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국가보안법 강행하는 중국의 속내는?

2020-06-04 07:48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 예고에 亞 금융허브 '흔들'
美 압박에도 中 입법강행 배경..."치밀한 계획 바탕"
홍콩 입법회 선거서 영향력 행사 위한 움직임 분석도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면 홍콩은 물론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입법을 강행하고 있다. 중국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홍콩 특별지위 박탈되면 올해 경제성장률 -15% 추락 전망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홍콩 보안법 통과에 미국이 내놓은 대응책인 ‘홍콩 특별 지위 포기 절차 돌입’은 꽤나 강력한 ‘카드’로 해석된다. 미국은 1992년부터 홍콩정책법에 따라 홍콩을 차지(借地) 지역으로 규정하고 무역, 외환 거래, 기술 이전,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 본토와 다르게 우대해 왔다.

이를 통해 홍콩은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미국이 중국에 부여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었고, 민감한 기술이 들어간 미국 기업의 제품을 수입해 기술 공유를 하는 등의 혜택을 받았다. 홍콩이 중국과 다른 나라를 잇는 중개무역·금융허브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특별 지위가 바탕이 됐다.

그런데 특별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면, 홍콩은 글로벌 금융허브로서의 위상을 잃게 된다.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만만찮다. 이미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격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경제가 크게 악화된 상황이라 피해는 더 심각할 전망이다. 홍콩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동기 대비 8.9% 하락하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아시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는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특별 지위마저 박탈된다면, 올해 홍콩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5% 밑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홍콩과 무역·금융 등 여러 분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역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외국인의 대중 직접투자의 70%는 홍콩을 거친다. 2003년 홍콩과 중국이 체결한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에 따라 홍콩을 거쳐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관세를 면제받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이용해 자금을 유치하거나, 해외 진출의 성장 동력으로 삼아왔다.

자본시장에서도 중국은 홍콩을 자본 조달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 홍콩증권거래소와 상하이증권거래소를 잇는 후강퉁과 선전과 홍콩거래소를 잇는 선강퉁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중국 본토주 매입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2010~2018년 이뤄진 중국 기업의 역외 기업공개(IPO)의 73%는 홍콩에서 이뤄졌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에 대한 추가 보복 조치까지 계획 중이다. 미국 의회는 홍콩 보안법 제정에 관여한 중국 관리와 단체를 제재하고 이들과 거래하는 은행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 바 있다.

◆미국 피해 막대해··· 중국 자신감의 이유

이처럼 미국의 강력한 경고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입법을 강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법안 내용을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내에서는 홍콩 보안법 특별 법정이 세워지고 법안의 소급 적용을 검토 중이다. 소급 적용이 이뤄지면,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에 가담한 반중 인사들의 기소도 가능해진다.

중국이 미국의 경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이 홍콩보안법 강행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미리 예상해 준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앞서 롼쭝쩌(阮宗澤)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부원장은 SCMP에 "중국은 지난해 송환법을 철회한 이후부터 홍콩 보안법 제정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대응은 예상했던 것으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했다”고 했다.

홍콩의 특별 지위가 박탈될 경우 예상되는 미국의 피해도 중국이 자신감을 갖는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홍콩에는 현재 8만5000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근무하고 있고, 1300개 이상의 미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전문가들은 홍콩의 특별지위가 박탈될 경우 홍콩에 지사를 둔 미국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대니얼 러셀 미국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홍콩의 특별 지위를 철폐한다면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홍콩 특별 지위 철폐 시행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AP 통신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조치들은 단지 경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홍콩경제, 중국이 장악··· 홍콩 증시에서 중국 기업 비중 60%

세계경제와 중국경제에서 홍콩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 이유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홍콩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1990년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20%를 차지했던 홍콩의 경제 규모는 지난해 2.6%로 크게 줄었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홍콩을 추월했으며, 2018년엔 중국이 '제2의 홍콩'으로 키우고 있는 선전이 홍콩 경제력을 넘어섰다.

게다가 홍콩 경제는 이미 중국인과 중국 자본이 장악하다시피 한 모습이다. 1997년 홍콩 증시 전체 시가총액에서 중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60%가 넘는다. 증시 시총 상위 10대 기업 중 텐센트, 건설은행, 핑안보험 등 6개가 중국 기업이다.

중국이 오는 9월 홍콩 입법회 선거 전 홍콩 보안법의 입법 절차를 모두 마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홍콩 의회인 입법회는 지역구 대표 35명과 분야별 대표 35명으로 구성된다. 지역구 대표는 유권자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며, 기업·문화·교육·법조계 등 분야별 대표는 각 분야의 선거인단이 선출한다.

홍콩 범민주 진영은 이번 입법회 선거에서 1997년 홍콩 주권반환 후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 점이 중국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구의회 선거에서도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둔 바 있다. 그 결과 범민주 진영은 18개 구의회 중 17개 구의회를 지배하게 됐다.

이에 따라 중국이 선거를 치르기에 앞서 홍콩보안법을 시행해 범민주 진영 후보들의 자격을 박탈시키거나, 입법회 선거를 연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홍콩 민주당의 헬레나 웡 대변인은 우려했다. 홍콩에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관위의 후보 자격 심사를 거쳐야 한다. 
 

지난 5월 27일 홍콩 도심에서 열린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반대 시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의 모습. [사진=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