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반도' 연상호 "K-좀비? 자부심 없어…온 가족 볼 수 있는 게 중요"
2020-07-20 06:00
'부산행'으로 'K-좀비' 열풍 일으킨 연상호 감독
'K-좀비'에 대한 자부심은 없어...'카테고리'로 묶이는 것 경계
포스트 아포칼립스 테마는 국내 최초...이미지 만들기에 몰두
'K-좀비'에 대한 자부심은 없어...'카테고리'로 묶이는 것 경계
포스트 아포칼립스 테마는 국내 최초...이미지 만들기에 몰두
"'부산행' 개봉 후, 주변에서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초등학생 친구들이 특히 좋아하다고요. '반도' 개봉 소식에 '우리 아이들이 볼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는 데 자신 있게 '된다'고 했어요. 완전히 액션 영화거든요. 가족 단위 관객이 즐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지난 2016년 대한민국에 '좀비'가 등장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등으로 잘 알려진 연상호(43)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을 통해서다. 서양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좀비'가 한국에 등장하고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KTX 열차라는 제한적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탈출극은 장르적 재미는 물론 한국적 정서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존 좀비 영화와 달리 엄청난 속도를 가진 좀비는 전 세계 관객들에게도 충격을 안겼다. '부산행'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이 대흥행을 거두며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K-좀비'라는 애칭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4년 뒤, '부산행'의 속편 '반도'가 개봉했다. '부산행' 사건으로부터 4년 뒤,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살아남은 자들의 분투극이다.
"크리처(장르물 속 기묘한 생물·괴물)는 흉물스럽지 않고 멋져야 한다"는 연상호 감독의 철학에 따라 '부산행' '반도'도 고어적 요소를 남발하지 않았다. 특히 '반도'의 경우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세계종말을 다룬 장르)를 테마로 해 액션을 강조했다.
"크리처는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흉물스럽고 비호감적인 외모를 가진 크리처는 별로거든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나 '에일리언' 시리즈 속크리처는 존재 자체로도 근사하잖아요. '부산행' '반도'도 그런 면에서 하드코어하고 고어한 부분은 많이 제외했어요. 만들면서도 '아니! 굳이 눈알이 나와야 해?' '뇌수가 터져야 해?' 하고 가리기도 하고. 하하하."
연 감독은 '반도'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부산행' 이후 개봉한 애니메이션 '서울역'으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서울역' 개봉하고 주변에서 한소리씩 들었죠. '부산행'을 본 어린 친구들이 '서울역'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이번에도 아이들이 봐도 되겠냐'고 하기에 말렸죠. 사실 '서울역'이 먼저 만들어진 건데. 아이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다는 걸 알았다면 '서울역'을 그렇게 만들진 않았을 거야. 칼부림이 벌어지고 잔인하게 죽고…. 그런 기억이 있어서 '반도'는 애초 기획부터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도록 하자고 했어요. '퍼시픽림' '쥬라기 공원' 시리즈처럼요."
'반도'는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부산행'의 속편이라는 점부터 코로나19 사태에 개봉하는 유일한 '대작 영화'라는 점 등 부담감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싱가포르·대만·북미 등 해외에서도 영화관 재개장을 준비하며 '반도'를 내거는 등 극장 활성화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사실 좀 부담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다행히 '반도'는 기획할 때부터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콘셉트로 했으니 많은 분이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올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전 세계 'K-좀비' 열풍이 불었다. 영화 '부산행'을 시작으로 '킹덤' '#살아있다' 등 한국 좀비 장르가 연이어 흥행을 거두고, 어느새 '믿고 보는 장르'로 자리까지 잡았다. 해외 팬들은 한국 좀비 영화에 'K-좀비'라는 애칭을 붙였다.
"'K-좀비' 시작에 관한 자부심이나 욕심은 없어요. 좀비 장르물이 개봉하면 주변에서 연락이 와요. '어떻게 봤냐'고. 사실 다 챙겨보지 못해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는 게 좋지만은 않아요. 별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좀비를 소재로 코미디, 로맨스, 재난영화 등이 나오는데 하나의 장르가 된 키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각자의 개성으로 만들어 가는 거죠."
그러나 '부산행' 좀비들이 좀비 영화의 판도를 바꾼 것, 한국 좀비 장르의 기준이 된 건 사실이다. '부산행' 이후 한국 좀비 장르는 '속도'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스펙터클의 취지가 강해서인 것 같아요. 액션 적인 부분이 강화됐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속도감이 생긴 거죠. 영화 '기묘한 가족'도 재밌게 봤는데 액션을 강조할 필요가 없으니 그 영화 속 좀비는 빠를 필요가 없죠. 한국만의 특성은 아니고 장르나 입맛의 차이라고 봐요."
'빠른 좀비'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자 오히려 연상호 감독은 '느린 좀비'에 관심이 간다고. 당초 '부산행' 속 좀비들이 기존 좀비 영화의 룰을 깨트린 셈이니. 그의 '청개구리' 같은 마음도 이해가 됐다.
"다른 걸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새로운 거! 이제 느린 좀비가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존 좀비물이 느리되 밀려오는 압박감이 핵심이었으니까요. 지금 좀비 영화가 액션 영화 중심으로 가다 보니 그런 '느림'이 더 새로울 수도 있겠죠."
'K-좀비'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곤 했지만 각 작품 속 좀비들은 다른 특성들을 쥐고 있다. '킹덤' 속 좀비가 감성을, '#살아있다' 속 좀비가 인간일 적의 특성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것처럼. '부산행' '반도' 좀비들만의 특성도 명확했다. 이는 '부산행'과 '반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기도 하다.
"'부산행'에 나온 대로 좀비에게 야맹증이 있다는 설정이에요. 다른 작품 속 좀비들과 차이점이기도 하고요. '부산행'을 만들 때는 한정된 공간에서 탈출하기 위해 방법을 써야 해서 야맹증을 설정한 거죠. 그 덕에 '반도' 속 다양한 액션도 만들어진 거고요. '부산행' '반도' 유니버스의 특성이 된 것 같아요."
'반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테마로 한다.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은 익숙하고 또 이질적이다. 연상호 감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테마로 '반도'를 꾸려나갔다. 작품의 배경과 이미지적인 부분이 중요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처음으로 구현하는 거라서.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애매하게 구질구질한 게 아니라 보지 못했던 그림을 만드는 게 중요했죠. 미술팀에게 '대충 쓰레기 몇 개 갖다 놓지 말라'고 주문했어요. 세트를 지어놓고 군데군데 풀을 심어놨는데 1시간이면 다 죽어버리는 거예요. 회차마다 다시 세팅하면서 '죽지말라'고 물도 주고…. 미술팀이 고생 많이 했죠."
제작진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다고. 그러나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창작자로서의 기쁨이 그보다 더 컸던 모양이었다. 매 장면 제작진의 영혼을 갈아 넣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고 이미지적으로 만족스러웠던 건 엉킨 좀비 떼였다.
"'숨바꼭질'에 등장하는 엉킨 좀비는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고민이 컸어요. 직접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드렸고 안무팀과 CG팀이 노력해줘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죠."
여느 속편과 마찬가지로 '반도' 역시 전작과 비교를 피할 순 없었다. 크고 작은 차이점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여성 캐릭터들의 쓰임새였다. 전작 '부산행' 속 여성 캐릭터들이 보호받는 존재이자 남성들의 희생으로 나아가는 인물로 그려졌다면 '반도' 속 여성 캐릭터들은 현재를 인지하고 망설임 없이 미래로 나아가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반도' 속 남성 캐릭터들이 과거에 갇혀있는 것과도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클리셰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던 중 초중반 세팅을 다시 했어요. 구원자였던 정석을 구원받는 자로 다시 설정한 거죠. 또 시대가 원하는 상이 있으니 여성 캐릭터들도 주체적인 면을 더 가지게 되었고요. 전 영화에 대한 반성의 측면도 확실히 있죠. 영화를 만들 때 2~3년 후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그간 연상호 감독은 판타지적인 소재를 한국 사회의 민낯에 녹여왔다. 판타지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발붙였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반도' 역시 마찬가지.
"저는 '반도' 속 인물들이 모두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캐릭터가 쓰기 편한 것 같아요. 엄청난 대의가 있거나, 엄청난 악인이 아니죠. 그런 건 머릿속으로도 잘 안 그려져요."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판타지를 덧대는 건 연상호 감독 작품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팬들은 영화 '부산행' '염력'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드라마 '방법'까지 독특한 작품 세계관을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 작품 속 판타지 세계관을 일컫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니버스'는 영화 '반도' 이후에도 확장될 예정이다. '송곳'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작가로 참여한 네이버 웹툰 '지옥'이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을 확정한 것이다. 지난 2003년 연상호 감독의 동명 단편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사이비 종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배우 유아인, 박정민, 원진아 등이 합류한 상태. 연상호 감독의 '연니버스'의 확장과 거침없는 행보에 기대가 모인다.
지난 2016년 대한민국에 '좀비'가 등장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등으로 잘 알려진 연상호(43) 감독의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을 통해서다. 서양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좀비'가 한국에 등장하고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KTX 열차라는 제한적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탈출극은 장르적 재미는 물론 한국적 정서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존 좀비 영화와 달리 엄청난 속도를 가진 좀비는 전 세계 관객들에게도 충격을 안겼다. '부산행'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이 대흥행을 거두며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K-좀비'라는 애칭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4년 뒤, '부산행'의 속편 '반도'가 개봉했다. '부산행' 사건으로부터 4년 뒤,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살아남은 자들의 분투극이다.
"크리처(장르물 속 기묘한 생물·괴물)는 흉물스럽지 않고 멋져야 한다"는 연상호 감독의 철학에 따라 '부산행' '반도'도 고어적 요소를 남발하지 않았다. 특히 '반도'의 경우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세계종말을 다룬 장르)를 테마로 해 액션을 강조했다.
"크리처는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흉물스럽고 비호감적인 외모를 가진 크리처는 별로거든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나 '에일리언' 시리즈 속크리처는 존재 자체로도 근사하잖아요. '부산행' '반도'도 그런 면에서 하드코어하고 고어한 부분은 많이 제외했어요. 만들면서도 '아니! 굳이 눈알이 나와야 해?' '뇌수가 터져야 해?' 하고 가리기도 하고. 하하하."
연 감독은 '반도'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부산행' 이후 개봉한 애니메이션 '서울역'으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서울역' 개봉하고 주변에서 한소리씩 들었죠. '부산행'을 본 어린 친구들이 '서울역'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이번에도 아이들이 봐도 되겠냐'고 하기에 말렸죠. 사실 '서울역'이 먼저 만들어진 건데. 아이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다는 걸 알았다면 '서울역'을 그렇게 만들진 않았을 거야. 칼부림이 벌어지고 잔인하게 죽고…. 그런 기억이 있어서 '반도'는 애초 기획부터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도록 하자고 했어요. '퍼시픽림' '쥬라기 공원' 시리즈처럼요."
"사실 좀 부담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다행히 '반도'는 기획할 때부터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콘셉트로 했으니 많은 분이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올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전 세계 'K-좀비' 열풍이 불었다. 영화 '부산행'을 시작으로 '킹덤' '#살아있다' 등 한국 좀비 장르가 연이어 흥행을 거두고, 어느새 '믿고 보는 장르'로 자리까지 잡았다. 해외 팬들은 한국 좀비 영화에 'K-좀비'라는 애칭을 붙였다.
"'K-좀비' 시작에 관한 자부심이나 욕심은 없어요. 좀비 장르물이 개봉하면 주변에서 연락이 와요. '어떻게 봤냐'고. 사실 다 챙겨보지 못해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는 게 좋지만은 않아요. 별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좀비를 소재로 코미디, 로맨스, 재난영화 등이 나오는데 하나의 장르가 된 키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각자의 개성으로 만들어 가는 거죠."
그러나 '부산행' 좀비들이 좀비 영화의 판도를 바꾼 것, 한국 좀비 장르의 기준이 된 건 사실이다. '부산행' 이후 한국 좀비 장르는 '속도'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스펙터클의 취지가 강해서인 것 같아요. 액션 적인 부분이 강화됐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속도감이 생긴 거죠. 영화 '기묘한 가족'도 재밌게 봤는데 액션을 강조할 필요가 없으니 그 영화 속 좀비는 빠를 필요가 없죠. 한국만의 특성은 아니고 장르나 입맛의 차이라고 봐요."
'빠른 좀비'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자 오히려 연상호 감독은 '느린 좀비'에 관심이 간다고. 당초 '부산행' 속 좀비들이 기존 좀비 영화의 룰을 깨트린 셈이니. 그의 '청개구리' 같은 마음도 이해가 됐다.
"다른 걸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새로운 거! 이제 느린 좀비가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존 좀비물이 느리되 밀려오는 압박감이 핵심이었으니까요. 지금 좀비 영화가 액션 영화 중심으로 가다 보니 그런 '느림'이 더 새로울 수도 있겠죠."
'K-좀비'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곤 했지만 각 작품 속 좀비들은 다른 특성들을 쥐고 있다. '킹덤' 속 좀비가 감성을, '#살아있다' 속 좀비가 인간일 적의 특성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것처럼. '부산행' '반도' 좀비들만의 특성도 명확했다. 이는 '부산행'과 '반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기도 하다.
"'부산행'에 나온 대로 좀비에게 야맹증이 있다는 설정이에요. 다른 작품 속 좀비들과 차이점이기도 하고요. '부산행'을 만들 때는 한정된 공간에서 탈출하기 위해 방법을 써야 해서 야맹증을 설정한 거죠. 그 덕에 '반도' 속 다양한 액션도 만들어진 거고요. '부산행' '반도' 유니버스의 특성이 된 것 같아요."
'반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테마로 한다.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은 익숙하고 또 이질적이다. 연상호 감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테마로 '반도'를 꾸려나갔다. 작품의 배경과 이미지적인 부분이 중요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처음으로 구현하는 거라서.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애매하게 구질구질한 게 아니라 보지 못했던 그림을 만드는 게 중요했죠. 미술팀에게 '대충 쓰레기 몇 개 갖다 놓지 말라'고 주문했어요. 세트를 지어놓고 군데군데 풀을 심어놨는데 1시간이면 다 죽어버리는 거예요. 회차마다 다시 세팅하면서 '죽지말라'고 물도 주고…. 미술팀이 고생 많이 했죠."
제작진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다고. 그러나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창작자로서의 기쁨이 그보다 더 컸던 모양이었다. 매 장면 제작진의 영혼을 갈아 넣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고 이미지적으로 만족스러웠던 건 엉킨 좀비 떼였다.
"'숨바꼭질'에 등장하는 엉킨 좀비는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고민이 컸어요. 직접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드렸고 안무팀과 CG팀이 노력해줘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죠."
여느 속편과 마찬가지로 '반도' 역시 전작과 비교를 피할 순 없었다. 크고 작은 차이점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여성 캐릭터들의 쓰임새였다. 전작 '부산행' 속 여성 캐릭터들이 보호받는 존재이자 남성들의 희생으로 나아가는 인물로 그려졌다면 '반도' 속 여성 캐릭터들은 현재를 인지하고 망설임 없이 미래로 나아가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반도' 속 남성 캐릭터들이 과거에 갇혀있는 것과도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클리셰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던 중 초중반 세팅을 다시 했어요. 구원자였던 정석을 구원받는 자로 다시 설정한 거죠. 또 시대가 원하는 상이 있으니 여성 캐릭터들도 주체적인 면을 더 가지게 되었고요. 전 영화에 대한 반성의 측면도 확실히 있죠. 영화를 만들 때 2~3년 후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그간 연상호 감독은 판타지적인 소재를 한국 사회의 민낯에 녹여왔다. 판타지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발붙였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반도' 역시 마찬가지.
"저는 '반도' 속 인물들이 모두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캐릭터가 쓰기 편한 것 같아요. 엄청난 대의가 있거나, 엄청난 악인이 아니죠. 그런 건 머릿속으로도 잘 안 그려져요."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판타지를 덧대는 건 연상호 감독 작품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팬들은 영화 '부산행' '염력'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드라마 '방법'까지 독특한 작품 세계관을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 작품 속 판타지 세계관을 일컫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니버스'는 영화 '반도' 이후에도 확장될 예정이다. '송곳'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작가로 참여한 네이버 웹툰 '지옥'이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을 확정한 것이다. 지난 2003년 연상호 감독의 동명 단편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사이비 종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배우 유아인, 박정민, 원진아 등이 합류한 상태. 연상호 감독의 '연니버스'의 확장과 거침없는 행보에 기대가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