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토끼 굴에 떨어진 세계 경제

2020-05-25 07:48
우 에 마 샤트?(Ou est ma chatte·내 고양이는 어디에 있지?)

[조수연]



1865년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을 썼다. 이 작품을 학창 시절에 읽고 어리둥절하며 불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루이스 캐럴이라는 이름이나 그의 동화 같은 작품에서 전하는 느낌으로부터 작자가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 고전과 수학에 관심을 가진 목사였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었다. 본명은 C L 도지슨. 읽어본 분은 알겠지만, 이 작품에는 지독히도 뒤죽박죽인 수수께끼 같은 세상이 그려져 있다. 이 책은 혼란스러운 논리와 감성이 버무려지며 그 당시 사람들의 상식에는 SF 소설을 너머 컬트에 가깝게 느꼈을 것이다. 필자가 문득 다시 이 책을 들여다본 이유는 출간 후 150여년이 지난 최근의 세상이 책 속의 세상과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책의 서문을 쓴 휴 호턴은 ‘의미와 난센스를 모험하는 소녀, 앨리스’라는 절묘한 표현을 남기고 있다.
주인공 소녀 앨리스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12가지 에피소드로 겪었는데, 등장인물 중에 사람은 앨리스가 유일하다. 대부분 동물과 중요한 역할로 카드가 등장해 고집스럽게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논리와 감성으로 앨리스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 마지막 부분, 카드 왕국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카드 왕국의 왕비는 줄곧 "목을 쳐라. 사형시켜라"를 외친다. 여왕은 좋아하는 크로케 경기를 하며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갑자기 사형을 시키다 보니 선수가 결국 여왕과 왕, 앨리스만 남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이 되면 왕이 슬쩍 모두 사면한다. 사형이 집행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그리핀(등장 동물)의 증언 속에 왕국의 크로케 경기는 다시 이어진다. 무슨 일인지 카드 왕국 국민도 왕비의 크로케 경기를 유일한 사명으로 알고 있다.

카드 왕국의 크로케 경기가 지금 우리 현실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필자만은 아닐 듯싶다. 아마 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을 카드 왕국의 왕비로 대체하는 데 동의할 것이다. 지난 50년간 세계화라는 과정에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세계 경제를 길들여온 미국은 2017년 트럼프 취임 이후, 그의 말 한마디에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미·소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린 후, 미국은 2001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며 세계 경제 2인자(G2) 그리고 세계 경제의 생산·공급기지로 키웠다. 세계 경제는 미국이라는 경제, 금융, 군사 초강대국의 비호 아래 이른바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과정에 안착했다.

미국과 함께 G20으로 불리는 국가들은 미국 항공모함 전단에 편입되었다는 자부심과 안도감을 누려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적어도 주변국이 보기에는- 갑자기 중국 때리기를 시작하고 ‘아메리카 퍼스트, 그레이트 아메리카’를 외치며 G20 국가들과 차례로 무역분쟁을 이어가며 세계는 앨리스의 토끼 굴에 빠진 것처럼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는 카드 왕국 여왕에게 사형 언도를 받지 않으려는 측과 세계화라는 룰에서 공정성을 외치는 측으로 갈라졌다. 이런 지정학적 소음 속에 2019년까지 세계 경제 성장은 크게 둔화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은 심각한 경기 후퇴(recession) 경고를 계속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요즈음 코미디 프로에 등장하는 유행어처럼- 갑자기 트럼프가 2019년 말 중국과의 무역전쟁 휴전 분위기를 연출했다. 2020년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대선 전략용 치적 쌓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은 2019년 1월, 누가 봐도 엉성한 협상 과정을 통해 1단계 무역 협상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공교롭게 코로나19라는 비극의 씨앗이 이 무렵 잉태되었다- 이후 세계 증시는 환호하며 역사상 최고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2020년 세계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역사상 가장 빠른 전염력으로 콧대 높은 선진국들을 혼수상태에 몰아넣은 코로나19가 2월부터 중국 우한 경계를 넘어 세계로 확산하며 대유행병(pandemic)이 시작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 등 세계가 인구이동과 경제활동을 정지하며, 1분기 미국경제는 실업률과 GDP 성장률, 소비지출, 구매자관리지수(PMI) 등 모든 경제 성적표에서 최악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5월에 들어서며 미국은 갑자기 전 방위적인 중국 때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미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가 포문을 열었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실험실에서 누출됐고 이로 인해 미국과 전 세계에 걸친 대량 사망자 발생과 감염 확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설상가상으로 1월 체결한 미·중 무역 협상 1단계를 파기할 수 있다며 긴장의 수위를 높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갑작스러운 트럼프 행정부의 돌발적 행동에 놀라며 방역과 경제 실패가 겹치고 대선 전략에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의 돌연한 중국 때리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미국의 중립적 여론조사 기관 퓨(pew)리서치 조사에서 코로나19 이후 미국 국민의 심각한 반(反)중국 정서 악화가 확인되었다. 이 조사 결과를 놓고 중국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민의 민심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중국 때리기가 일시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IMF는 4월 코로나19 충격을 반영한 세계 경제 전망을 하며 2020년은 이전 전망보다 6% 이상 하락 조정한 -3%를 예상했고, 2021년은 코로나19가 금년에 회복될 것을 전제로 5.8%까지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것은 무역전쟁 재발을 비롯한 미·중 간의 냉전은 반영하지 않은 전망이다. 코로나19 충격의 보상을 중국에서 구하고 싶어 하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 가능성은 구조적이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결과 미국은 나홀로 성장으로 복귀하고 미·중 충돌의 충격으로 세계 경제는 침체하는 추세가 재현될 위험이 크다.

여기에 더욱 위험스러운 시나리오는 미국의 경제 부양을 위한 무제한에 가까운 달러 공급이 가져올 파급효과다. 미국이 거의 무료로 발행하는 달러는 재정적자, 국채발행, 미 연준의 보유자산 증가를 통해서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 정부도 이에 질세라 경제 부양을 위해 부채를 증가시키고 있는데 2008년 금융위기 수습의 학습효과다. 미국은 적극적으로 부채를 늘리며 2009년부터 2020년 1월까지 11년 연속 성장을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완화적 통화정책에 신중했던 EU는 곤욕을 치렀다. EU는 마이너스 정책금리를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통화이론(MMT)을 통해 이런 무제한 통화공급이 근거를 찾고 있지만, 사실상 지금의 통화정책 환경은 또 다른 앨리스의 토끼 굴이다.

달러는 미국에만 화폐 발행 이익(시뇨리지·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의 실질가치에서 발행비용을 제한 차익)을 안겨준다. 복잡한 경제, 통화이론으로 미국은 해명하려 하겠지만 단순하게 미국 국민은 무료에 가까운 지폐를 발행해서 다른 나라의 재화, 서비스를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가진다. 미국 경제의 적자를 다른 나라의 피땀 어린 부가가치로 메우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재화와 서비스를 내주고 그 대가(?)로 받은 달러를 외환보유고라는 이름으로 자랑스럽게 쌓는다. 달러 교주의 힘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의 무제한 통화공급은 미국이 부채 이자를 지급할 만큼 성장을 지속하고 국제통화로서 신뢰가 지속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1971년 금 태환을 중지하고 완전한 종이 화폐로 달러를 발행한 이후부터 군사적·기술적·경제적 패권을 놓을 수 없다.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으면 미국경제는 넘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자와 부채가 커질수록 미국은 성장하지만, 북미 대륙 외에는 시끄럽고 위기가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쩌면 미국이 2차대전 후 추구해온 세계화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꿈꾼 세계화가 진정으로 완성되는 것일 수 있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잠에서 깨어 집으로 돌아갔지만 세계경제는 더 깊숙이 토끼 굴로 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앨리스는 토끼 굴에 빠져, 그 몸 크기로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문을 발견하고는 이상한 약물과 버섯을 먹고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앨리스는 마음대로 안 돼서 흘린 자기 눈물에 빠지는데, 마침 눈물에 같이 빠진 쥐를 발견하고는 나가는 길을 영어로 묻다가 대답하지 않자 프랑스어로 다시 묻는다. “우 에 마 샤트(Ou est ma chatte·내 고양이는 어디에 있지)?” 이 엉뚱한 질문을 필자도 되뇐다. 세계 경제에 내 고양이는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