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소설가 김진명 작가의 넘쳐나는 '기록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2020-02-18 10:23
기록의 시대, 기술이 점점 발전할수록 기록의 중요성은 깊어져만 간다.
그럼에도 종이 책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출간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글을 쓰는 작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갈까? 우리 시대에 가장 사랑 받는 소설가 김진명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나요?
A.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을 한 적은 없었고요. 따라서 습작을 한 적도 없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습작 없이 쓴 첫 소설입니다.
Q. 계획을 하지 않고 소설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A. 저는 그게 자유롭다고 생각을 합니다. 계획을 짜놓고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뼈대를 만들어 놓고 살을 붙이는 거니까 아무래도 쉬울 수 있죠. 저는 머릿속에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써야 되겠다 라는 확고한 주제의식을 갖고 써내려가는 편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자유롭고 편해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Q. 김진명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을 쓴다'는 건 무엇인가요?
거짓말을 하지만 그 거짓말을 통해서 사실의 나열만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진짜 진실을 알아내라는 것이죠. 그래서 제게 있어 소설을 쓰는 의미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진짜 진실을 찾아내는 한 수단으로 소설을 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역사에 대한 소설을 많이 쓰시는데 역사는 사실적으로 써야 하고 소설의 경우는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건데 이 두 개를 어떻게 조절해서 쓰시나요?
A. 역사가 무엇이냐를 먼저 생각해봐야 되는데 역사는 지나간 일들을 크기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주관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역사를 쓰는 사람이나 집단의 시각이 들어가 있는 게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실체적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역사는 늘 힘이 있는 사람이 쓰게 되고 힘이 없는 사람은 무력하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록됐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팩트가 아닌 경우도 많죠.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강한 나라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확고한 시각이나 가치관을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역사라는 게 단순히 사실의 크기가 아니라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 하는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허구라는 장치를 동원하긴 하지만 우리 시각에서 역사를 어떻게 보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봅니다.
Q. 디지털 시대에 직지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줄까요?
A. 직지는 약 700~800년 전의 유물이죠. 초기에 책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 낸 금속활자본이니까요. 직지라는 사물, 수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직지 안에 들어가 있는 정신을 봐야 됩니다. 과거에는 책이나 지식이나 글자나 이런 것들은 힘이 강하고 가진 사람들만이 소유하던 것이거든요. 그래서 역사는 지배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었죠.
동물에게는 이빨이나 발톱이 큰 힘이고 인간은 지식과 문자가 큰 힘이거든요. 일부 세력에게 독점되던 그 힘이 직지라는 금속활자를 통해서 전 인류에게 전파가 된 거예요. 직지의 정신은 인류가 동행하자, 특히 약자와 동행하자는 위대한 정신이 숨어 있기 때문에 그게 디지털 시대뿐만 아니라 더욱 훨씬 발달된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신은 계속 간직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A. 제가 그렇게 조사를 많이 하지는 않는데, 되게 조사를 많이 하는 걸로 알려져 있더군요. 요즘은 워낙 지식 전파 수단이 많이 발달되어 있어서 생각만큼 많이 하는 편은 아닙니다. 아주 고급 지식은 인터넷에서 못 찾는 경우가 많고 오류가 많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되는 상황이긴 합니다.
Q. 36살 때 첫 소설을 썼는데 소설을 쓰기 전에는 어떠한 일을 하셨나요?
A. 소설을 쓰기 전에는 크게 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저희 집안이 사업가 집안이었는데 그 당시에 여러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사업이 잘 안됐어요. 가정의 생계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거 같습니다.
Q.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요?
A. 쉽지 않은 일인데... 일단은 사람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흔들어주는 그런 글이 역시 작가의 혼신의 힘이 들어간 글이 좋은 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최근 그동안 역사에는 없었던 이례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세상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봐야 될까요?
A. 사람이 자기 시각에 따라 보는 게 다르고 자기 이익에 따라 주장하는 게 다르기 마련인데 좋은 사회라는 건 나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남의 얘기도 들어주는 사회이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사회가 좋아지고 국민들 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성급하게 주장하기보다는 관찰하고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역지사지로 “저 사람이 저렇게 주장하는 건 무조건 틀리다”, “내가 맞다” 이것보다는 “저 사람이 왜 저런 주장을 할까”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Q. 재능과 열정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A. 재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제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재능보다 중요한 건 역시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해서 토해낼 내면의 뭔가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그게 있는 한 누구든 글을 쓸 수 있고 글솜씨라던지 여러 다른 요소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열정이 강하면 누구든 글을 쓸 수 있는데 나만의 엉뚱한 열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고 공감할 수 있는 열정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 열정은 아주 오랫동안 무르익은 사상, 철학, 가치관 등이 깊이 들어 있는 열정이어야 하고 그게 작가의 열정이라고 꼽을 수 있겠네요.
Q. 데뷔작부터 밀리언셀러, 부유한 작가에 속하는데 비법이 있나요?
A. 사회라는 게 대단히 만만해보여도 굉장히 어려운 게 사회이고 독자들이 무조건 따라주는 거 같아도 굉장히 냉혹한 게 독자이기 때문에 결국 그 모든 기대를 만족시켜나가는 것은 뜨거운 작가의 열정 밖에 없거든요. 앞서 말했듯이 나만의 열정이 아닌, 세상 모든 것을 녹여놓은 열정이 비결이라고 하면 비결이 될 수 있겠네요.
Q. 한편으로는 극과 극인 작가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한쪽에서는 엄청 좋아하거나 한쪽에서는 엄청 싫어하거나 그러는데 중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시나요?
A. 글쎄요. 저는 남의 평가는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무슨 노력을 하지는 않죠. 아마 제가 첫 작품을 냈을 때부터 형성되어 온 관례가 있어요. 기존의 문단의 규칙에 맞지 않는 밖에서 엉뚱하게 들어온 작가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기존 문단의 시각에서는 조금 다르지 않느냐에서부터 확산됐다고 보고요.
다만 한편으로는 순수하게 작품만으로 평가하지 않느냐 라고도 생각합니다. 물론 작품의 독자들의 반응은 획일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늘 함께 나오니까 좋아하는 층이 있고 싫어하는 층이 있고는 당연하고 그래서 특별히 개선을 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Q.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통해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A. 우리 사회가 너무 돈을 중시하는 풍조인 거 같아요. 인간의 삶이든, 사회의 구조든 돈이 물론 중요하지만 힘이 꼭 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힘도 있어요. 인간 내면의 힘도 있고 문화의 힘도 있고 사회에서의 가치관의 힘도 있기 때문에 저의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이 다양한 힘에 대해 근원의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입니다.
A. 변화는 필연적이고요. 인간이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도 많이 생길 거예요. 예를 들면 인공지능(AI)이라든지 과거에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받아들이고 따를 수밖에 없는 장치가 되게 많이 생길 거예요. 그런데 세상 모든 걸 인간 위주에서만 바라보면 안 된다고 봐요. 인간의 역사는 700만년 된 것이거든요. 지구의 역사는 46억년이고요. 46억년이라는 시간 동안 애초에 미세한 먼지보다도 작은 그런 미생물이 점점 발달하고 계속 진화를 거듭해서 무수한 생명이 모여서 지능이 얻어진 것이거든요.
과거에는 이걸 지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성은 인간의 시각에서만 본거고 어마어마한 지능을 얻었기 때문에 그걸 생명체로의 인간으로만 봐버리면 그건 잘못된 시각일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우리가 지능에 대해서 인식을 하는 게 중요해요. 46억년의 결과물이고 이것이 꼭 인체 속에 남지 않더라도 쇳덩어리 속에 담길 수도 있고 또는 공간 속에 담길 수도 있고 이러한 굉장히 폭 넓은 시각을 갖고 우리가 지능을 키워오고 발전 시켜왔다는 것에 대해 인간이라는 이기적 시각에 벗어나서 좀 더 광범위하게 지능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태로도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가수는 팬들의 인기와 노래로 먹고 살아가고 예술가는 작품의 아이디어로 먹고 살아가는데 소설가는 무엇으로 먹고 살아가나요?
A. 요즘에는 소설로 먹고 살기 참 힘들죠. 먹고 사는 소설가가 몇 안 되는데 나의 경우는 끊임없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세우려고 하는 시도라든지, 또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는 시도가 독자들에게 어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김진명 작가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소설을 쓰시나요?
A. 물론 모든 작가의 바람이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독자와 사회가 폭넓게 공유하면서 잘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으로 쓴다고 볼 수 있겠죠.
Q. 대학시절 독서습관이 지금의 김진명 작가를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공부하랴, 알바하랴 독서할 시간이 없는데 시간을 쪼개서 독서를 하는 방법 밖에 없을까요?
A. 독서라는 게 지식을 얻는 것보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방법으로서의 독서가 중요한데 이 세상의 모든 행위들이 모두 가치적으로 평가가 되거든요. 그리고 뭘 하던가 그 분야의 최고 대가들이 있고 대가들이 써내는 게 책이기 때문에 책은 아주 필수적이에요.
그래서 좀 희생을 치루더라도 독서를 하겠다는 마인드를 갖는 게 아주 중요하고 독서 외에도 생각의 힘을 키우는 다른 방법들이 있을 거예요. 그건 자신들이 노력을 해서 찾으면 아주 좋고 그게 잘 안 찾아지면 다른 걸 희생하더라도 독서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Q.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A. 나의 경우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 우리가 뭔가 조금 모자라거나 뭐가 잘못되어 있거나 한 걸 보면 그쪽 부분은 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쓰는 편이에요.
Q. 100세 시대에 하나의 직업만 가지고 평생 살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김진명 작가께서는 소설 외에 먼 훗날 소설가에서 은퇴를 한 뒤에나 소설가를 하면서 함께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저는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로서만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하는 편인가요?
A. 저는 술을 마셔요.(웃음) 술을 마신다는 게 하나의 몸부림을 치는 거니까 자꾸 몸부림을 치다 보면 없어지겠죠.
Q. 독서량은 줄지만 책방이 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글쎄요... 서점 하시는 분들이 애를 많이 쓰시는 게 생존 전략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시대 자체가 글에서 그림으로 많이 넘어가기 때문에 서점 하시는 분들이 그런 부분을 잘 흡수해서 융화를 시키고 있을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인간이란 무엇이냐,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생명체는 다 본능에 따라서 살게 되면 인간은 그 본능의 영역을 넘어선 비(非)본능의 세계를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이기심에서 벗어나서 이타심, 내가 하는 게 힘들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희생도 해야 되지만 이걸 함으로써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고 좋아하고 안전해진다면 그걸 하겠다는 게 인간이거든요. 그런 행위들이 계속 이어져서 우리 인류가 발전 되어 온 거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걸 수 있는 거죠.
역사라는 건 이러한 인간 정신이 계속 고난과 대결하면서 펼쳐져 온 하나의 과정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작용을 통해서 역사를 기록하고 위대한 인간정신을 구현하는 분들인 것이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고 인간이라는 가능성을 실현한다는 의미 부여를 스스로에게 하면서 활기차게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