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나라 곳간···'보조금 사냥꾼'이 설친다

2020-03-24 08:18
매년 예산은 커져도 '보조금=주인 없는 눈먼 돈' 인식 만연
'정보의 비대칭성'·'도덕적 해이' 원인
정부, '보조금 부정수급 관리강화 방안' 발표

#2012년 9월 건설업자 A씨는 창원시에 건설비 8억8100만원이 드는 수산물 가공공장을 짓겠다며 국고보조사업을 신청해 사업자로 선정됐다. 정부가 4억8000만원을 지원하면 A씨가 나머지 공사비 4억원을 투자해 건물을 짓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처음부터 허위였다. A씨는 시공업체와 공모해 사업비를 두배 가량 부풀려 계획서를 제출했다. 지원금이 나오자 역시 시공업체와 공모, 허위 거래내역서를 만드는 수법으로 지원금을 가로챘다. 뒤늦게 감사에 적발되지 않았다면 혈세 4억8000만원은 고스란히 A씨와 업자 호주머니로 들어갈 뻔했다.  

#2017년 B업체는 한국에너지재단이 시행한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에 참여해 공사비 6억원을 부정수급했다. 재단이 현장 점검을 하지 않는 점을 악용, 허위 사진을 제출해 시공한 것 마냥 조작한 것이다. 해당업체는 이미 사용한 사진을 다시 사용하거나 같은 곳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뒤 마치 다른 곳인 것처럼 사용하다 적발됐다. 

지난 3년간 국가보조금 예산 규모는 30조(2017년 94조→2019년 124조)가 늘었다. 해마다 증가하는 국가보조금 예산을 '주인 없는 눈먼 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보조금 사냥꾼'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년 만에 1000건 넘게 발생한 보조금 부정수급

지난해 10월 기획재정부는 ‘상반기 보조금 부정수급을 집중점검’을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기재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1~7월) 보조금 부정수급 금액은 총 1854억원(약 12만 건) 이었고 환수 결정된 금액은 647억원이었다. 그 중 고의나 거짓으로 부정수급한 금액은 162억원, 횟수는 1358건으로 조사됐다.

R&D(연구개발) 비용을 부정수급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원 졸업생 김모씨는 교수의 보조금 부정수급을 실제로 보았다고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그는 “한국산학연협회(산학연) 소속의 한 교수는 산학연에서 제공하는 보조금 지원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는 업체가 나타나면, 자기가 대표로 있는 컨설팅업체를 소개해 사업을 진행하도록 했다”라며 “이후 사업이 통과되면 보조금 중 일정 퍼센트를 업체에게 되돌려 받았다”고 밝혔다.

부정수급의 경우 누군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고, 사람들이 공모를 통해 진행하므로 적발이 어렵다. 또한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한 점도 사례가 늘어나는 데 한몫했다.

화물차주와 주유소 사장이 공모해 허위 결제를 통한 방법으로 유가보조금을 부정수급하거나 보육원에서 등원하지 않은 원아들을 허위 등록해 기본보육료 등을 부정수급하기도 했다.

브로커, 컨설팅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보조금을 불법수령하는 사례도 있다. 컨설팅 자체는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공단 직원과 잘 안다며 자금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하거나 지원자격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지원금 수령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불법 브로커들이 존재한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정책자금 불법 브로커 신고센터 접수 건수는 2018년 2건에서 2019년 14건으로 늘었다. 본지는 실제로 브로커와 상담을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들을 수 없었다. 브로커는 "온라인상으로는 답변드릴 수 없다"면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기록이 남는 대화를 꺼려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새나가는 보조금을 막기 위한 노력도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조금은 시장실패 혹은 시장이 불완전하게 작동해서 소망되는 재화나 서비스들이 그만큼 공급이 안될 때 지급한다”며 “경제·사회적 외부 효과 발생을 위해 보조금을 주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 이유로 보조금을 부정수급하고 있다”며 “보조금을 타기 전 증빙을 하는 사전규제와 보조금을 타고난 후 사후규제를 통해 보조금의 부정수급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는 그 중 사후규제면에서 약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적발확률과 처벌수위를 따져볼 때 부정수급하는게 더 이익이라고 생각되면 보조금을 부정 수급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보조금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사전·사후 규제가 다방면에서 시행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 국민권익위원회와 ‘보조금 부정수급 관리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기재부는 방안을 발표하며 “보조금 부정수급은 반드시 적발되고 ‘엄중한 처벌을 받는 범죄’라는 인식을 높이기 위해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시스템을 통한 사전자격 검증 강화, 그동안 미흡했던 신고자에 대한 보호 강화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기재부는 “재정지출 효율화를 위해 예산의 부정수급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정수급은 재정 누수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1월 1일부터는 공공재정 부정청구 금지 및 부정이익 환수 등에 관한 법률(공공재정환수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공공재정지급금(보조금, 보상금 등)을 허위·과다 청구하거나 원래의 사용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 잘못 지급된 경우 등이 적발되면 행정청이 그 금액을 전액 환수하고, 최대 5배의 제재부가금을 부과하도록 한다.

불법 보조금 신고를 장려하기 위한 동기 유발책도 있다. 정부는 1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 즉각 시행하기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2억원인 신고포상금 상한은 폐지하고, 부정수급으로 반환을 명령한 금액의 30%를 신고자에게 신고포상금으로 지급한다. 또 부정수급 액수가 소액이라도, ‘신고 활성화’를 위해 500만원 범위 안에서 최소지급액을 정해 지급하기로 했다. 부정수급자들은 서로 이득을 위해 공모를 하니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보조금 부정수급을 잡아내려는 노력도 있다. 1월 15일 국토교통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카드결제명세서와 화물차 이동 경로 등을 분석하고 유가보조금의 부정수급을 적발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 ‘일일이 잡아내기 어려워, 시스템 정비해야’

이원희 한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도덕적 해이가 보조금 부정수입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조금은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정해져 있는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수급자가 자격이 되는지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융자의 경우에는 빌리면 갚아야 하는데 보조금의 경우는 받고 상환할 의무가 없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막으려면 수급자들의 도덕성 회복이 중요한데 이를 자발성에 맡길 수는 없다.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며 “현재는 ‘e-나라도움시스템’이라는 시스템이 있고 보조금의 사용 내역을 입력하는 등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나라도움시스템은 2017년 7월 개시된 서비스로, 국고보조금을 받기 위한 사람들을 안내하며 동시에 중복과 부정수급을 방지하고 업무 효율화 및 정보공개도 진행한다.

e-나라도움시스템을 이용하면 부정수급을 잡아낼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1일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e-나라도움 서비스 시스템이 구축된 이후 시스템상으로 적발된 보조금 부정수급액은 5억6900만원이며 건수는 64건이다.

조 의원은 "보조금의 부정수급은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국고보조사업 효과까지 반감시킨다"며 "모니터링 단계에서 사전에 보조금 부정수급을 차단하고 예방하기 위해 'e-나라도움' 시스템의 적극적인 활용과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