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안동현 서울대 교수 "코로나19로 저성장·저물가 지속…기존보다 강한 구조적 변화 촉발"
2020-07-09 06:00
안동현 전 자본시장연구원장(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의 공통점으로 글로벌화와 의도적이지 않은 위기라는 점을 꼽았다.
안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부터 시작된 주택금융 완화정책과 금융심화 현상이 장기간 누적되다 결국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지나 무르익어 터진 위기로 위기 자체가 의도적으로 촉발됐다기 보다는 구조적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며 "코로나19 위기 역시 의도적으로 위기가 발생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도가 은행의 결제망이나 그림자금융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된 것처럼 코로나19 위기도 바이러스 자체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됐는데 이는 1990년대부터 빠르게 확산된 세계화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시장 내부에서 시작된 위기가 실물경제로 퍼진 반면 코로나19 위기는 비경제적 요인인 바이러스 전염이 금융 및 실물경제 위기를 촉발했다"며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적 해법이 그나마 가시적으로 보였던 반면 코로나19 위기는 불확실성이 훨씬 크고 여파 역시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못할 경우 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를 촉발한 원인은 다르지만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처방전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지속되고 기존보다 더 강력한 구조적 변화를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무엇보다 안 교수는 현재 재정과 통화를 쏟아 붓는 '물량공세'가 이어질 경우 지난 2011년 이후 겪었던 남유럽 재정위기가 재발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안 교수는 "신흥국은 재정위기가 위험 수위에 달할 것"이라며 "따라서 비기축통화국이나 통화정책 독립성이 제한된 EU 회원국 중 재정이 취약한 국가를 중심으로 재정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돈을 풀어내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재정정책뿐만 아니라 통화정책 여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기축통화국의 경우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낼 경우 신용등급 하락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통화정책에 있어 금리를 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통화량을 늘리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며 "기축통화국이 양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방식으로 자국 경제를 안정시키고 경기를 회복시키겠다고 하면 우리나라는 그에 연동해 회복하는 방식을 추진한다 생각하고 정책 여력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폭증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로 인한 경제적 대응 방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가져갈 것인지가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은의 대응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안 교수는 그동안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에 그칠 게 아니라 '크라이시스 파이터' 역할도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실제 한은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증권사 대상 무제한 환매조건부담보채권(RP) 매입을 비롯해 특수목적기구(SPV)를 통한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매입 등에 나서는 정책을 펼쳤다.
안 교수는 "미국식 양적완화나 질적완화까지 간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본다"며 "과거에는 한은이 지나치게 소극적이었지만 상황이 워낙 긴박하다보니 어찌 됐든 콘크리트를 뚫고 나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 교수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적용 분야 원칙 정립에 대해 강조한 것도 중앙은행의 역할이 자칫 재정정책을 위해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로 추락할 것을 우려해서다.
그는 "중앙은행은 돈만 찍어내고 돈을 쓰는 것은 정부가 알아서 해버릴 경우 자칫 재정정책의 파이낸싱 역할만 하는 것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