 현실적인 재테크 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만약 주식 투자를 고려 중이라면 증시의 메커니즘과 가격을 결정하는 금리, 부동산 동향 등에 대한 충분한 학습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