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숨 고르기'로 남북 최악 사태 피했지만…"한·미·중, 북핵 로드맵 만들어야"

2020-06-24 16:00
김정은 23일 중앙군사위 예비회의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 결정
북한, 대남확성기 재설치 3일만에 다시 철거…대북전단 기사도 삭제
"美, 국제적 여론 의식한 행보…군사행동 감행 시 쏟아질 비난 우려"
"섣부른 판단 금물…대북 대비태세 유지하며 미·중 협력안 모색 필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총참모부의 대남(對南) 군사행동 계획 보류를 결정하면서 남북 간 초긴장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계획 취소’가 아닌 ‘보류’를 결정한 만큼 향후 한국 정부의 대응과 내부 상황에 따라 언제든 기존의 강경자세로 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 결정’에만 주목한 낙관적인 해석에 안도하기 보다는 진정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대안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24일 오후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한 야산 중턱에 설치된 대남 확성기(오른쪽)가 철거돼있다. 왼쪽 사진은 전날 같은 곳에서 관측된 대남 확성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말 한마디’에 대남확성기·삐라 비난도 사라져

24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회의 예비회의를 ‘화상’으로 주재하고,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를 결정했다.

김 위원장의 ‘보류 결정’ 말 한마디에 북한군은 지난 21일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설치했던 대남 확성기 10여 대를 설치 사흘 만에 철거했다. 또 대외선전매체들은 그동안 연일 쏟아냈던 대북전단 살포 비난 기사를 일제히 삭제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주도했던 대적(對敵)행동 흔적의 일부가 16일 만에 극적 등장한 김 위원장의 한마디에 사라지게 된 셈이다. 전날까지만 역대 최대 규모의 대남삐라(전단) 살포 투쟁을 강조했던 노동신문도 이날은 전단 관련 기사는 싣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하루아침에 돌변한 북한의 행보에 대내·대외적 요인이 모두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신범철 국가전략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체제결속이나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강력 대응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해 상황관리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최고지도자로서 상황관리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남북 관계에 있어 톱다운 방식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낸 듯하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시선을 우려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출간으로 전 세계적으로 북·미 이슈가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강경자세가 득(得)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볼턴 자서전 공개 이후 여러 가지 북·미 협상의 이면사항들이 공개되자 국제적 여론의 추이를 보기 위한 것”이라며 “자칫 군사행동 감행 시 자신(북한)들에게 비난 쏟아질 것 우려한 행보”라고 풀이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에서 웃고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자립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사진=연합뉴스·노동신문 캡처]

 
‘취소’ 아닌 ‘보류’···“北, 한국 다시 압박해 올 것”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수위조절에 “일단 한숨 돌릴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계속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해 올 것이라며, 북한의 다음 트집 잡기는 ‘한·미 군사연합훈련’일 것이고 그다음은 ‘제재 완화’가 될 것으로 내다보며 우리 정부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도 김 위원장의 이번 결정이 ‘취소’가 아닌 ‘보류’라는 것을 강조하며 “북한에 대한 한·미 동맹의 적대시정책과 압박이 거세지면 대남 군사행동도 계속되고, 미국을 향한 전략적 도발도 감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향후 대남삐라 살포,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지구 군대 배치, 접경지역 군사훈련 재개 등 대남 군사행동 계획 실행은 물론, 미국을 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전략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의 보류 결정에만 주목한 과도한 긍정적인 해석을 피해야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신 센터장은 최근 김 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의 발언에 흔들린 국내 상황에 쓴소리를 내며 “헌법·법률·대북정책 기조에 입각한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한·미 군사훈련도 북한의 실질적 군사위험이 해소돼야 한다. 한·미만 훈련하지 않는다고 해서 북핵 위험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라며 “(북한은) 연합훈련을 연기하면 제재 완화를 하라고 할 텐데, (지금 상황이) 북한의 말을 안 들어주면 어느 순간 또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정부가 해야 할 일로 대북 대비태세와 한·미·중 외교협력 강화를 제시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또 도발할지 모르니 대비태세는 유지해야 한다”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 문제를) 우리 혼자서 풀 수 없기 때문에 미국, 중국과의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해 미·중과 협력해야 하고, 이를 통해 한·미·중 공동의 북핵 문제 로드맵과 대안을 만들어 북측에 제안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