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리꾼' 이봉근 "송가인·김준수, 판소리 전공자들…원석 아닌 보석"
2020-07-07 07:00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첫 영화, 첫 주연작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이봉근은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뜻대로 울리고, 웃겼다. 무대에서도 스크린에서도 어김없이 그의 '진심'이 통한 것이다.
지난 3일 개봉한 '소리꾼'은 사라진 아내 간난(이유리 분)을 찾아 재주 많은 소리꾼 학규(이봉근 분)와 그의 조력자 장단 잽이 대봉(박철민 분), 속을 알 수 없는 몰락 양반(김동완 분)이 조선팔도를 유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 짐작했다. 준비한 것도 다 펼치지 못해서였다. 낙담하고 있었지만 2주 뒤 학규 역에 낙점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닥을 보여준 것 같다"라고 상심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학규 같았다고 한다. 조정래 감독과 제작진은 "학규의 눈빛을 보았다"라고 말해줬다고.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 앵글이나 동선이 낯설고 어색하더라고요. 초반 회차에는 많이 헤맨 것 같아요. 연기도 연극으로 배웠는데··· 발성 같은 것도 많이 달랐고요. 스크린 연기는 처음이라서 겁을 많이 먹었어요. 그런데 소리를 시작하면 마음이 편안해졌죠."
이봉근은 "무대에 오르기 전 여러 차례 연습해왔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소리꾼'은 현장 동시녹음으로 진행해 인물의 감정선을 그대로 담아냈다. 무대 위에서 소리를 하
현장 동시녹음으로 인물의 감정선 등을 그대로 작품에 녹아냈다. "무대 위에서 소리를 하는 것과 영화 속에서 녹음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느냐"고 묻자 이봉근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도 여러 차례 연습한 일이기에 반복적인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라고 답했다.
"아마 음악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워낙 반복하다 보니 이골이 나 있어서 끊어가거나 반복하는 데 어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소리꾼이기에 작품 속에서 수월하게 표현하는 바도 있었을까? 그는 "항상 하던 일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연기를 접목하며 더욱 어려워지고 새롭게 보였다"라고 말했다.
"'심청전'은 수도 없이 불러서 사실 마음 편하게 접근했어요. 그런데 연기가 들어가고 학규에 관해 연구할수록 '심청전'이 새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더 진하고 깊어졌다는 생각? 접근 방식이 아주 진지했어요."
이봉근이 해석한 심학규는 의존적인 인물이었다. 돈을 버는 능력도 떨어지고 생활력 강한 간난에게 의지하는 인물로 보였다고.
"학규가 간난을 찾기 위해 조선 팔도를 떠돌고 청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점점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일행이 늘어날수록 마음의 짐도 무거워지는 식이었어요. 점점 더 내면에 집중했고 말수도 줄였죠. 그가 감정을 드러내는 건 오직 소리할 때만이라고 생각했어요. 학규의 성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규를 연기하며 '심청가'에 관한 이해도가 깊어졌다는 이봉근은 소리에도 어떤 변화가 생겼다고 털어놨다.
"지난번에 온라인으로 판소리 공연을 진행했어요. 거기에서도 '심청가'를 선곡해 불렀는데, 제 공연을 본 모녀가 '펑펑 울었다'면서 표현 방법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저와 오랜 시간 함께한 고수도 '소리가 달라졌다'고 하고요. 정서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해서 그런 건지. 판소리에도 형식이 있는데 그런 걸 버리려고 하게 된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한 박철민, 이유리, 김동완 등 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이)유리 누나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연기에 관해 고민할 때 선뜻 손을 내밀어 주시고 호흡을 맞춰주시곤 했죠. 학규라는 인물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또 청이 역에 (김)하연은 어찌나 연기력이 대단한지. 현장에서 선배님이라고 불렀어요. 현장에서 유대감을 쌓으면서 감정을 쌓아나갔죠. 연기도, 소리도 신동 같아요. (박)철민 형님은 진짜 제 파트너 같았어요. 고수 실력도 대단하죠. 마지막 장면을 함께할 땐 형님의 북 치는 소리에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과거 20대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소리를 그만둬야겠다 다짐한 적도 있었다. 오랜 시간 음악에만 매달려 있었지만 생계에 어려움을 겪자 마음이 흔들렸다. 컴퓨터 학원 등도 다녀보며 음악을 잊어보려 했지만 우연찮게 선 무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소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1년이나 쉬었는데.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봉근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소리에 전념하는 동안 '판소리'에 관한 대중들의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 '불후의 명곡' '팬텀싱어' 등에서 소리꾼들이 활약하고 새로운 장르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며 대중들의 편견을 깨트렸기 때문이다. 트로트 가수 송가인을 중심으로 '팬텀싱어3' 고영열 '불후의 명곡' 김준수·유태평양 등이 판소리를 기반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며 대중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다.
"소리꾼의 가장 큰 장점은 인내력이라고 생각해요. 끼도 어마어마하고요. 송가인씨는 이미 대성하셨지만, 소리도 엄청나게 잘 하시는 분이고 스타성도 대단하잖아요. 김준수씨도 그렇고 TV에서 활약하는 소리꾼들은 소리도 기본적으로 탄탄하고 자신만의 색깔도 잘 드러내고 계시는 것 같아요. 숨은 '원석'이 아니라 이미 '보석' 자체죠. 조금만 눈여겨보신다면 그 보석들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는 가요·예능·스크린까지 장악한 '소리'가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활약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면 좋겠어요. 다른 나라들은 전통음악들이 일상생활에 잘 녹아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부분이 조금 약한 것 같아요. 소리가 더 편안하게 대중에게 다가가고 즐길 수 있기를 바라요."
그의 바람을 담아 '심청전'처럼 또 하나의 판소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영화로 태어난다면 관객들의 관심을 끌 법한 소리가 있는지 궁금했다.
"'흥부가'가 재밌을 것 같아요. '춘향가'는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어졌지만 '흥부전'은 아직 이야기로 풀어진 게 없는 것 같아요. 고증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소재도 재밌는 게 많아서 이야기로 만들어진다면 재밌을 것 같네요."
그는 신인 배우의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기를 시작한 뒤 배우로서 그리고 싶은 그림이 생겼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새로운 활로를 걸어보고 싶어요. 정극 연기도 도전해보고 싶죠. 판소리를 제외하고 연기로만 감정을 전달해보고 싶어요. 연락 주신다면 장르 구분 없이 무조건 해볼 생각이에요. 단역이라도요. 밑천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지금부터 쌓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