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퍼스트 코리아!] 이인호 교수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질서가 바뀐다"

2020-04-27 07:00
-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인터뷰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한 세기 제조업을 지탱해온 글로벌 분업 체계의 허점이 노출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비용의 효율성보다는 국가의 대외 신인도인 ‘컨트리 리스크(국가위험도)'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24일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을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이 학회장은 글로벌 밸류체인(GVC)의 붕괴와 향후 재편될 세계경제 질서 전반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업화' 효율성의 큰 틀 안에서 경제 구조가 재편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밸류체인 재편기업을 위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등 정책적 유인책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이번 위기에서 확인된 우리의 방역제도나 IT 인프라 등 강점을 살려 글로벌 시장에서 도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중 무역갈등, 코로나 팬데믹 연쇄 타격··· "기업들 포스트 코로나 대응해야"

이 교수는 "이번 사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며 "기존에 비용만을 고려했던 것에서 국가위험도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멈추면서 전 세계 기업들이 연쇄 타격을 받았고, 생산시설을 해외로 내보낸 기업들이 특정국에 제조설비를 몰아둘 때의 위험성을 깨달으면서 글로벌 공급망 변화가 불가피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최근에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중국에서 배운 경험을 통해 (베트남 등으로) 리쇼어링하고 있고, 제3국을 찾는 흐름도 생기고 있다"며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이런 흐름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갈등이 진행된 이후 여러 가지가 동시에 터지면서 일어났기 때문에 고통은 따르겠지만 기업들이 리셋을 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이 교수는 "리셋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시장가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일정 부분 탈중국의 흐름은 있겠지만, '싼 곳에서 생산해서 비싼 곳에서 팔자'는 기본 원칙은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턴기업 유인책 강화하고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해 도산 막아야"

그는 리셋을 고려하는 기업을 위해 우리 정부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기업이 정치권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지 않고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고, 사회도 기업에 적대적인 분위기를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도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국가 산업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관점에서 기업을 살려야 한다"며 "결국은 기업을 살리는 게 국가를 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덧붙였다.

다만 이 교수는 국내로 오려는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들에도 과연 우리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부가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데 대해 사회에서 적대적인 분위기도 있고, 인센티브 등의 혜택이 다양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유턴전략에서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유턴기업을 위해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에 있는 자국 기업을 유턴시키기 위해 기업 이전 비용 100%를 지원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최근 자국 복귀를 원하는 부품·소재 분야 대기업에 생산 공장 이전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유턴 지원책을 내놨다.

또한 이 교수는 "새만금정책이나 인천경제자유구역 등도 일단 클러스터를 구축해서 경쟁이 되도록 만드는 원리"라며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해서는 10년 이상을 법인세 인하나 대출비용 인하 등 인센티브를 줘서 물건을 팔고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보다는 기업 도산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거리두기로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비 진작은 효과가 크지 않다"며 "영세한 저소득층의 소비자들은 이미 사태 이전에 소득지원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는 경제분야에서 시작된 위기가 아니고, 정부가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거리두기를 하면서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지원금 소비진작 효과는 적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며 "돈은 쓸 수 있을 때 지원 해줘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도산 위기에 놓인 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자금을 투입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며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반감을 가질 수 있지만, 기업을 살리는 게 국가 산업을 살리는 것이고 결국엔 그것이 나라를 살리는 방법이다. 기업이 도산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온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전통경제 붕괴될 것"

또한 코로나 사태로 번진 '언택트(비대면) 시대'는 경제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마존, 유튜브, 넷플릭스 등 IT기업이 몸집을 키우고 '일대 다수'의 승자독식 경제구조가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유튜브나 비대면 수단이 늘어나면서 독보적인 한 사람이나 하나의 콘텐츠에 수요가 몰리는 독식구조가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교수는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킨 K팝스타 BTS(방탄소년단)가 유튜브로 막대한 수익을 내는 구조를 예로 들었다. 그는 "잘살게 되는 방법, 즉 부를 집중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이라며 "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생산비용이 제로인데도 꾸준히 수익을 내는 경제구조로 바뀌며 기존 전통경제구조는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대한민국의 정보의 힘을 실감했다"며 "감염자 전후의 동선을 파악하는 기술과 IT인프라는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 IMF 사태 때 금모으기 운동처럼 코로나 정국에서도 질서있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 대한민국이 가진 정서와 의식수준도 최고임을 확인했다. 우리가 가진 인프라의 강점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이고 이런 점에서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정책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돈의 비용을 인위적으로 낮추고 있는데, 시장 왜곡을 만들 수 있다"며 "자본도 제값을 치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2~3% 금리가 나와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부동산 등 돈이 몰리는 데로만 가고 소비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며 "저금리 상황에서도 헤지펀드 등 자본소득은 연간 20%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서히 금리 정상화를 해야 한다. 통화 정책이 아예 약발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유동성 공급을 확대한 이후가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 똑바로 대응을 하지 않으면 대규모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성장률은 하락하고 경기부양책으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에 스테그플레이션까지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용어로, 경기 후퇴에 따른 실업 사태와 고물가를 동시에 겪어야 한다. 
 

이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사진 = 유대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