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NOW] '키플레이어'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2020-02-05 12:00
호텔신라, 매출 5조 돌파ㆍ사상 최대 실적…면세점 사업 10년 만에 글로벌 3위로 올려놔
연초부터 신종코로나 복병…위기를 기회로 삼는 특유의 추진력 주목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사진=호텔신라 제공]


[데일리동방]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게는 2020년이 매우 의미있는 한해가 될 듯 싶다.

올해는 이 사장이 대표이사 취임 10년째를 맞이하는 동시에 50대 첫 줄에 들어선 해다. 그리고 기나긴 이혼소송을 매듭짓고 홀가분하게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악재라는 복병을 만났다. 기회와 위기 때마다 승부수를 띄우며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했던 이 사장이 이번에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사장이 걸어온 지난 10년은 '도전과 극복을 통한 새로운 도약'으로 단언할 수 있다. 이는 지난 2013년 호텔신라 경영방침으로 내건 슬로건이기도 하다.

그동안 제주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 획득,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DF1 구역 확보, 김포공항 면세점 사업권 획득, 한옥호텔 건립 등 굵직한 사업들을 잇따라 성공시켰다. 면세사업도 불과 10년 만에 글로벌 3위까지 끌어올리는 등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그 결과 호텔신라는 지난해 면세점 부문에서만 매출 5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호텔신라가 지난달 31일 공시한 매출액은 5조7173억원, 영업이익 2959억원이다. 전년 대비 각각 21.3%, 41.5% 증가한 수치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다.

그는 숱한 난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끈기 있게 밀어부쳤다. 업계에서는 "(이 사장의) 불굴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엎어졌을 사업들"이라고 평가했다.

이 사장은 2012년 포브스 선정 ‘아시아의 주목해야 할 여성기업인 15명에 선정, 2016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아시아판'이 발표한 '아시아 파워여성 기업인 50인'에 선정, 지난해에는 ‘2019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87위에 올랐다.
 

호텔신라 한옥호텔 조감도. [자료=호텔신라 제공]


'책임경영'도 강점이다.

이 사장은 지난 2015년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 선정을 놓고 프레젠테이션 심사가 진행된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을 직접 방문했다. 그는 준비한 떡을 실무진에게 전네며 “면세점사업 선정이 잘되면 다 여러분(임직원) 덕이고 떨어지면 내 탓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고 한다.

또한 이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기 전까지 삼성그룹 총수 일가 가운데 유일한 등기이사로 연봉공개의 대상에 올라있었다.

그는 2011년 호텔신라 대표이사에 선임되고 2012년에서 2018년까지 7년 연속으로 국내 창업주 일가로는 드물게 정기 주주총회에서 직접 의사봉을 잡았다. 이는 여러 재계 오너가 등기이사를 맡지 않는 경향과 대조적으로 주주들에게는 신뢰로 이어졌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확산하던 2015년에는 확진 환자가 제주신라호텔에 묵은 사실이 알려지자 직접 제주도로 내려갔다. 이 사장은 투숙객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고 하루 3억원의 손해를 떠 안으면서도 호텔 폐쇄 결정을 내리고, 숙박료 전액 환불과 항공료를 보상했다.

자연재해로 제주발 항공기가 결항될 경우 기존 투숙객에게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이른바 '뜻밖의 행운'이라 불리는 프로모션도 운영해 '역시 배포가 크다'는 호평을 얻기도 했다.

이 밖에도 신라호텔 한복 손님 거부 논란에 직접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를 직접 찾아가 사과한 일, 딱한 처지에 놓인 제주도 고기국수집을 직접 찾아 메뉴개발과 주방 설비·외관 개선을 도와준 일, 그리고 호텔 문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 택시기사에게 오히려 선행을 베푼 일 등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에피소드는 수도 없이 많다.
 

서울 용산 신라아이파크 면세점. [사진=호텔신라 제공]


최근 이 사장은 해외 면세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마카오 국제공항 면세사업권을 확보해 5년 동안 단독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그동안 아시아권에서 벗어나 지난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시장에도 진출했다.

이 사장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국내 면세점 출혈 경쟁이 심해져서다. 국내 면세 주요 고객층이 중국 보따리상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판매사 등으로 바뀌면서 시장구조도 B2C(기업과 개인 간 거래)에서 B2B(기업 간 거래)로 바뀐 탓이다.

중국 보따리상을 고객으로 끌어오기 위해 롯데·신라·신세계면세점은 대량구매 할인, 여행사나 가이드 알선수수료 상승 등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 사장은 2020년 인천국제공항 제4기 사업자 선정에서 기존 사업권을 지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2020년 8월 계약 기간이 끝나는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사업권이 3곳(DF2·DF3·DF6)에 이르고 있다.

호텔사업 확대를 위해서도 호텔신라의 새로운 브랜드를 내걸고 해외 직접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새 돌파구로 삼은 것이다.

2020년 상반기 베트남 다낭에 ‘신라모노그램’, 2021년 미국 실리콘밸리 산호세 지역에 프리미엄 비즈니스호텔 개장 등 향후 동남아시아·미국·중국 등 해외 10여 곳에 진출 계획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부진 사장을 가리켜 '최적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삼성 키플레이어(key player)'라고 부른다. 특히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적인 문제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빈자리를 대신할 1순위로 이부진 사장이 꼽히기도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건희 회장 장녀인 이부진 사장이 (이재용 부회장 부재 시)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이 자연스럽다"라며 "일부에서는 사실상 이부진 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올해 삼성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속에서 '한다면 한다'는 뚝심 승부사, 이부진 사장 광폭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