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촌철살림] 웃는 당선자들께 올림 <경제 民心청구서>
2020-04-16 16:51
(정숭호 논설고문의 경제 브랜드칼럼 '촌철살림'은 촌철살인과 경제의 살림을 합성한 말입니다)
[정숭호의 촌철살림] 코로나19가 야기한 경제빙하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에 대한 논의가 넘친다. IMF까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1.2%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니 이런 논의는 불가피하다. 코로나19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경제빙하기에서 헤어나기 위한 방안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부 항목에서는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나, 근본은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는 데에 맞춰야 할 것이다. 기업 활동을 짓누르는 정부의 간섭이 계속되고,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를 우선해서는 경제빙하기의 지속 기간을 늘리면 늘렸지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참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그가 해온 일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규제 개혁을 단행하는 추진력만은 부럽다. 취임 직후 “정부 내 규제를 75% 철폐, 25%만 남기겠다”고 선언한 그는 곧 바로 ‘원 인, 투 아웃(One in, Two out)'제도를 도입해 새로운 규제를 하나 만들려면 기존 규제 두 개를 폐지해야만 하도록 했다. “원 인, 투 아웃제도 역시 새로운 규제”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제정된 지 수십년 지난 ‘묵은 규제’를 찾아내 적극적으로 폐지하려는 선한 의지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많았다. 트럼프는 언명대로 곧바로 규제 개혁에 나서 취임 후 6주 동안 규제 90개를 없앴다. 정말 불필요한 규제만 개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우물쭈물하지 않고 화끈하게 밀어붙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 기업들이 규제에 짓눌려 숨도 못 쉴 지경임은 새삼 밝힐 일이 아니다. 대한상의 회장 박용만은 20대 국회 개원 후 약 230일이 지난 시점에 “20대 국회가 발의한 법안 587개 중 407개가 기업 규제 법안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30일 동안 하루 1.7개꼴로 규제 법안이 발의됐다고 호소한 것이다.
수출 감소 등 경기 부진으로 실직자가 크게 늘어났다. “뭐를 먹고사나”가 수많은 가정의 문제가 됐다. 역대 최대인 3월 구직급여 지급액이 증명한다. 3월 구직급여 지급액은 8982억원, 역대 최고였던 지난 2월의 7819억원을 한달 만에 1000억원 이상 앞질렀다. 3월 구직 급여 신규 신청자도 늘어났다. 작년 3월 12만5000명보다 3만1000명(24.8%)이 늘어난 15만6000명이 구직급여를 신청한 것이다. 2월까지만 해도 취업자가 전년 동기보다 1.9% 늘어났다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던 정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업자로 간주되지 않는 무급휴직을 포함하면 먹고사는 걸 걱정하게 된 청장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2월 취업률을 자랑하면 안 될 이유는 또 있다. 주당 40시간 근무자를 취업자 1명으로 간주하는 ‘전일제환산’ 취업자 수는 오히려 전년 같은 달보다 0.8% 감소했기 때문이다. ‘전일제환산 고용지표’는 한 주에 40시간 풀타임으로 일한 것을 ‘전일제 일자리 1명분, 즉 1FTE’로 산정한다. FTE는 ‘Full Time Equivalent’의 머리글자 모음이다. 20시간 일하면 0.5FTE, 80시간 일하면 2FTE 가 된다.)
수출과 고용뿐 아니라 생산 투자 소비도 온통 악화일로다. 마스크 공장과 코로나 진단 키트 생산 시설 외에는 제대로 돌아가는 공장이 없어 보인다. 유통업 관광업 항공업 외식업은 규모의 크고 작음과 관련 없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채 죽어가는 모습이다. 3월 29일부터 4월 4일까지 한 주일간 김포공항 국제선은 이용객이 한 명도 없었다. 1년 전 같은 기간에는 8만9189명이었다.
이 불황, 이 엄혹한 현실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경제가 나빠진 게 아니라, 이미 기저질환이 심각한 상태였던 한국 경제를 코로나19가 더 빠른 속도로 악화시키고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증거 또한 넘친다. 수출은 코로나19가 덮치기 전인 지난해에도 이미 10%가 줄었다. 지난해 국내 10대 그룹 상장사들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60% 급감한 것도 기저질환이 심각함을 보여주는 증상이다. 10대 그룹 비금융 계열사 94곳의 작년 전체 영업이익은 34조7737억 원으로 전년보다 59.89% 감소했다. 실적 저조에 따라 기업 투자도 10% 이상 줄었다.
한국 경제를 드러눕게 한 기저질환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 현실을 무시한 근로시간 단축, 경쟁력을 해치는 각종 행정 규제, 노동개혁 후퇴 등 반기업적 정책이 원인이다. 이런 정책이 글로벌 경쟁자들과 생존을 걸고 싸우는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을 깎아내린 것이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이 닥쳤을 때 최저임금제와 최대 노동시간 제한 등의 정책을 시행했으나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한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현금성 복지 확대 같은 정책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오래도록 한국 경제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4·15 총선으로 새로 시작될 의회는 환골탈태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규제를 만들지 않고 규제를 부수는 국회가 돼야 한다. 하루 한 개꼴로 규제 법안이 폐지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을 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 청와대도 경제와 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지지자들에게 핑계대기도 좋다. “코로나19 때문에, 그놈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도 생각을 달리 먹어야겠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하면 지지자들도 환호하지 않을까? 그들 대부분도 살림살이가 어려워질 텐데?
충남대 명예교수 허찬국(경제학)은 “정교한 얼음 조각(彫刻)이 녹아내리는 것과 같다”고 코로나19가 덮친 현상을 표현했다. “코로나19로 경제빙하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일반적 비유와 의도는 같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지금 있는 그대로 꽁꽁 얼어붙는 게 아니라 “완전히 녹아내린 다음, 그 상태에서 얼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주변 대부분이 녹아내리고 있다. 잠깐만 눈을 돌리면 다 안다. 문자 그대로 경제의 ‘멜팅 다운(Melting Down)’이 시작됐다. 그런데, 얼음이 녹으면 녹는 것이지, 그는 왜 얼음 조각이 녹는다고 했을까? 얼음 조각은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냉동실에서 만드는 네모난 얼음은 녹은 물을 다시 네모난 틀에 넣어 얼리면 원래 모습이 되지만, 얼음 조각은 녹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형체가 불가역적으로 변형되어 원상회복이 불가능해진다. 지난 70년간 공들여 깎아온 대한민국 경제라는 얼음 조각이 더 녹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규제혁파로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