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하늘길 막히고 소비 위축...정유·화학업계 ‘곡소리’

2020-02-27 00:01
정유사, 국적항공사 8곳 한중노선 등 감축에 항공유 수요 급감
화학업계, 이동금지에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제품 소비 위축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정유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정유업계는 최근 수요 감소가 이어지고 재고가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로 인해 비행기 운항이 잇따라 중단·축소되며 항공유 수요마저 줄어든 상황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는 지난해 정제마진 폭락을 견딘 터라 올해는 실적 반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유 등 제품 수요가 줄면서 때아닌 보릿고개를 맞아야 할 상황이다.
 

에쓰오일 울산 온산공장 야경 [사진=에쓰오일 제공]



실제 2월 평균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3.2달러로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4달러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휘발유·경유·나프타·항공유 등) 가격에서 비용(원유가격+정제비용+운임비 등)을 제외한 값이다. 정제마진 지표가 높을수록 정유사들의 실적이 동반 상승한다.

앞서 정제마진은 2018년 2월 배럴당 7.4달러에서 지난해 12월 –0.1달러로 2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최악이었다. 그나마 이달 들어 크게 개선됐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인 4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유 가격도 내림세다. 일일 싱가포르 크랙 기준 수송용 경유 가격은 1월 평균 배럴당 76.50달러에서 2월 평균 67.27달러로, 같은 기간 산업용 경유 가격은 배럴당 76.05달러에서 65.98달러로 10달러가량 하락했다.

특히 항공업계의 수요 위축에 정유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내 국적 항공사 8곳은 지난달 23일 중국 우한 봉쇄 이후 이달 초 한·중 운항 노선 편수를 30%가량 줄였다. 2월 둘째 주에는 기존 대비 70% 노선을 감축했다. 외국 항공사들마저 한국 경유 항공편을 속속 중단하고 있다. 여기다 국내 확진자가 밀집된 대구·경북을 오가는 국내선 하늘길도 막히고 있다. 이 때문에 항공유 가격은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항공유를 시작으로 석유제품의 세계적 수요 부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달 석유시장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올해 1분기 석유 수요가 지난해 동기 대비 43만5000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0여년 전 글로벌 경제위기로 수요가 떨어진 이후 첫 분기 수요 감소다. 사스(SARS)가 창궐했던 2003년 국내 정유사들의 항공유 수출 규모가 전년 대비 34% 줄어든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정제마진이 회복세라 실적 개선을 기대했는데 코로나19 악재로 인해 올해도 팔면 팔수록 손해인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단 항공유 수요 감소뿐만 아니라 에틸렌·폴리에틸렌·파라자일렌 등 석유화학제품 생산 수요가 줄면서 그에 따른 화학업계 실적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중국 우한을 비롯해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대구·경북 지역 등에서는 재택근무, 외출금지가 일상화되면서 각종 플라스틱 제품의 소비자 수요가 크게 줄었다. 관련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포장재와 외장재 등 산업용 석유화학 제품 수요도 급감하고 있다. 가동률을 당장 줄일 수 없는 업체로선 재고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가 계속 번지면 석유화학제품 재고 증가는 지속될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 종료 후에도 일정기간 재고 해소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실적 악화에 코로나19 악재가 더해지면서 주요 정유·화학사의 신용등급도 잇따라 강등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이달 초 SK이노베이션과 SK종합화학의 신용등급을 Baa1에서 Baa2로 한 단계씩 내렸다. LG화학의 신용등급도 A3에서 Baa1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정유와 석유화학 제품 스프레드(제품과 원료가격 차이) 약세가 장기화되면서 지속적인 부진과 코로나19에 따른 중국 경기 하강이 신용등급 조정의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