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칼럼] 질병재난 극복을 위한 사회적 제언
2020-02-25 10:29
지난 2월 19일부터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졌다. 한국의 방역체계는 그 이전까지 효과적으로 작동하면서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간주되는 듯했으나 갑자기 대구 신천지교회와 청도 대남병원에서 환자들이 대거 확인되면서 심각한 단계로 돌변한 것이다. 이 교회의 폐쇄적 밀집공간이 감염의 핵심 클러스터가 되었으며, 이들의 전국 조직망이 확산의 통로가 되었다. 또한 이들과의 연결 여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원이 사망자 발생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단과 부산 온천교회 등이 새로운 클러스터로 나타나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1차 방역의 성공, 2차 방역의 실패라는 극적인 반전을 보면서 우리 사회 안의 어두운 구석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긍지로 삼았던 한국사회의 발전모델의 그림자들을 직시해야 한다는 명령이기도 하다. 한 사회가 발전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통칭하여 근대화라고 한다면, 그것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정치 민주화와 사회 합리화의 균형있는 발전일진대, 과연 그러했는가라는 질문이 따끔하게 다가온다.
우리 국민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생사의 기로에 서는 경험을 하였고, 이후 생존을 위한 극심한 투쟁에 내몰렸다. 그에 힘입어 1960~70년대에 특유의 돌진적 산업화를 이루었고, 1980~90년대에는 극적인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회 합리화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 합리적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생존에 대한 불안이 그만큼 크고, 또 이들이 늘 종교적 자유나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했던 위험사회의 징후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지만,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종말론적 맹신과 과잉 종교화, 근본주의적 신념의 정치화, 가족주의의 사회화와 공공적 책임윤리의 실종 등은 우리 사회의 저변에 남아 있는 전쟁과 권위주의의 오래된 유산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이런 비판적 성찰을 반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현재 더 급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방역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의료인들에 대한 격려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분간 지역사회 감염이 늘어나고, 중증 환자들이 증가할 것이며, 사망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문제를 유발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나 혐오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얻은 교훈은 그런 현상이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불안하고 힘든 사람들은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격리되어 있는 환자들은 누구보다도 치료 가능성을 묻고 있으며, 그에 대한 답이 없을 때 공포를 느끼기 쉽다. 이들에게는 가족이나 사회가 자신을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태가 호전되더라고 이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이들에게 치료에 대한 확신을 주고, 항상 가족이나 이웃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태가 대규모화되고 장기화되면, 많은 의료인들이 소진되기 쉽다. 이들은 때때로 치료현장에서 감염되고 희생되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응원과 격려가 절대로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의료 자원의 효율적 배치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의료 기관은 감염 의심자들을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진단 중심 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이행하고, 감염자와의 접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이동을 삼가고 정치적·종교적 집회를 최소화하며 가능한 한 노동조건을 완화하여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격려와 지지는 이번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는 선결조건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낙인찍기는 그것이 인종주의이건 지방주의이건 삼가야 할 최소한의 시민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태가 진정되면 정부는 반드시 동아시아 차원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방역-보건체계를 만드는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