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분석]주목되는 윤석열 총장의 상황 돌파력

2020-01-31 17:54
'울산시장 선거 개입' 연루자 13명 기소 '대검 회의'로 결정
법무부에 공격 빌미 주지 않으면서 자기 소신 관철시켜

윤석열 검찰총장은 작년 9월 조국 사태 이후 여러 차례 위기에 처했다. 정권과 그 지지세력의 압박과 공세에 부딪쳤다. 그러나 그때마다 상황에 적절한 대처 능력을 발휘해 위기를 돌파해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과 함께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그의 능력이 갈수록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윤 총장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연루된 민정수석실 전현직 비서관 등 13명의 기소 방침을 지난 29일 대검 회의를 열어 결정했다. 회의에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이성윤 지검장, 신봉수 2차장,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 대검에서 구본선 차장, 배용원 공공수사부장, 김성훈 공공수사1과장 등 9~10명이 참석했다. 김태은 부장은 이번 사건 수사를 담당했고, 신봉수 차장은 수사팀을 지휘해 왔다. 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1차 대학살 인사’ 때 이성윤 지검장과 함께 새로 부임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수사 기록을 토대로 기소 여부를 논의했다. 수사팀은 “수집된 증거에 비춰 기소가 마땅하고, 4월 총선이 임박한 만큼 신속히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성윤 지검장을 제외한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수사팀 의견에 동의했다. 이성윤 지검장만 유일하게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며 기소를 반대했다. 윤 총장은 회의 내용에 따라 기소 방침을 확정했다. 대검은 참석자 발언 내용을 회의록에 기록했다. 이성윤 지검장의 반대 의견은 ‘이견도 있었다’는 취지로 회의록에 남겼다.

윤 총장은 대검 회의를 열어 기소를 결정함으로써 ‘조국 아들 허위 인턴서 증명서 발급 사건’의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 때와 같은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최 비서관의 경우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두 세 차례나 이성윤 지검장에게 기소해야 한다고 보고하고 결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성윤 지검장은 결재를 미뤘다. 최 비서관을 대면 조사하지도 않고 기소하는 것은 수사 절차 상 문제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이 지검장은 윤석열 총장이 최 비서관을 기소하라고 세 번이나 지시했는데도 이마저 거부했다. 결국 윤 총장은 송경호 서울중앙지검3차장에게 최 비서관 기소를 대신 결재 하도록 지시했고 이에 따라 수사팀은 최 비서관을 기소했다.

그러자 법무부는 송경호 차장이 이성윤 지검장 결재를 받지 않고 기소한 것은 “적법 절차를 위반한 날치기 기소”라고 주장하며 수사팀 감찰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청법 규정에 따르면 검찰총장은 전국 검사를 지휘 감독할 수 있다. 따라서 윤 총장이 송 차장에게 기소 결재를 지시하고 송 차장이 이 지시에 따른 것은 법 위반이 아니다. 오히려 윤 총장 지시를 거부한 이성윤 지검장이 감찰 대상이 돼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수사팀 감찰 방침을 밝히며 윤 총장을 압박한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 28일에는 갑자기 전국 검찰청에 공문을 보내 “중요 사안 처리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부장회의 등 내외부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윤 총장이 수사를 지휘해온 현 정권 비리 의혹 관련자들의 기소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라는 의심을 살 수 있는 지시였다. 

윤 총장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연루자 기소를 대검 회의를 통해 결정한 것은 이런 일련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이번에도 이성윤 지검장을 제끼고 서울중앙지검 차장에게 기소 결재를 지시해 관련자들을 기소하면 법무부는 물론 그 뒤의 청와대와 정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지검장에게 맡기면 기소를 미루고 사건을 뭉갤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법무부는 ‘내외부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와의 마찰을 피하면서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들을 기소하려면 최강욱 비서관 기소 때와는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윤 총장은 대검 회의를 그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다. 검찰 주요 간부와 수사팀이 참석하는 대검 회의를 통해 기소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성윤 지검장을 제끼고 했다’는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또 ‘내외부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라’는 법무부 지시도 반영한 모양새도 취했다.

청와대 관계자와 민주당은 최강욱 비서관 기소 때는 ‘윤 총장의 직권 남용’ ‘기소 쿠테타’라는 극렬한 표현을 써가며 윤 총장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번 울산시장 사건 연루자 13명 기소 때는 대놓고 그런 공격을 하지 않았다. 최 비서관 때와는 달리 절차를 문제 삼을 수가 없었던 게 큰 이유였을 것이다. 윤 총장의 ‘대검 회의’가 청와대와 여당의 공격 빌미를 차단한 셈이다.

윤 총장은 그 전에도 이런 돌파 능력을 발휘했다, 작년 9월 조국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외칠 때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해 주시기 바란다”며 “법 제도 개혁 뿐만 아니라 검찰권 행사의 방식과 수사 관행 등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검찰 개혁을 압박했다. 그러자 윤 총장은 잇달아 개혁 조치를 내놨다. 공개 소환 전면 폐지, 오후 9시 이후 심야 조사 폐지, 포토 라인 금지, 피의 사실 공표 금지, 전문 공보관 제도 도입, 특수부 축소 등이었다. 이를 통해 ‘검찰 개혁’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검찰 개혁론이 조국 수사의 걸림돌이 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해 갈 수 있었다.

올바른 소신을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소신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걸 실천에 옮기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큰 의미가 없다. 올바른 소신과 그 소신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갖춰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능력의 핵심은 상황에  무기력하게 굴복하거나 무모하게 덤벼드는 게 아니라 상황을 냉철히 파악한 뒤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행동 방법을 찾아내는 지혜다. 윤 총장이 끝까지 소신을 지키고 그걸 실천에 옮기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많은 국민들이 지켜볼 것이다. 

[연합뉴스]