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을 모르는 이들은 있어도 '스카치 테이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유주를 표시하기 위해 가축에 낙인을 찍은 데서 브랜드(Brand)의 어원이 유래했듯, 잘 만든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 제품을 깊게 각인시킨다. 광고계의 거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브랜드는 제품의 이름과 성격, 가격과 역사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무형의 집합체"라고 정의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아주경제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이 된 한국의 산업계를 대표하는 브랜드에 대해서 살펴볼 계획이다.<편집자주>

LG전자의 '트롬(TROMM)'은 국내 드럼세탁기 역사의 산 증인이다. 트롬 출시 이전인 2000년만 하더라도 국내 드럼세탁기 시장은 연간 2만대였다. 연간 100만대가량이 판매되던 전체 세탁기 시장의 2% 수준에 불과했다.

당시 드럼세탁기는 한국인들에게 낯선 제품이었다. 일명 '통돌이'로 불리는 와류식 세탁기가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밀레와 월풀, 아에게 등 외국계 가전업체에 인지도와 기술력에서 밀리는 국내 업체가 설 자리는 없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도 드럼세탁기를 출시한 바 있지만 점유율은 미미했다.

하지만 LG전자는 드럼세탁기 시장을 새로운 전략 상품으로 점찍었다. 시장의 중심이 곧 드럼세탁기로 옮겨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드럼세탁기 보급률이 더욱 높았던 만큼 한국에서도 유행이 시작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주거문화의 서구화 및 빌트인 가전의 보급 증가 추세도 눈여겨봤다.

◆"트롬, 드럼세탁기 대명사로 만들자"
  재도전을 위해 LG전자는 브랜드 전략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디오스'와 '엑스캔버스', '휘센' 등 냉장고와 TV, 에어컨 제품군에서 독자 브랜드화로 성공했듯 드럼세탁기에도 같은 전략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LG전자는 '벨라지오'라는 이름표로 드럼세탁기를 출시했다. 벨라지오는 냉장고와 가스오븐, 식기세척기 등 다양한 제품군을 아우르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드럼세탁기라는 새로운 상품을 각인시킬 만한 신선한 이름이 필요했다.

당시 브랜드 전략을 지휘하던 이들은 LG전자 한국영업부문장(부사장)이던 성완석 전 파리크라상 대표와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손혜원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다. 이들은 드럼세탁기의 새 이름을 트롬으로 정했다. 드럼을 뜻하는 독일어 '트롬멜(TROMMEL)'에서 차용한 것이다.

드럼세탁기의 본고장인 유럽의 어감을 살리는 동시에 트롬이 곧 드럼세탁기의 대명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작명이다. 구매를 결정하는 주부층을 겨냥해 'True Riches Of My Mind(내 마음속의 진정한 풍요)'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로고 또한 치밀한 전략을 담았다. 로고만 봐도 직관적으로 제품이 떠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트롬 한가운데 'O'자는 드럼세탁기의 원형 출입구를 상징한다. 손 최고위원은 저서 <브랜드와 디자인의 힘>을 통해 당시 TV 광고에서도 세탁기의 원형 출입구와 로고의 O자가 동일선상에 놓이게 배치하는 데 신경썼다는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