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철학자 대담 "코로나 위기 대처 잘한 지금, 선진국 진입 절호의 기회"

2020-04-27 19:00
서강대 정인재 명예교수와 애제자 최진석 박사
'스토리'를 '히스토리'로 만드는 것이 과제, 정치가 가장 큰 걸림돌
과거에 갖힌 규제 풀어 국민들 더 자유롭게 해야… 이젠 양명학의 시대
기득권 교체보다 국민 스스로 개혁 필요, 포용과 덕성 되살릴 때

정인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는 부인 손정숙 여사(동양화가)와 함께 24일 봄기운이 완연한 날 오전 전남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 서교마을에 도착했다. 애제자 최진석 교수가 이곳에 사단법인 ‘새말 새몸짓’의 터전으로 쓸 집 ‘호접몽가’(胡蝶夢家)를 최근에 완공하고 스승 부부를 맨 먼저 모신 것이다.

대문 밖에 미리 나와 반갑게 맞이하는 제자는 스승의 손을 잡고 한동안 놓을 줄 모른다. 팔순을 앞둔 분이 먼 길 서울에서 오셨으니 그럴 만하다. 집안 곳곳을 함께 돌아보며 옛 추억을 나눈다. 스승 부부가 일찍이 제자의 부모까지 알고 지내서인지 대화는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갔다.

제자는 함평만 바닷가 장어구이 집으로 두 분을 모셨고, 돌아와 다시 마주 앉으니 한동안 다시 정담이 오간다. 각종 언론매체에 기고문을 내거나 방송 강연을 하는 최 교수는 그때마다 스승께 말씀드리고 메일로 자신의 글을 보내드리며 소통하고 있다. 제자가 ‘부모 같은 스승’이라고 하자 스승은 ‘청출어람’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며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으로 진입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공감했다. 정부는 지금의 많은 규제를 풀어 국민이 더 자유롭게 하고 특히 정치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성보다 덕성이 중요하고 국민 개개인의 자기개혁이 절실한 때라고 진단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더니 대화는 맞장구로 이어지며 유쾌했다. 멋진 만남이었다.
 

전남 함평군 향교리 서교마을 최 교수 자택 거실에서 만난 정인재 교수(오른쪽)와 최진석 교수. [사진=박승호 기자]
 

- 대학시절이 궁금합니다.

최 : 선생님은 학문적으로 매우 민주적이셨어요. 선생님의 관점을 놓고 학생들이 토론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비판까지 가능했지요. 당시 그 정도로 민주적인 교수님은 찾기 힘들었죠. 자상한 분이지만 교육에선 무척 엄격하셨습니다. 저에게 수업 외의 숙제를 많이 내주셨고 저는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해냈습니다. 석사학위 마치자마자 장자 관련 책 번역을 숙제로 주셔서 1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제 첫 책이 바로 ‘장자철학’(소나무)입니다.

정 : 군소리하지 않는 참 성실한 학생이었어요. 일부러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지금까지 항상 변함이 없지요.

최 : 수업이 없는 날에도 숙제 검사를 하셨습니다. 신혼 시절 이사하는 날에도. 오전 10시에 이사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오전 8시까지 와서 검사받으라고 하셨어요. 이삿짐으로 어질러진 집을 피해 근처 여인숙에 묵으며 밤새 숙제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선생님 댁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요. 선생님께서 아껴주신 것을 교수 생활해보니 알겠더군요, 선생님처럼 숙제 내주고 검사하는 일이 얼마나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지를. 제게는 부모 같은 분이죠. 그때 학문의 기초를 잘 닦았어요. 저를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무엇을 공부하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자연스럽게 도가철학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잘한 거죠. 당시 선생님 밑에서 한 공부가 중국 북경 대학에서 유학할 때 큰 힘이 됐습니다.

정 : 우리 최 교수가 장자를 연구했어요. 장자도 당나라 초기 장자 해석을 연구했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중심 분야가 중현학(重玄學)이었는데, 매우 어렵고도 새로운 분야였죠. 베이징대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대학의 세계적인 석학 탕일개(湯一介) 교수가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지요.

- 두 분 모두 평생 동양철학을 연구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은 양명학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정 : 주자학에서는 인간이든 국가든 따라야 할 정해진 이치, 즉 정리(定理)가 이미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달리 양명학에서는 주체의 내면이 현실과 시대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가는 합리적 이치, 즉 조리(條理)를 강조하죠. 주자학은 외부에 있는 이치를 따르다 보니 명분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제는 바깥에 있는 명분을 따르는 것보다, 각자가 내면의 양지를 잘 살펴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시대죠. 이게 바로 양명학입니다.

최 : 주자학에서는 이 세상에 눈금이 이미 그려져 있다고 보고 인간은 이 눈금을 발견해서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양명학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양지(良知)를 개발해 눈금을 그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큰 차이가 있지요. 선생님, 제가 맞게 해석했는지요?

정 : 맞아요. 주자학은 ‘백성은 우매하니 가르쳐야 한다’고 해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인 거죠. 하지만 양명학에서는 백성들이 자기 나름대로 판단능력이 다 있다고 보고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라고 가르칩니다.

최 : 장자에 이런 말이 있어요. ‘길은 걸어 다녀서 만들어지는 것이다(道行之而成)'. 양명학과 장자는 아주 상통한 면이 있습니다. 주자학은 근대적인 중앙집권체제에 맞아요. 시민의식이나 자율성, 자기 책임 같은 문제는 양명학에 더 가깝고. 따라서 지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양명학이 더 개발돼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 시민사회에서는 양명학적으로 사는 것이 맞는데 아직 주자학적인 전통이 많이 남아 있지요.

정 : 그런 전통은 아직 우리 생활 곳곳에 우리 의식 속에 배어 있습니다. 안 가르쳐 줘도, 알게 모르게 가정에서부터 그 전통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최 : 특히 우리에게 전통적인 유교의 핵심은 사실 주자학입니다. 우리나라는 주자학의 나라였습니다. 주자학에서는 이치, 진리가 정해져 있어요. 주자학에 충실하면 위정척사(衛正斥邪)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견이 다른 상대를 다른 것으로 보지 않고 틀린 것으로 배척하죠. 포용이 용납될 수 없어요. 이제는 국민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최진석 교수의 강의실 '호접몽가'를 배경으로 두 사제가 기념촬영을 했다. 호접몽가는 최근 완공한 최교수의 강의실이다. [사진=박승호 기자]
 

- 변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정 : 정치권에서 요즘 기득권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보다 앞서 국민 스스로 자신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봐요. 나 자신이 새로워져야 세상이 새로워지는 거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낡고 고정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또 잃어버린 덕성(德性)을 회복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덕성은 마음의 본체인 양지(良知)를 의미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지성(知性), 지성인(知性人)이란 말을 많이 사용했지만 덕성, 덕성인(德性人)이란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과거 우리 전통시대에는 덕성을 오히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덕성이 없는 개발은 자연파괴와 생명경시로 나타나고, 덕성이 없는 교육은 이기적인 경쟁자만 키웁니다. 덕성이 없는 언론은 분별력과 자제력을 잃어 막말과 가짜뉴스를 쏟아내 저속한 사회를 만들어요. 덕성이 없는 정치는 진흙탕 싸움을 하게 만들고, 덕성이 없는 경제는 자기 이익만 챙기는 욕심만 낳습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덕성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 코로나19 방역을 잘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 : 코로나19 방역은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품을 만합니다. 세계는 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와 벌이는 전투를 성공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지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질병관리본부, 지자체 직원들의 헌신은 놀라웠습니다. 국민은 사재기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마스크를 양보하기도 했지요. 봉사대를 조직해 필요한 물품을 소외계층에게 공급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친절했고 공조직의 지시를 대체로 잘 따랐지요. 또 한 번 집단적 긍정과 자존을 경험하며, 승리의 ‘스토리’(story)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발전하려면 ‘스토리’가 ‘스토리’에 머물지 않고 ‘히스토리’(history)로 진화해야 합니다. 문제는 지금 쓰는 ‘스토리’를 ‘히스토리’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입니다. 지금의 방역 성공 ‘스토리’를 새롭게 도약하는 나라를 만드는 디딤돌로 삼아야 합니다.

- 현실화 방법은.

최 : 국가가 틀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살라고 하거나, 특정 이념을 정해놓고 그곳으로만 가게 하지 말고, 국민에게 자유를 줘야지요. ‘못하게 하지 말고, 하게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미래를 봐야지요. 과거에 갇힌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합니다.

정 : 맞아요. 우리는 아주 창조적인 민족이라 자유로운 환경이 되면 누구보다 독창성을 잘 발휘할 수 있다고 봐요.

최 : 국정이 특정 이념에 사로잡히면 이념의 잣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허용하는 것이 선별적이고 못하게 하는 것이 많아집니다. 못하게 하는 것이 많으면, 사회가 정체됩니다. 이념은 과거입니다. 과거의 문법으로 미래를 다루는 우를 범하지요. 우리는 이제 민주화 다음을 넘봐야 합니다. 전술 국가에서 전략 국가로, 따라 하기에서 선도력을 갖는 단계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야 하죠. 전술 국가는 짜진 판에서 사는 나라이고, 전략 국가는 자신만의 판을 짜서 사는 나라입니다. 여기서 창의성과 고유함, 그리고 독립 등의 덕목이 나오죠. 우리는 전술 국가 최상위 레벨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전략 국가 레벨로 도약하려는 도전 이외에는 이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붙잡고 씨름하는 의제입니다.

정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정리(定理)를 추종하는 단계에서 조리(條理)를 자발적으로 행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죠. 이미 정해진 이치를 따르는 게 아니라 각각의 다른 상황에서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내면이 가장 합리적 창조를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최 : 모델을 따라서 사는 삶을 넘어 모델을 만드는 삶으로, 선례를 따르는 삶에서 선례를 만드는 삶으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해야 하는 때입니다. 이제는 국가 시책이나 모든 것을 여기에 맞춰야 한다는 거지요. 코로나 방역에서 우리가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도약을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자는 것입니다.

정 : 정치적인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에 대통령이 다 있어요. 분야별로 모두 전문가들이 있으니 가능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조정경기에서는 한 사람이 지휘하지요? 그 사람을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노를 젓습니다. 우리는 조정경기가 아니라 카누처럼 각자의 자발성과 책임감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빠져 죽지 않으려고 거친 물살을 스스로 헤쳐나가야지요.

- 히스토리로 만드는 데 장애 요소라면.

최 : 스토리를 히스토리로 못 만드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 때문이라고 봐요. 사회를 바꾸려면 필연적으로 정치로 바꿀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코로나 방역 성공사례를 히스토리로 바꿀 수 있는 정치문화가 준비되어 있느냐가 가장 핵심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구조는 너무 보수화했습니다.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로 보수화하고, 산업화 세력은 산업화로 보수화해 사실 정치적 승패를 나눠 가진다고 해도 실은 모두 기득권 세력일 뿐입니다. 미래를 열기 어려운 구조죠.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과거에 갇힌 형국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주의는 오히려 더 공고해졌습니다. 공고해진 지역주의에서 태어난 정치구조가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뜻이군요. 필요한 요소는.

최 : 교육이죠. 새 시대를 열어갈 인재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방금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타인이나 사회를 새롭게 하고 싶으면 먼저 나부터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이 시대에 제일 필요하다고 봐요.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나라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사회는 다들 개혁을 말하면서 자기 개혁을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저 타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선진국 높이로 도약하려면 자기 혁신, 자기 개혁의 습관이 매우 필요합니다. 자기 혁신의 결과가 창의성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이 정치도 유권자들이 만들어 내잖아요. 창의적 유권자가 창의적 정치를 만들고, 미래적 유권자가 미래적 정치를 만들죠. 우리나라 직업의 개수가 대략 1만4000개 정도고, 일본이 2만5000개, 미국이 3만5000개 정도 되나 봐요. 직업의 개수는 그 나라가 허용하는 수준이고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봐요. 못하게 하는 것이 많으면 직업의 개수도 당연히 적겠죠. 국가가 국민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게 하느냐 못하게 하느냐도 가늠할 수 있죠.

정 : 그건 위험하니까. 그건 용기가 필요한 거니까 허용하지 않아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못 나가요. 정해진 틀만 따라라. 너희의 아이디어는 위험하다, 안전하게 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틀을 벗어났을 때 창조성이 생기고 새로운 것이 창출되는 것이지 틀 속에 갇혀 있으면 아무것도 안 돼요. 교육도 틀 속에 집어넣어 똑같이 만들어내려 하니 창의성이 부족하죠.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스승과 제자가 함평군 향교리 서교마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손을 맞잡은 모습이 정겹다. [사진=박승호 기자]
 

- 철학도 마찬가지겠지요.

최 : 그렇습니다. 중국은 주자학으로 송나라를 안정적으로 잘 관리했어요. 이후에 시대가 변해 주자학으로는 더는 국가의 효율적 운영이 어려워지니까 양명학으로 바꿨습니다. 중국은 이런 식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주자학, 양명학, 고증학 등으로 철학을 바꿔나가죠. 시대에 따라 그 시대에 맞는 철학을 생산해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 초기에 수입한 주자학을 500년 동안 지켜요. 철학을 생산한 사람들은 생산 과정에서 자신들이 설정한 비밀번호를 알죠. 그래서 시대에 맞게 바꾸는 능력을 발휘해요. 그런데 우리는 수입해 왔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몰라요. 이 때문에 한 번 들어온 것을 죽어라 지키기만 한 겁니다.

- 우리 몸에 맞는 철학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최 :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능해야죠. 철학은 자기가 처한 구체적인 현실에서 승화시킨 가장 높은 차원의 삶의 전략입니다. 전략적인 단계에 있거나 그 단계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 혹은 상승하려는 욕망이 있는 나라에서 철학은 생산됩니다. 우리나라는 전략적인 단계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제 그 단계로 도약하고자 하는 결집 된 욕망이 있느냐 없느냐만 문제입니다. 전술 국가 차원에서 다루던 문제를 그 수준 그대로 다루는 한 어렵습니다. 과거의 연장으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도약하려는 과격한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2위입니다. 중진국, 즉 전술 국가 최상위 단계죠. 20년, 30년 전의 생산력으로는 아마 힘들었을 겁니다. 그때는 따라 하기가 좋은 전략이었던 같아요. 따라 하기가 이제 한계에 도달하니 창의적 활동이 필요하게 된 겁니다. 창의적 활동이 일어나는 단계를 우리는 선진국, 즉 전략 국가라 하는 것이죠.
산업 혁명이 무르익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사회 구조가 자리 잡았을 때가 1820년 정도인데, 그때를 역사에서는 ‘대분기’라고 합니다. 대분기 때의 선진국은 아직도 선진국이고, 그때의 후진국은 아직도 후진국이에요. 이게 잘 안 바뀝니다. 선진국은 선진국적 높이의 시선을 유지하고, 후진국은 후진국의 시선에 갇혀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매우 예외적으로 후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까지 발전해 선진국 높이에 가장 가깝게 온 것이죠. 하지만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예는 아직 없습니다. 우리도 어렵죠. 그런데 우리에게 기회가 왔어요. 패러다임이 그대로 유지되면 불가능한데, 패러다임이 깨지고 있어요. 패러다임이 깨져 달라지는 현상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패러다임이 깨져야만 후발주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요. 게다가 패러다임이 깨지는 지금 이때가 우리의 국력이 제일 강한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패러다임이 깨지는 이 흐름을 자세히 관찰하고 거기에 올라타려는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해낼 수 있고, 해야만 해요.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몇백 년간은 기회가 없다고 봐요. 매우 희망적이며, 매우 절박합니다.

- 선진국으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라는 말씀이군요.

최 :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 유통하는 방식, 삶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고 있잖아요. 변혁기예요. 그것도 아주 과격한 변혁기입니다. 문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어요. 지금 마음이 급하고 흥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죠. 코로나 방역도 선진적이고 창의적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서 좀 더 집중해 ‘히스토리’를 만들자는 거죠. 역사는 의도적이고 정책적이고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지, 절대 자연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아주 의도적인 행위를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전체적으로 ‘새말 새 몸짓’ 운동이라고 표현합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헌 말 헌 몸짓’으로 규정합니다. ‘헌 말 헌 몸짓’을 벗고 ‘새말 새 몸짓’으로 무장하자고 호소합니다. ‘새말 새 몸짓’으로 미래를 건설하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교육은 고도의 정치 행위입니다. 정치는 전적으로 교육의 결과입니다.

- 어떤 교육을 생각하시는지.

최 : 저는 교육 분야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발견한 게 있어요. 정치인이든 엔지니어든 예술가든 학자든 그 사람을 제대로 만드는 핵심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아는 겁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아는 것의 진실성 정도가 그 사람의 성취와 높이와 크기와 행복을 결정합니다. 그 사람의 성숙은 그런 질문들을 하면서 직면하는 방황과 고뇌들이 결정합니다. 이것은 최소한 저한테는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붙들고 놓지 않은 사람이 정치하면 제대로 된 정치를 하고, 예술을 하면 매우 수준 높은 예술가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들을 하지도 않고, 분명한 답도 갖지 못하면 무엇을 하든 기능적인 단계 이상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 정치인들도 스스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를 묻기 시작하면 달라질 겁니다. 저는 오늘 스승님께서 방문해주신 이 자리에서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과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제가 관찰해보니까 높은 경지의 덕을 갖춘 사람은 확실히 자기가 자기에게 분명하더라고요. 양지(良知)를 계발한다는 것도 사실은 자신이 자신을 아는 일입니다. 이런 생각과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게 지도해주신 나의 스승, 정인재 선생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 최진석 교수는.

1959년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태어났다. 함평에서 손불동국민학교와 향교국민학교, 광주의 월산국민학교, 사레지오 중학교, 대동고등학교를 나왔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베이징대학교에서 도가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동아시아학과 방문교수와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연구소 방문학자를 지냈다.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해 서강대 교수직을 떠나 2015년 국내 최고 석학들과 함께 건명원을 열고 초대원장을 지냈다. 건명원은 창의적 리더와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인문 과학 예술 교육기관이다. EBS 강좌를 비롯해 기업과 사회단체의 초청 강좌를 통해 대중 속으로 철학을 전하고 있다. 한국의 ‘인문학 바람’을 이끄는 대표 학자로 손꼽힌다. 2019년 사단법인 ‘새말 새 몸짓’을 만들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어린 시절을 지낸 전남 함평 고향집에 강의실 ‘호접몽가’를 최근 완공하고 오는 9월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말 교육을 할 예정이다. 저서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노자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