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을 묻다! (일문일답)

2020-02-28 18:00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최다 작품상(비영어권 최초/역대 세 번째 동시 수상), 감독상, 국제 장편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지난 1919년 10월27일, 한국의 최초 영화인 '의리적 구토(김도산 감독)' 개봉 후 한국 영화 역사 100년을 넘어 할리우드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으며 또 다른 기록을 세우며, 그야말로 ‘봉준호 신드롬’을 일으켰다.

봉준호의 성공 비결로 영화 속에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을 담고 있는 점이 꼽힌다. 23번째 제작 영화이자 장편 영화로는 7번째 영화인 '기생충'은 역대 그의 작품에 녹아 있는 모든 장르와 철학이 총집합 되어 있다. '괴물'로 시작된 판타지 장르에 대한 감각과 '설국열차', '옥자' 등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보여준 양극화, 신자유주의의 비판적 서사가 적절하게 섞여 있다.

이와 함께 반지하라는 한국적이고 특수한 공간과 빈부격차를 유머와 함께 날 선 시선으로 그려내 세계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가장 한국적이고 보편적인 감성을 기생충을 통해 전세계에 전한 그는 이를 통해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반열에 올랐다. 이와 동시에 전 세계에서 작품성과 상업성을 인정받으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지난 19일 소공동 웨스턴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영화 '기생충'의 여정을 마친 봉준호 감독]

Q. 수상 소감이 궁금합니다.
A. 한국에서 '기생충'의 제작 발표회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렇게 이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갖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이곳으로 다시 오게 돼서 기쁘고 기분이 묘합니다(웃음).

Q. 오스카 시상식이 끝난 후 돌아오는 한국행 비행기에서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A. 육체적으로 정신적 방전이 된 상태라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간신히 기내식을 먹고 바로 뻗었어요. 착륙 방송을 듣고서야 눈이 떠졌는데 생각을 정리하면서 멋진 시적인 문구라도 좀 남겼어야 했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Q. 오스카 캠페인 진행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모든 영화들이 '오스카 캠페인'을 열심히 해요. 캠페인 당시 함께 한 북미 배급사인 ‘네온’은 신생 중소 배급사였습니다. 거대 스튜디오나 넷플릭스에 비해 못 미치는 예산이었기에 열정으로 그 부족한 예산을 메꿨는데 마치 '게릴라전' 같았어요.

저와 송강호 선배님이 코피를 흘릴 일들이 많았고, 강호 선배님은 실제로 코피를 흘린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소화한 인터뷰만 600차례 이상이고 관객과의 대화는 100회 이상이었으니까요. 또 경쟁작들처럼 LA 시내 광고판이나 신문 전면 광고 같은 물량 공세가 아닌 인터넷상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활용했어요. 이 같은 아이디어와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E&A) 그리고 배우들이 똘똘 뭉쳐 팀워크로 물량의 열세를 커버하기 위해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Q. 오스카 캠페인을 끝내고 나니 어떤가요?
A. 처음에는 저뿐 아니라 노아 바움백, 토드 필립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등 감독들이 창작 일선에서 벗어나 시간을 들여 이런 캠페인을 하고 스튜디오에서는 많은 예산을 쓰는 게 낯설고 이상하게 보였어요. 그런데 캠페인을 함께 하면서 이런 식으로 작품들을 깊이 있고 밀도 있게 검증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영화에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고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5-6개월간 진지하고 세밀하게 점검하는 게 보이더군요. 이것이 아카데미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한 외신 인터뷰에서 "오스카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그저 로컬(지역영화상)일 뿐"이라고 표현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오스카 캠페인 전략상 '도발'을 위해 준비한 말인가요?
A. 저는 오스카 캠페인이 처음인데 도발씩이나 했겠어요(웃음). 영화제 성격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칸 영화제 등은 국제 영화제고,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이 아니겠나 라는 식으로 비교를 하다가 나온 말이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미국 젊은이들이 SNS인 트위터에 많이 올렸나 봐요. 전략이 있어서 얘기한 게 아니라 대화 중 자연스럽게 나온 말입니다.

Q. 전작인 '괴물'이나 '설국열차' 모두 '기생충'처럼 빈부 격차를 다루고 있는데 유독 '기생충'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괴물'과 '설국열차'는 각각 한강변과 기차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SF적 요소가 있어요. 반면 '기생충'은 우리 동시대 이야기이자, 우리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에 기반을 둔 영화라는 점이 호응을 얻은 게 아닌가 짐작됩니다. 또한, 배우들의 앙상블이 스토리를 실감나게 표현한 덕분이기도 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영화 '기생충' 배우들 ]



Q.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불균형을 어둡게 그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객들의 지지를 얻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자주 들었던 질문이에요. 제가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은 아니지만, 스토리의 본질을 외면하는 건 싫었어요. '기생충'이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스러운 면이 있지만 빈부 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면에 있어서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을 1㎜라도 피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솔직하게 그리려는 게 대중적 측면에서 위험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엔딩까지 정면 돌파해야 하는 영화였죠. 관객들이 불편해하고 싫어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두려워서 달콤한 장식을 하면서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1000만명의 관객 분들이 호흡을 해줬고, 프랑스, 베트남, 일본, 영국에서도 오스카란 후광 없이 큰 호응을 얻고 있어요. 이미 북미에서도 외국어 영화사상 2500만 달러라는 수익을 거둬들이며 역대급 기록을 써나가고 있습니다. 수상 여부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도 이 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은 가장 큰 기쁨이고 남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여러 나라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시간적 여유를 두고 분석해야겠지만 제 몫은 아닌 것 같아요. 이 부분은 평론가와 관객 분들이 평가하고 자리매김해 줄 것 같아요. 저는 이미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일만 남았어요. 20년간을 늘 그래왔듯이 제 길을 가는 게 영화 산업을 위한 길 같습니다.

Q. 오랫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지치지 않으시나요?
A. 사실 2017년 영화 '옥자'가 끝나고 번아웃 판정을 받았어요. 그러나 '기생충'이 찍고 싶어서 없는 기세를 영혼까지 긁어모아서 촬영 기간보다 더 긴 오스카 캠페인을 다 소화했죠. 이렇게 얘기하다보니 “아 끝이구나“라는 실감이 나요. 2015년 초 처음 '기생충' 얘기가 나왔어요. 참 오랜 세월동안 '기생충'과 함께 해왔는데, 행복한 결말을 맺어서 행복합니다.

오늘(19일) 아침 마틴 스코세지 감독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너무 영광이었어요.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수고했으니 쉬라"고 하시면서 다만 "조금만 쉬어라, 나 뿐 아니라 다들 차기작을 기대하고 있다"고 쓰셨거든요. 편지를 받고 너무 감사하고 기뻤어요.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와서 좀 쉴까도 생각했는데 스코세지 감독님이 쉬지 말라고 하셔서(웃음).

Q. 영어 자막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요?
A. 평소대로 열심히 했어요. 달시파켓과 영화 '플란다스의 개'부터 모든 작품을 감수했었는데 서로 일해 온 패턴이 있는데 달시파켓은 한국말을 잘하는 미국인이고, 그의 아내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이에요. 이 두 분의 콤비네이션이 훌륭해요. 저는 대사의 맥락과 숨겨진 의미와 뉘앙스 같은 부분을 최대한 세밀하게 짚어줬어요.

예를 들어 영화에 등장하는 '짜파구리'처럼 번역이 불가능한 경우 대사의 맥락을 알려주거나 영화 속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이 남매지만 선후배인 척 소개를 받는 말의 뉘앙스 같은 경우들이 있어요. 늘 달시파켓 부부는 최고의 솔루션을 가져왔어요. '살인의 추억'의 대사였던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인류최대의 난제를 해결하신 분이 아닌가 싶어요.

Q. 해외에서의 출연 배우들에 대한 반응이 궁금합니다.
A. 이정은 배우가 맡은 가정부 역할이 매우 인기였어요. 해외에서 "그녀가 늦은 밤 벨을 누르는 순간 영화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큰 화제였거든요. 시상식장에 들어가다가 톰 행크스 부부가 송강호 배우, 이정은 배우 등을 보고 영화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LA길을 가다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만났는데 그저께 영화를 봤다면서 20여 분간 영화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이중 10여 분은 조여정 배우가 맡은 ‘부잣집 아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연기와 캐릭터가 인상적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호응들이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영화 부문 앙상블상 수상으로 입증된 것 같아요. 비영어 영화로는 최초로 수상한 건데 미국 배우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아카데미 투표에서도 '작품상'을 받게 된 1등 공헌은 이 영화에서 멋진 앙상블을 보여준 우리 배우들과 미국 배우 협회 회원들이에요.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스틸 컷 ]

Q. '기생충'이 미국 드라마로도 제작되는데 직접 제작에 참여하시나요?
A. 제가 프로듀서로 참여합니다. '빅쇼트', '바이스'의 아담 맥케이 감독님이 작가로서 참여해요. 현재 이야기 방향과 구조를 논의하고 있는 초기 단계인데 출연진으로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과 마크 러팔로의 언급도 나왔는데, 전혀 공식적인 사항은 아닙니다.

동시대 빈부격차에 대한 스토리를 오리지널 영화와 마찬가지로 블랙코미디와 범죄드라마 형식으로 깊이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HBO '체르노빌'처럼 5~6편의 에피소드로 리미티드 시리즈로 진행되는데 완성도가 높고 밀도 높은 TV시리즈로 나올 것 같습니다. HBO측과 첫 발을 순조롭게 내딛고 있어요.

올해 5월 '설국열차'가 시리즈로 방영을 앞두고 있는데, 2015년 경부터 준비한 이 드라마가 5년여 만에 방영된다는 걸 감안하면 방영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여 집니다.

Q. 두 편의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에도 '봉준호 세계관'이 투영되나요?
A. 몇 년 전부터 준비하던 작품들이에요. '기생충'에 대한 반응과는 관련이 없어요. 접근 방식이 다르다거나 특별한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기생충' 역시 평소 해오던 대로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찍은 건데 예기치 않은 결과를 얻었죠. 평소 완성도 있는 영화를 정성스레 만들고 싶었던 것 뿐이었어요. 이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예정입니다.

Q. 국내에서 흑백판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매력이 있나요?
A. 영화 '마더'도 흑백 버전으로 선보였는데, 고전 영화나 옛 클래식 영화들에 대한 동경, 소위 로망을 갖고 있었어요. 세상 모든 영화가 흑백이던 시기가 있었잖아요. 만약 제가 1930년대를 살고 있다면 어떤 느낌으로 영화를 찍었을까 하는 영화적인 호기심이 있어요. 저뿐 아니라 영화 팬들이라면 그런 호기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 흑백 버전을 상영했었는데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컬러가 사라진 것 외에는 다 똑같은데 이런저런 다양한 느낌이 들어요. 영화제에서 어떤 관객분이 "흑백으로 보니 화면에서 냄새가 더 나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무슨 말일까, 궁금했어요. 흑백버전에서는 배우들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기를 훨씬 많이 느낄 수 있고, 알록달록한 색상을 빼니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 흑백판 포스터]

Q. 동상 제작 및 생가 보존에 대한 이야기도 거론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동상과 생가 기사를 봤는데(웃음), 그런 얘기는 제가 죽은 후에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런 기사들을 넘겼어요. 그걸 가지고 제가 뭐 딱히 할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나요?
A. 작년 5월 칸 영화제부터 올해 오스카까지 많은 사건들이 있었어요. 물론 경사들인데, 영화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겠지만 영화 자체로 많이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영화 '기생충'에는 배우들의 연기와 촬영 스탭들이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낸 장면 하나 하나, 그리고 그 장면들마다 제 고민들이 녹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