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연준의 무제한 돈풀기 V자형 경기회복 가능할까?

2020-04-19 15:19
연준, 세계의 경제의 마술사 (하) )

이수완 위원[이수완 위원 <사진: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2007년 5월 17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한 모임에서 행한 연설을 보면, 그는 당시 엄청난 금융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자타가 공인하던 대공황 전문가인 버냉키는 미국의 고금리 정책과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급증하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이 경제 전반 그리고 금융 시스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1년 6개월도 안되어 신용경색으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되고 기업 파산과 대량 해고가 속출하는 세계 경제의 위기가 본격 진행되었다.  

버냉키는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급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격적인 금리인하와 무제한 돈풀기 등 연준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동원시켰다. 세계 경제가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와 회복이 시작되자 뉴스위크는 그를 "경제를 구한 남자(the man who saved the economy)"로 불렀고 타임지도 200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시카고학파 거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버냉키에 큰 영향을 준 경제학자이며 스승이다. 프리드먼은 1930년대 대공황 위기 시 연준의 가장 큰 실수로 금리를 너무 성급히 올리고 통화공급을 줄인 것이라고 지적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버냉키는 2002년 연준의 이사가 된 직후 전미경제학자클럽(NEC)의 연단에 올랐다.  미국이 일본처럼 장기 불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질문에 프리드먼의 이론을 인용하며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듯 중앙은행이 대규모 통화완화정책을 단행하면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유명한 그의 별명 '헬리콥터 벤'이 탄생했다. 다수의 경제학자나 중앙은행 관계자와 달리 물가안정보다는 경기부양에 역점을 둔 그의 발언은 파격 그 자체였다. 

4년 후인 2006년 1월 버냉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준 의장에 발탁되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라는 초대형 태풍을 맞게 된다. 연준은 1년 사이에 금리를 5.25%에서 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추었으나, 유동성위기 극복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자 소위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국채매입 등으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 직접 돈을 푸는 방식)을 도입한다. 2008년부터 2010년 6월까지 총 1조3000억 달러가 풀리며 시스템붕괴 직전의 세계경제를 살리는 데 성공한다.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공대를 나온 수재이며 대공황 전문가의 진가가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버냉키의 금융위기 대응은 대공황과 달랐다. 최종 대부자 역할에 충실한 연준은 단기 금융시장의 경색을 빠르게 완화시켰다. 그는 온갖 정치적 압력과 비판에도 통화 공급을 늘리기 위해 수차례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이런 돈풀기 정책을 두고 시장은 환호했지만 정치권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한다는 이유로 버냉키의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8월 2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자 공화당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버냉키를 옆에 세우고 연임 결정을 발표한다. 버냉키의 "용기, 창의성이 2008년에 또 다른 대공황을 막았다"는 성명과 함께. 오바마의 무한 신뢰 덕에 버냉키는 대공황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버냉키에 이어 2014년 취임한 재닛 옐런 의장은 시장 기준금리를 네 차례 올리며 버냉키가 시행한 통화완화 정책을 서서히 거둬들였다.

제롬 파월 현 의장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준 역사상 가장 신속하고 광범위한 조치, 즉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선 건 버냉키가 남긴 선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각에서는 버냉키가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을 조기에 감지하지 못해 금융위기를 방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또 금융위기 당시 탐욕으로 가득찬 대형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면서 월가에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문제를 키웠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파월은 버냉키를 향한 이런 비난에서는 자유로운 모습이다. 이번 경제 위기가 발생한 원인은 기업의 잘못이나 정책 실패가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외부 요인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바이러스 확산으로 경제 활동이 중단되어 피해를 입은 기업과 생계 수단이 어려워진 가계를 일시적으로나마 돕기 위해 연준이 재무부와 함께 전례없는 규모의 돈풀기에 나선 것은 명분과 설득력이 충분하다. 그리하여 2008년 당시 구제금융에 대한 정치권과 사회 각층의 요란했던 비판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파월은 연준이 특정 기업을 염두에 둔 선별적 지원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통화량의 폭증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2008년 당시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의 주원인은 세계 경제의 과잉 유동성이었다.  그러나 과잉 유동성이 버냉키의 책임으로 볼 수 없고 그의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의 유산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즉,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이 미국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 또 파생상품 규제에 대한 느슨한 정책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신용 위기를 도래시켰다는 주장이다. 역대 16명의 의장 중 13대 앨런 그린스펀은 1987년 8월 취임 후 18년 6개월이나 최장기 재임하며 1990년대 미국의 장기 호황과 중앙은행 전성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그는 1996년부터 3년간 미국경제가 연속으로 3.5%대의 성장을 기록하는 가운데 2%대의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하는 등 소위 '골디락스 경제'를 구현해 냈다. '비둘기파'에 가까운 그는 2000년 정보기술(IT) 붐이 무너진 닷컴버블 붕괴 사태가 발생하자 정책금리를 2년여에 걸쳐 연 6.5%에서 연 1%까지 끌어내렸다.  이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그린스펀이 세계 경제사에서 누구보다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2월 작고한 그의 전임자 폴 볼커의 숨은 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린스펀과 달리 '매파'인 볼커는 재임시(1979년 8월 ~1987년 8월) 별로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인기는커녕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례없는 고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행정부와 기업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 그의 취임 당시 미국은 석유 파동, 달러 약세, 10%가 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 위기뿐 아니라, 이란의 미 대사관 장기 인질사태로 인해 국제 정치적으로 극심한 곤경에 몰린 상태였다. 연준의 통화 긴축으로 물가 상승률은 1983년 3%대로 급락했다. 볼커가 의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연준은 다른 나라 중앙은행과 달리 민간에서 파생했다. 각 주의 독립성을 보장한 연방정부 형태인 미국은 중앙은행 설립 의견을 일치하는 데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다가 미국 정부와 JP모건 등의 민간 금융회사가 함께 지분을 갖는 사립은행 형태의 독특한 중앙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법적으로 연준은 실질적인 중앙은행 기능을 수행하는 12개의 지역 준비은행들의 연합체이다. 지역연방준비은행은 연방준비법에 의해 민간은행 출자로 설립되고 운영된다. 연준은 1914년 출범 후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나 1929년 대공황이 찾아오면서 엄청난 시련을 맛본다. 프리드먼 등 통화주의 학파는 대공황이 10년 이상 장기화한 원인을 연준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통화정책에서 찾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소방수' 역할을 하고 있는 파월 의장은 지난 9일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웹캐스트 연설에서 "미국 경제기반이 탄탄한 상황에서 이런 격변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은 향후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라며 낙관적인 시그널을 시장에 보냈다. 그는 2분기 성장세는 매우 취약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경기가 반등하는 시점에서 회복세는 강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모든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애초 코로나 사태를 "1930년대의 공황보다는 눈폭풍이나 자연재해에 가깝다"면서 V자형 회복을 전망했던  버냉키 전 의장의 전망은 180도 돌아섰다. 그는 향후 1~2년가량 "매우 매우 어렵고 끔찍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준의 정책은 100여년 역사 중 성공과 실패를 반복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과 세계 경제에 대한 위협을 멈추지 않는 한 연준의 시장 개입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10일에는 기업체 대출과 회사채·지방채 매입 등에 2조3000억 달러(2800조원)의 유동성을 추가로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연준의 과감한 정책 대응이 단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 시나리오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분분하다.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천문학적 돈이 풀리면서 V자(단기침체 후 급반등) 회복을 위한 군불을 지폈지만 기업 실적 악화와 대규모의 실업사태 등 현실은 녹록지 못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의 셧다운 기간에  입는 경제가 피해 규모에 따라 U자(침체 장기화 후 반등) 또는 더 나쁜 L(침체 장기화로 회복 불능)자형까지도 대비를 할 때이다.  또한 양적 완화로 인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더라도 자산가격 앙등으로 인한 부의 양극화 심화 등 불편한 진실이 우릴 기다릴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점을 지났다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미국 일부 주(州)에서는 국가 경제 활동의 점진적인 재개가 가시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당분간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바이러스 책임 공방으로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국제 정치도 더욱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대재앙은 지구촌에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