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방빼는 세계공장들의 생존경제학 Reshoring!?
2020-06-04 17:53
[최남수의 열린경제] 글로벌 공급체인, 즉 가치사슬(GVC)은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와 비슷하다. 물론 참여자는 훨씬 많다. 상품 기획에서부터 판매까지 각 단계가 국가별로 흩어져 있다. 다리가 같이 끈으로 묶여 있다 보니 한쪽이 넘어지면 다른 쪽도 같이 넘어지기 십상이다. 이번 코로나19 경제 쇼크의 와중에서 GVC는 앞뒤로 각각 무너지는 도미노와 같았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근로자들이 공장에서 모일 수 없게 되자 가치사슬의 앞과 뒤가 모두 마비되고 무너졌다. 특히 공급 체인의 허브, ‘세계의 공장’인 중국 공장의 가동 중단은 전례 없는 공급 충격의 강진을 가져왔다. 저임금과 거대 시장의 맛에 취해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각국은 절감하게 됐다.
나이키化. 국제분업체제를 상징하는 말이다. 나이키는 연구개발과 디자인은 미국에, 직물과 고무 생산은 대만과 중국에, 최종 신발 제작은 중국, 인도, 필리핀에, 그리고 마케팅과 유통은 미국과 유럽에 맡기는 식으로 가치사슬을 분산, 배치해왔다. 이 같은 형태의 GVC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 ‘형님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선진국 기업은 개도국의 저임금을 활용해 경영을 효율화하고, 중국과 인도 등 거대 시장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개도국은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 기술 이전 등 다양한 혜택을 누렸다.
GVC는 세계화의 진전으로 무역장벽이 낮아지는 등 긍정적 환경 변화가 생기면서 더욱 확산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무역량의 3분의 2 이상이 GVC를 통해 이뤄졌다는 게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석이다. GVC 확산으로 가장 큰 득을 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을 계기로 GVC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임금수준이 낮고 내수시장이 큰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현재 외국기업에 다양한 혜택을 주는 지역이 전 세계적으로 5383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 중 47.2%인 2543개가 중국에 있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투자는 미·중 무역마찰이 한창이던 2019년에도 테슬라의 상하이 공장 건축 등에 따라 140억 달러로 오히려 늘어났다. 중국은 경제 규모(명목 GDP)가 미국에 7조 달러 정도 뒤처져있다. 하지만, 제조업은 미국을 제치고 최강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GVC 덕을 톡톡히 향유해온 것이다.
GVC의 향후 변화 방향과 관련해 최근 자주 언급되고 있는 선택지는 아예 공장을 중국에서 본국으로 옮겨버리는 리쇼어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의 본국 ‘회귀’를 위해 인센티브 제공은 물론 늘 그렇듯 노골적인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중국 의존도가 유난히 높아진 유로존은 이젠 ‘전략적 자립경제’를 이루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모디 인도 총리는 인도가 새로운 경제자립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앞으로 의료장비와 의약품 등 전략 품목의 생산은 비용 증가 등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 내 이전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쓸 수 있는 초강수 중의 하나는 국가긴급경제권법에 따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해 미국 기업이 중국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이다. 중국에 있는 미국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트럼프가 이 방법까지 쓰게 되면 미·중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미국 또한 피해가 클 것이기 때문에 ‘칼집 속의 칼’로 남게 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서 짚어볼 문제는 기업들이 중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인가 하는 점. 지난 2010년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분석 보고서는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리쇼어링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통찰력을 주고 있어 소개한다. ADB는 2007~2009년에 중국에서 생산되는 아이폰의 마진을 62~64%로 추정했다(표). 아이폰 생산을 미국으로 옮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분석 결과 마진율이 50%로 중국에서 생산할 때보다 14% 포인트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상승 탓이다. 애플이 리쇼어링을 하면 미국 내 일자리가 늘어나고 무역적자가 축소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익성 악화와 이에 따른 주가 하락 등 애플이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다. 애플은 수익성 회복을 위해 가격 인상을 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소비자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리쇼어링은 국익이냐 기업과 소비자의 이익이냐를 선택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기업과 소비자 이익을 국익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은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만큼 리쇼어링이 확산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예상되는 GVC 변화 방향은 인도와 베트남 등 인건비가 더 낮은 지역을 ‘제2의 중국’으로 삼는 방안이다.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이 이 방법에 눈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애플은 중국 내 아이폰 생산량의 5분의 1가량을 인도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놓고 인도 정부와 협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인건비 수준이 중요한 섬유와 가공업 등도 이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국 수출 중 외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이르는 것으로 맥킨지는 추산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탈중국 대열에 선다면 중국 수출에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다.
저임금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거나 리쇼어링을 하는 것은 공급 체인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면 중국을 떠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멀어지는 데다 우수한 중국의 제조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불리한 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잔류를 선택하는 기업도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24%의 미국 글로벌 기업이 부품조달 창구를 중국 밖으로 옮길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뒤집어 보면 아직도 76%의 기업이 중국 내 공급 체인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독일의 아디다스는 아예 ‘역리쇼어링’의 움직임을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아디다스는 공정이 자동화된 독일 안스바흐와 미국 애틀랜타 공장을 폐쇄하고 생산물량을 중국과 베트남 공장으로 전량 넘기기로 했다. 생산 노하우가 있고 부품 공급업체들이 있는 모여있는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종합하면 지금 당장은 세계 각국이 전면적으로 탈중국을 할 것 같은 기세지만 현실은 말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다. 거대 시장과 생산거점으로서의 중국의 경제적 가치를 포기하는 대가도 크기 때문이다. 더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굿바이 글로벌화(Goodbye globalization)’라는 제목의 표지 기사에서 ‘중국 + 1’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예고했다. 중국에 ‘올인’해 온 공급체인이 이제는 ‘중국 + 동남아’로 다변화될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리쇼어링을 추가하면, GVC는 ‘중국 + 동남아 + 본국’의 형태로 재편되면서 중국 의존도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험 분산을 위한 전략이다. 그래도 상당 기간 중국이 중심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하다.
GVC에 이런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최근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번에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느낀 것은 '공급 체인의 허브'인 중국에 대한 불안감이다. 한국이 앞으로 '첨단부품 공급의 중요 포스트'로서 실력을 키운다면 다른 나라에 공급체인 다변화의 폭을 넓힐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무역 보복에 대한 대응으로 본격화된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산업 육성 전략이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성과가 나오면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으로 가는 물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