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행 끝낸 김정은] ①북, '韓·美 패싱' 정면돌파…"시진핑 방한 지렛대를 활용하라"

2020-05-04 00:00
'신변이상설' 김정은, 20일간 잠행 깨고 등장
1일 '정면 돌파전' 상징 순천인비료공장 방문
북한, 3일 오전 남측 GP에 총탄 수발 발사도
피격 계기로 남북 대화 물꼬 틀 거란 관측도
"'시진핑 방한' 계기로 남·북·중 교류 꾀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간 잠행을 마치고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 돌파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각종 낭설에 휩싸였던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고리로 남북 보건협력을 제안한 문재인 정부의 손짓도, "건강하게 돌아와 기쁘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영 메시지도 외면했다.

대신 그간 역점을 둬온 순천인(린)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 건재함을 자랑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 당분간 '독자적인 길'을 걸어갈 것임을 거듭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마이웨이와 미국 대선 일정 등으로 당분간 남·북·미 교착이 불가피한 만큼, 정부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포스트 코로나 외교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면 돌파전' 상징 인비료공장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3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노동절을 맞아 순천인비료공장 완공식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7일(보도일 기준) 올해 첫 현지지도 장소로 순천인비료공장을 찾아 대북제재 장기화로 심화되는 경제난을 자력갱생으로 돌파하겠다고 피력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인비료공장 건설은 정면 돌파전의 첫해인 2020년 수행해야 할 경제과업들에서 당이 제일 중시하는 대상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정면 돌파전을 선언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3주간 잠행을 깨고 순천인비료공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대응으로 대내외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농업 생산량 증대'의 상징을 선전하려는 자력갱생 행보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특히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을 앞둔 김 위원장은 지도자로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코로나19 국면 등으로 김 위원장이 연초에 선언한 정면 돌파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았는데, 인비료공장 준공은 그나마 성과를 보이기에 적합한 건설물"이라고 말했다.

◆北, 3일 南 GP에 총탄 수발 발사

 

육군 GP. [사진=연합뉴스]


이 가운데 북한이 이날 오전 7시 41분경 중부 전선 감시초소(GP)에 총탄 수 발을 발사했다. 김 위원장이 잠행을 깬 직후 2018년 9·19 군사합의 이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DMZ) 내 총격 도발에 나선 셈이다.

앞서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우발적인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1·2차 경고방송, 1·2차 경고사격, 군사적 조치의 5단계 절차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우리 군 GP 피격 과정에서 이 과정을 밟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북한이 남북 간 합의한 내용을 흔들어 더욱 과감한 대북정책을 펼칠 것을 압박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을 기점으로 북·미 대화가 사실상 중단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이어지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격 사건을 통해 남북 간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긍정적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남측과의 접점을 마련, 추가 군사합의 등을 체결하기 위해 이번 사격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격이 북한 중앙지도부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인지, 오발 등 현장에서 발생한 단순 해프닝인지 아직 알 수 없어 의도를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남북 군사 당국자 간 접촉이 이뤄질 수 있어 결국 남북 관계에 긍정적 모멘텀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뒤따른다.

◆'習 방한' 계기로 남·북·중 교류 꾀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9월 18일 무개차를 타고 평양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 돌파를 꾀하고 있는 만큼 북·미 대화 또는 남북 교류 재개에 적극 나설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자 중 당선이 유력한 후보가 결정될 때까지 북한이 '관망 모드'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남북 관계에 숨통을 틔울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된다. 대남(對南) 냉대 전략을 허무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6·15 공동선언 20주년 등을 계기로 한국 정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남북 방역협력 제안에 북한의 반응은 없지만, 여전히 실현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가 시 주석의 방한 등을 기회 삼아 적극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제언이 잇따르고 있다.

홍 실장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호응 없이 일방적으로 남북 경제협력, 철도 협력 등을 추진하기보다 중국을 매개로 남·북·중 3국 간 방역협력, 관광협정 체결 등을 추진해 북한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